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아이 소풍 도시락을 호들갑 떨며 싸던 때가 있었다. 새 모이 마냥 밥 몇 숟갈 먹는 아이인데 잔칫상 차리듯 준비했다. 쪽잠을 자고 새벽같이 일어나 재료를 손질했다. 오색 꼬마 김밥, 별 모양 소고기 주먹밥, 메추리알로 만든 병아리, 햄과 채소를 꽃잎처럼 오려낸 샐러드를 담았다. 내 아이만을 위한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도시락이었다. 엄마가 처음이라 그게 최선의 모성애인 줄 알았다. 그 아이가 다섯 살 무렵 나는 병설유치원 특수학급에서 일했다. 공교롭게도 첫애와 같은 해에 태어난 아이들을 맡았다. 그래서인지 내 눈에는 덩치만 컸지 아직 아기들로 보였다. 엄마 품을 떠나 규범이 지배하는 공간에서 생활하는 게 짠하고 뭉클하고 안타깝고 대견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교사라기보다 엄마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해 봄날 아이들과 소풍을 갔다. 점심이 되어 각자 집에서 보내온 도시락을 가지고 모둠으로 둘러앉았다. 주위를 둘러보는데 한 녀석이 뭉그적대며 눈치를 보고 있었다. 조막만한 손을 만지작거릴 뿐 가방에서 도시락을 꺼내지 않았다. 교사의 재촉에 내놓은 건 검정 비닐봉지에 든 떡 한 팩, 소풍 도시락이었다. 뭔지 모를 부끄러움이 그 순간 나를 멈춰 세웠다. 뭐든 나눠 먹어야…
1980년 5월 21일 서울 변두리 여관방, 며칠 전 광주 도청 앞 시위로 검거대상 1호로 지목된 전남대 교수 몇 사람이 피신 중이었다. TV에는 ‘폭도들이 광주를 폭도에 장악했고 계엄군이 진압작전을 준비하고 있다’는 뉴스가 뒤덮었다. 광주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벌써 피비린내가 진동할 때, 뉴스를 보던 송기숙 선생이 벌떡 일어섰다. “갑시다. 광주사람들이 다 죽는다는데 우리만 여기서 이럴 수는 없소. 살아있더라도 평생 부끄러운 삶일 것이오. 차라리 가서 같이 싸우고 같이 죽읍시다. 내려갑시다.” 그 길로 3명의 전남대 교수는 전라선 막차를 타고 제 발로 사지로 들어갔다. 시민수습위를 조직하고 활동하다 계엄군에 체포되어 보안사의 모진 고문을 겪어야만 했다. ‘내란죄 중요임무종사’라는 죄명이었다. 소설 ‘녹두장군’의 작가 송기숙 선생이 며칠 전 세상을 떠났다. 한 시대의 녹두꽃이 떨어졌다. 78년 서슬퍼런 유신치하에서 국민교육헌장이 ‘유신독재의 비인간적이고 비민주적인 교육정책을 집약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며 ‘우리의 교육지표’를 발표하고 구속되기도 했던 선생은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두 세력에 모두 맞서며 고초를 겪었다. 선생을 고통 속에 몰아넣었던 군사쿠데타 주동
더불어민주당에서 내년 3월 대선과 함께 실시되는 국회의원 재보선의 무공천론이 검토되고 있다. 재보선 지역은 서울 종로(이낙연 전 민주당 의원), 서초갑(윤희숙 전 국민의힘 의원), 경기 안성(이규민 전 민주당 의원), 대구 중·남구(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 충북 청주 상당구(정정순 전 민주당 의원) 등 5곳이다. 이 가운데 넓은 의미로 해석해 민주당 귀책사유 지역은 종로와 안성, 청주 상당 등 3곳이다. 종로의 경우 이낙연 전 대표가 대선 경선 과정에서 의원직 사퇴라는 승부수를 던졌다. 안성 및 청주 상당은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당선무효형을 받았다. 