1959년 시카고대학의 찰스 라이트 밀즈(C. W. Mills. 1916∼1962)가 쓴 『파워엘리트(Power Elite)』는 출간과 동시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그는 관료집단과 군수업자 그리고 군부 등 세 집단이 삼위일체가 되어 미국의 주요한 정책결정을 내리니 이들을 ‘파워엘리트’라고 하였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세 집단은 이해관계를 같이하며 공동목적을 향해 공동전선을 형성하고 나머지 미국인들을 이에 추종케 한다고 주장했다. 밀즈는 이같은 미국 사회는 결코 다양한 여러 집단 간의 유화(宥和)가 이루어지는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맹비난을 하였다. 밀즈에 의하면 미국 사회는 결코 기회의 나라도 아니고, 다양성의 나라도 아닌 것이다. 권력은 항상 그들 파워엘리트들에 주어져 있고 그들은 전가의 보도처럼 그것을 행사해 미국을 점차 군산복합체(military-industrial complex) 국가로 만들고 있다고 외쳤다. 사람들은 그를 분노의 사회학자라고 했다. 그런데 그가 이런 별명을 얻기에는 파워엘리트의 전횡만을 고발해서가 아니었다. 어쩌면 밀즈를 가장 분노케 한 것은 권력이 대물림되고 있는 미국 사회였을 것이다. 그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파워엘리트의 권력
양심은 자신의 영적 본원에 대한 의식이다. 양심이 그런 의식일 때, 비로소 사람들의 삶을 올바로 이끌 수 있다. 신은 너에게 전통적인 가르침, 즉 전 인류의 의식과 너 자신의 개인적 의식, 즉 너의 양심이라는 두 개의 날개를 주었다. 그것을 통해 너는 비로소 신에게 접근하고 신의 곁으로 올라갈 수 있다. 그런데 어째서 너는 이 날개의 하나를 잘라내고 싶어하는가? 왜 이 세상에서 숨어버리거나 이 세상에 빠져 버리려고 하는가? 그 둘은 다 신성한 것이다. 그 둘을 통해 너에게 말하고 있다. 그 둘이 일치할 때, 너의 의식 또는 양심의 목소리가 전 인류의 의식에 의해 뒷받침될 때, 너는 언제나 신과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는 것이며, 자신이 진리를 발견한 것을, 또한 최소한 신의 섭리의 일부를 알아냈다는 것을 확신해도 된다. 왜냐하면 한 목소리가 또 하나의 목소리가 지닌 진실성을 보증하기 때문이다. (주세페 마치니) 양심! 너, 신성하고 영원한 하늘의 목소리여! 너, 무지하고 유한한 자, 그러나 이성을 갖추고 자유가 주어진 존재의 유일한 바른 지도자여! 너, 선에 대한 실수 없는 심판자여! 너만이 인간을 신과 닮은 존재로 만들 수 있다. 인간 본성의 탁월함과 그 행위
친기업 정책 기조를 펼치고 있는 윤석열 정부와 여당이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법) 개정을 위해 발을 맞추고 있다. 경영계와 노동계로부터 ‘졸속입법’이라는 불만이 끊이지 않는 만큼, 법의 완성도를 좀 더 높일 필요성이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산업현장에서 덧없이 스러져 가는 노동자들의 희생을 막는다는 당초의 입법 취지까지 흔들려서는 안 된다. 시행 5개월밖에 되지 않은 법을 보완 입법이라는 이름으로 솜방망이로 만드는 개악만은 삼가야 한다. 중대재해법의 효과가 미미하다는 것은 사고통계로도 나타난다. 고용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산재사고 사망자는 모두 157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작년 동기 대비 고작 8명이 감소한 수치다. 건설업 사고사망자 수는 7명 줄었지만, 제조업은 오히려 7명이 늘었다. 여전히 현장에서 불의의 사고로 생명을 잃는 노동자들이 매월 50여 명에 달한다는 얘기다. 현행 중대재해법에 대한 경영계의 불만과 지적도 만만치 않다. 대한상공회의소가 5인 이상 기업 930개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만 보더라도 이 법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다는 증거는 뚜렷하다. 전국 순회설명회에 참석한 기업 10곳 중 7곳가량은 중대재해법 대응에 여전히 어려