그간 시민사회 등에서 공직선거법 위반, 비리 등으로 재보선의 사유를 제공한 책임이 있는 정당은 후보를 내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돼 왔지만 정치권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특히 민주당은 지난 4·7 서울‧부산시장 재보선의 책임이 있었지만 공천을 강행했다.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등 중대한 잘못으로 재보선을 하는 경우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않는다’는 당헌을 고치는 무리수까지 뒀다. 반면 서울 서초갑과 대구 중‧남구 2곳은 국민의힘에 책임이 있다. 윤희숙‧곽상도 전 의원이 각각 부친 땅투기…
전직이든 현직이든 교사가 모이면 두 집단이 입을 모아서 하는 말이 ‘학교는 참 변하지 않는다’이다. 몇십 년 전과 지금의 교실의 풍경을 사진 찍어서 놓고 비교해보면 전자제품들이 들어와 있는 것 빼고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교사는 칠판 앞에 서 있고 학생들은 책상에 앉아서 교과서를 펴 놓고 앉아있다. 수업을 자세히 살펴보면 조별 활동이나 학생 중심 활동 같은 게 생겨서 예전처럼 책상에 앉아만 있는 건 아니지만 큰 틀에선 달라진 게 없다. 학교의 모습 중 정말 한치의 변화도 없는 것 중의 한 가지가 교과서와 관련된 풍경들이다. 교과서 배부 및 수령 방식은 1970년대나 2000년대나 2021년이나 똑같다. 학생들은 학기 말이나 학기 초에 열 권이 넘는 교과서를 한꺼번에 지급받고, 그걸 가방에 미어져라 쑤셔 넣은 채 집에 간다. 교과서 지급받는 날 부모님이 교문 앞에서 기다리는 친구들도 있고, 며칠에 걸쳐서 교과서 나눠 들고 가는 방법을 쓰기도 하지만 왜인지 어린이들은 한꺼번에 가방에 넣고 집에 가는 걸 택한다. 나 역시 어린 시절 교과서 받는 날이면 무거운 가방에 어깨가 한껏 처진 채 집으로 걸어갔었다. 이런 교과서 지급 방식을 이상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모든 것에 저항할 수 있지만 선량함에 대해서는 저항할 수 없다. (루소) 선행에 목적이 있다면 그것은 이미 선이 아니다. 대가를 예상하고 이루어진 경우에도 역시 선이 아니다. 선은 인과율을 초월한 것이 아니면 안 된다. 횃불과 불꽃이 아무리 강력해도 태양 앞에서는 빛을 잃어버리듯이, 우리의 지능도(설사 천재라 하더라도) 또 아름다움도, 마음으로부터의 선량함 앞에서는 빛을 잃어버린다. (쇼펜하우어) 한없는 부드러움은 진정으로 위대한 사람들의 천성이자 재산이다 (존 러스킨) 연약한 식물이 단단한 흙을 뚫고 바위가 갈라진 틈을 지나 자생한다. 선량함도 그와 같다 어떠한 쐐기도, 어떠한 망치도, 어떠한 무기도 선량하고 성실한 사람은 이기지 못한다. (소로) 인간이 있는 곳에는 그에게 선을 행할 기회도 있다. (세네카) 우리가 어떤 사람을, 우리의 마음에 든다거나 우리에게 선을 행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 속에서 모든 사람들 속에 깃들어 있는 신의 영혼을 보기 때문에 사랑할 때, 비로소 우리는 신의 사랑, 진정한 사랑으로 사랑하는 것이다. 원수 사랑이 가능해지는 이유이다. 위대가 무엇이 위대겠습니까? 강대국의 뒤를 따라가며 그 후진을 무릅쓰는 이른바 후진국 의식을
곡예는 완성된 기술이 아니라 끝나지 않는 훈련 머리카락 위를 전차처럼 전진하는 마음 바늘 끝에 선 낙타가 세계를 긴장시킨다 슬픔을 쌓아 도달한 높이에 본 적 없는 우아한 자세를 전시한다 길에서 길을 뽑아 촘촘한 안전망을 허공에 설치하는 곡예는 신에게 드리는 경배 실핏줄처럼 번진 수많은 갈래 중에 고난을 걸어간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 기울어지고 냉정해지기 위해 불을 삼킨다 한 발도 놓치지 않고 칼날 위에 대평원을 건설하는 중이다. 곡예는