겉절이는 비교적 간단한 반찬이다. 신선한 배추와 갖은양념을 잘 버무리면 된다.. 알쓸신잡은 유희열, 유시민, 황교익, 김영하, 정재승이라는 고급스런 재료를 나영석 특유의 판깔기와 편집으로 잘 버무린 겉절이다. 혹자는 이들 출연자를 보고 방송에 등장해 인문학 르네상스를 펼치는 어벤저스 군단이라 한다 알쓸신잡, 알아도 쓸데없는 신기한 잡학사전의 줄임말이다. 파격적 브랜드 네이밍이다. 이런 황당한 줄임말이 귀에 쏙 들어오고 눈이 떨어지질 않았다. 시즌1-2가 시청률 6-7%, 시즌3가 4-5% 정도면 비지상파 채널에서 그것도 비예능인 중년 남자 출연자들만으로 이룬 대성공이다. 나에게 알쓸신잡은 알아두면 (잘난 체하는데) 쓸모 있는 신나는 잡학사전이다. 내 잘난 체에 짜증 내거나 관심 없는 것은 듣는 사람 사정이고 난 잘난 체하면서 신나면 그만이다. 돈 때문에 떨어지는 자존감 그렇게라도 살려봐야지. 나영석 프로그램이 대부분 그러하듯 프로그램의 포맷은 단순하다. 가고 싶은 곳 돌아보고 함께 맛있는 밥 한 끼 먹고 그냥 떠드는 수다이다. 굳이 멋진 표현으로 하자면 여행 예능+함께하는 먹방+인문학적 수다 정도라 할까. 여행과 함께하는 밥상은 1박 2일부터 일관된 나영석…
최근 달라이 라마의 영어 통역자로 활동했고 스탠퍼드 대학 자비명상 프로그램의 개발자인 툽텐 진파 박사의 “공감과 자비의 과학”으로 워크숍이 있었다. 그는 달라이 라마의 말을 통역하듯이 불교수행에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점을 재구성해서 세상에 알리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근본적 의문이 들었다, 공감과 자비의 훈련이 왜 필요할까? 공감은 타인의 감정을 느끼고 이해하는 것이다. 장자의 『인간세(人間世)』에서 ‘귀로 듣지 말고 마음으로 들어라, 마음으로 듣지 말고 기로 들어라, 귀는 듣는 것에 머물고 마음은 상징에 머문다, 기라는 것은 텅 비어 있으면서 외물을 맞이 하는 것이다,’ 라고 한 것과 유사하다. 사람은 타인이 행동하는 것을 보고 있거나 말하는 것만 듣고 있어도 거울 뉴런이 실제 자신이 그 행동을 하는 것처럼 활성화 된다, 공감을 통해 우리는 타인과 연결 될 수 있다, 자비심은 넓은 의미에서 타인의 고통을 마주했을 때 일어나는 것으로 타인의 고통이 사라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자비심의 근간에는 인간의 취약성과 보편성에 대한 이해가 있다. 영원한 것은 없다, 우리 모두는 지구상에 살고 있는 유한한 인간으로 예기치 않은 사건으로 고통받을 수 있고
‘족제비가 대장간에 들어가 쇠붙이 조각을 핥았습니다. 입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했지만, 족제비는 계속 핥았습니다. 족제비는 피가 쇠붙이 조각에서 나온다고 생각했고, 결국 혀를 못 쓰게 됐습니다.’ 톨스토이의 어린이를 위한 우화 ‘족제비’ 편이에요. 때로는 짧은 우화 속에 깜짝 놀랄 만한 비유나 교훈이 들어있는 경우가 있죠. 우연히 이 우화를 읽다가 문득 권력에 취한 우리 정치권의 우스꽝스러운 정쟁 놀이 모습이 떠올랐어요. 정치는 ‘말’로 하는 것이니 ‘혀’는 곧 정략을 상징하지요. 낫이나 도끼 따위 벼린 권력에 베인 자기 혀에서 나오는 피 맛을 정치의 달콤한 맛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곧 정치꾼들이에요. 야릇한 그 맛에 취한 그들은 날로 혀를 더 요란하게 움직여 요설(妖說)들을 지어내게 되지요. 한번 대장간에 들어가면 혀를 쓰지 못할 때까지 날카로운 쇠붙이를 핥게 되는 이 불가해한 중독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전당대회준비위원회(전준위) 구성을 마치고 본격적인 전대 준비 체제로 들어간 더불어민주당 각 정파가 본격적인 ‘룰 전쟁’을 시작했군요. 지난 6·1지방선거 중에는 ‘586 퇴진론’이 여론을 흔들더니, 이번에는 ‘세대교체론’이 등장했네요. 노역들을 억지로 물러
사람은 타인에 대한 아첨과 허영에서 벗어나면 벗어날수록 신을 섬기기가 수월해지고, 그 반대의 경우 역시 진실이다.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마음을 졸이며 살 것이 아니라, 너 자신이 좋다고 생각하는 삶을 살도록 살라. (류시 말로리) 남의 결점에 대해서는 불쾌하게 느끼면서도, 자신 속의 결점은 전혀 깨닫지 못하고 그것을 알려고도 하지 않는 법이다. 남의 얘기를 할 때, 그 사람을 흉보는 사람은 그게 바로 자신에 대한 얘기임을 알지 못한다. 만일 우리가 다른 사람들 속에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다면, 그것보다 빨리 우리의 결점을 바로잡아 주는 것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떨어진 거리에서 우리의 결점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면 당연히 그 결점이 싫어지기 때문이다. (라 브뤼에르) 선한 사람들이 편히 쉬는 곳은 그들의 양심이지 결코 다른 사람들의 입술이 아니다. 입을 다물고 있어도 비난하고 말이 많아도 비난하며 또한 말이 적어도 비난한다. 세상에 비난당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법구경) 절대로 변명하지 말라. 진리를 존중하지 않는 친척보다 진리를 사랑하는 남이 더 낫다. 아무리 선량한 행위에도 어느 정도는 허영과 세상 사람의 칭찬을 바라는 마음이