출근할 때 촉촉해진 눈망울로 “잘 다녀오세요”라는 눈빛으로 배웅하는 그녀. 늘 야단맞으면서도 퇴근 때에는 제일 먼저 환하게 반겨주는 이쁜 얼굴이 있다. 사랑스럽고 귀여운 우리 집 반려견인 ‘흰둥이’다. 반려동물 관련 사업은 2010년 17.4%에서 지난해 27.7%로 확대되면서 뚜렷한 성장세를 보이며 638만 가구(추정), 1500만 반려동물 시대를 맞고 있다. 가슴으로 낳아 금전으로 키운다는 반려동물이기에 성장세를 꺾기가 무리인 것 같다. 시장 규모도 작년대비 9.9% 성장해 1조3000여억 원을 기록하는 것을 보면 미래유망사업임에 오차가 없겠다. 오산에도 미래유망사업에 부응하는 시설이 곧 개장을 앞두고 있다. 오는 16일 ‘오산반려동물테마파크’가 개장된다. 테마파크 부지는 하수종말처리에 따른 악취로 온갖 민원의 진원지였던 오산 제1하수종말처리장의 상부에 설립됐다. 행정발상의 전환으로 상부를 복개해 동물놀이터, 유기 견 지원센터, 펫 카페, 반려견수영장 등을 2016년부터 조성해 왔던 것이다. 혐오시설이었던 하수처리장을 시민과 반려동물들이 교감할 수 있는 장소로 탈바꿈시킨다는 발상은 그 당시 가히 혁신적이었던 것이다. 악취로 인해 기피되었던 시설 위에 마련
인간의 사명은 모든 사람에 대한 봉사이며, 특정한 사람을 위해 일부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봉사여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애국심이 이웃에 대한 사랑에 방해가 되고 있다. 고대 사회에서 가족에 대한 사랑이 애국심에 희생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처럼, 그리스도교 사회에서 애국심은 이웃에 대한 사랑의 희생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악인의 마지막 피난처는 애국심이다. 오늘날 애국심은 모든 사회악과 개인의 추행을 정당화하는 구실이 되고 있다. 우리는 조국의 행복이라는 이름 아래 그 조국을 존경할만한 것으로 만들어주는 모든 것을 거부하도록 교육받고 있다. 우리는 애국심이라는 이름 아래, 개개인을 타락시키고 국민 전체를 파렴치한 행위를 하도록 이끈다. (비처) 사람들은 자신의 욕심을 위해 많은 악을 저지르고, 가족을 위해 더욱 많은 악을 저지르지만, 애국심을 위해서 가장 무서운 잔학행위, 이를테면 간첩행위, 민중에 대한 가렴주구, 비참하기 그지없는 살육의 전쟁을 저지르면서도, 그러한 잔학행위를 자랑하기도 한다. 오늘날처럼 전 세계의 민족들이 서로 교류하고 있는 시대에, 단순히 자기 나라에 대한 편협한 사랑을 호소하며, 언제든지 다른 나라와 전쟁을
닭 잡아먹고 오리발 내민다, 옳지 못한 짓 하고 엉뚱한 수작으로 남을 속이려 한다는 속담이다. 매끈한 얼굴과 날씬한 몸매, 능숙한 말솜씨의 ‘AI윤석열’은 느닷없는 오리발처럼 낯설고 당혹스럽다. AI은 인공지능이다. 신기술 AI가 매만진 저 윤석열은 윤 후보가 아니다. 이준석 대표의 젊은 비단주머니가 너무 나갔나, 저건 사기(詐欺)다. 날조(捏造)다. 신기술 따위 제목 이전에 상식으로 보라. 젊은 여자들을 암소로 ‘출연시킨’, 더러운 서울우유 광고처럼 국민 속이는 짓이다. 그 ‘암소여자 광고’처럼 사과하고 바로 거두어들이는 것이 어떤가. 바카야로(馬鹿野郎 마록야랑)는 ‘바보야’하는 일본의 욕이다. 원래는 중국산(産)이다. 지록위마(指鹿爲馬)라는 고사성어는 요즘 말로 가짜뉴스(fake news)로 풀 수 있다. 사슴을 가리켜(指) 말이라 한다(爲)는 뜻이다. 사전은 ‘사실이 아닌 것을 강압으로 사실로 인정하게 함’이라고 푼 다음 ‘윗사람을 농락하여 권세를 마음대로 함’이라고 덧붙였다. 나쁜 짓일세. 진시황 죽은 후 권력을 좌지우지한 내시 조고(趙高)가, 계략을 써서 만든 어린 황제 호해(胡亥)와 신하들에게 사슴을 보이며 말이라 했다. “왜 저게 말이냐?”한 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