요즘 도심이나 골목 편의점에서 도시락과 샌드위치가 진열대에서 잘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도시락과 샌드위치를 구매하는 소비자가 최근 급격하게 늘었다고 한다. 글로벌 인플레이션 물결이 식당가로 밀려오면서 직장인을 중심으로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의점의 한끼를 선택하기 때문이다. 회사 근처에서 평범한 점심을 하려해도 1~2만원은 기본인데 비해 편의점의 도시락 가격은 보통 5000원 안팎이고 샌드위치는 2500원 내외다. 서민들과 직장인, 특히 영끌‧빚투족이 고물가‧고금리에 직격탄을 맞고 있다. 지난주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인플레이션에 맞서 28년 만에 자이언트 스텝(0.75% 포인트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하지만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연준 자료를 인용해 연준이 올 연말까지 제시한 3%대(현재 1.5~1.75%)에서 4~7%까지 더 강력한 금리 인상이 필요하다고 보도했다. 인플레이션 상황이 그만큼 불투명하고 심각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한국의 지난 5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4%이고, 6월 물가상승률은 1997년 IMF위기 이후 최고치인 6%대에 도달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정부는 올 경제성장률 예상치를 종전 3.1%에서 2
고르디우스 매듭은 고대 설화의 소재 중 하나로 ‘풀기 어려운 문제’를 뜻한다. 국민통합 역시 이 매듭의 범주에 들어간다. 지난 문재인 정부가 적폐청산이란 이름으로 국민을 편가르기 하고 갈기갈기 찢어 놓았기 때문이다. 서슬퍼런 적폐청산의 회오리 바람 속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휘말려 들어가 남모를 고충을 겪었거나 지금도 겪고 있다. 산에 오르거나 공부에 집중하면서 섭섭함과 울분을 달랜다. 회오리 바람에 직격탄을 맞은 사람들은 억울하고 원통한 심정을 삭히고 토로하지만, 이를 이해하거나 동정하는 사람이 적다는 것도 이들의 아픔을 더한다. 한 때는 경쟁자였거나 자기보다 잘 나가던 사람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뒤돌아서서 엷은 미소를 짓는 것이 인간의 생리다. 그러나 한 줄기 희망을 갖는 것은 우리사회에 주역에서 말하는 ‘大人’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대인은 자연의 이치를 깨닫고 이를 현실에서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존재로 묘사한다. “무릇 대인은 천지와 더불어 그 덕을 합하고, 일월과 더불어 그 밝음을 합하고, 사계절과 더불어 그 질서를 합하고, 귀신과 더불어 그 길흉을 합한다.(夫大人者 與天地合其德 與日月合其明 與四時合其序 與鬼神合其吉凶)” 주역의 인간관은
사회 질서의 개선은 도덕적 완성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내가 이렇게 붓을 들고 있는 방의 창문 밖으로, 코에 코뚜레가 꿰여 말뚝에 매어 있는 커다란 소 한 마리가 보인다. 소는 풀을 뜯어 먹다가 저도 모르게 자신이 매여 있는 고삐를 말뚝에 감아버렸다. 소담스럽게 자란 풀을 눈앞에 두고도 배를 주리고 어깨에 달라붙는 파리를 쫓기 위해 목을 흔들지도 못한 채 죄수처럼 가만히 서 있다. 그는 몇 번이나 빠져나갈 양으로 몸부림쳐보지만, 그때마다 슬픈 신음소리를 지르다가 지금은 얌전해져서 조용히 괴로워하고 있다. 엄청난 힘을 갖고 있으면서도 어떻게 하면 자유로워질 수 있는지 이해할 만한 자각도 없이, 많은 풀 앞에서 배를 주리며 지극히 연약한 생물에게 비참하게 당하고 있는 이 소의 모습은, 내 눈에는 마치 노동자들의 상징처럼 비친다. 모든 나라에서 땀을 흘리며 풍요로운 부를 생산하는 노동자들은 가난에 시달리고 있다. 하루하루 진보하는 문명이 새로운 사상의 분야를 개척하고 새로운 욕망을 부추기고 있을 때, 그들은 그 보잘것없는 동물적 욕구를 채우기 위해 가축과 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 그들은 불공평하기 짝이 없는 현실을 의식하고, 마음속으로 자신들이 이런 비참한 생활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