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트레이닝(image training)으로 다이어트 효과가 있다는 이색적인 실험이 검증되어 세간의 이목을 끈다. 이미지 트레이닝이란 자신이 설정한 목표를 오감을 동원해 상상 속에 그려보고 성공을 위한 길을 모색하는 훈련법이다. 경기에서 맞닥뜨릴 가능성이 있는 선수가 어떤 동작의 공격을 가할 때 거기에 대응해서 어떻게 방어하고 공격을 펼치겠다는 생각을 머릿속에 그려보고, 그것을 기반으로 자신의 대응을 실제 동작으로 훈련하는 것이다. 초창기에는 주로 운동선수가 많이 이용했는데, 지금은 여러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이미지 트레이닝에 대해 잘 알려진 일화가 있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출전을 목전에 둔 구소련의 선수들이 몬트리올시의 경기장 사진을 보면서, 거기서 경기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지를 날마다 상상했다고 한다. 선수들은 몬트리올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생소한 곳이었지만, 사진 속의 경기장에서 시합하는 장면을 마음대로 그려볼 수 있었다. 그 결과, 선수들은 몬트리올에 있는 낯선 경기장에 도착했을 때도 마치 자신들이 자주 들렀던 곳 같은 심리적 안정감을 느꼈다고 한다. 이처럼 구소련 올림픽 출전 선수들은 경기를 앞두고 이미지 트레이닝을 통해 실전
걸었던 길을 다시 걷습니다. 걸었지만 길은 어제의 길이 아니고, 걷지만 우리는 어제의 우리가 아닙니다. 어제 걸었던 산책로를 오늘 다시 걷습니다. 길은 산과 도시의 경계를 가르며 구부정하게 누웠습니다. 누운 길의 꼬리를 밟으며 머리를 향해 나아갑니다. 아무리 걸어도 길은 쉬 머리를 내어주지 않습니다. 발은 길에 있지만 눈은 도시에 머뭅니다. 철야에 지친 간호사처럼 도시는 식곤증에 취했습니다. 그림자를 늘어뜨린 빌딩 숲이 어깨를 움츠립니다. 조각공원에 늘어선 조각상들이 늘어지게 기지개를 켜는 것 같습니다. 걸었던 길을 다시 걷습니다. 걸었지만 길은 어제의 길이 아니고, 흐르지만 시간은 어제의 시간이 아닙니다. 어제 걸었던 골목길을 오늘 다시 걷습니다. 골목은 집과 집 사이를 서성거리는 길 잃은 아이 같습니다. 도시의 골목에는 한밤에도 열기가 식지 않습니다. 열기가 빠져나갈 틈이 도시의 밑바닥에는 없습니다. 며칠째 계속되는 열대야로 도시의 밑바닥은 절절 끓습니다. 반지하 단칸 셋방 창문들이 발밑에서 나란합니다. 하늘을 향해 열려야 할 창문들이 골목에 갇혀 굳게 닫혔습니다. 에어콘 실외기에 매달린 호스에서 눈물이 떨어집니다. 걸었던 길을 다시 걷습니다. 걸었지만…
어느새 8월이다. 1년 12개월 중 벌써 4분의 3이 지나가고 있다. 올해 초 새로운 해를 맞으며 세웠던 계획과 목표를 하나씩 지우고 있지만 야속하게도 시간은 나보다 더 빠르게 움직이는 것 같다. 가끔은 무서울 정도다. 하지만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보다 무서운 건 요즘 날씨다. 올해는 작년, 그리고 재작년에 비교해 훨씬 더운 것 같다. 어쩌면 잘 기억이 나지 않는 순간부터 비교해도 가장 더운 것 같이 느껴졌는데, 알고 보니 실제로도 그런 상황이다. 기후학자들은 이번 여름이 앞으로 다가올 여름 중에서 가장 시원한 여름이라고 말을 한다. 이렇게 더운 상황에 하는 재치 있는 농담이었으면 좋겠지만 무서운 현실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매년 여름, 뉴스를 통해 자주 접해서일까? 너무나 익숙하지만 체감하지 못했던, 말로만 듣던 기후 위기, 기후 변화가 피부로 느껴진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알 수가 없다. 이번 폭염이 더욱 아찔한 공포로 느껴지는 건, 시간이 흘러 가을이 온다고 해서 끝나는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 폭염이라는 현상은 하나의 결과이고 또 그 자체로 원인이 되는, 앞으로 다가올 기후 변화의 ‘과정’이다. 이런 기후 변화는 결국 자연에 영향을 끼치고
한국현대사에서 광복절(光復節)만큼 경사스러운 날이 또 있을까. 이날은 “오등은 자에 아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한 기미독립선언이 완성된 날이고, 일제강점이라는 암흑과 절망의 터널을 지나 ‘동방의 등불’이 될 기회를 다시 얻은 날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음 몇 가지를 생각해 본다. 광복절은 국권 회복을 기념(記念)하는 날이다. 우리 민족은 고조선 이후 줄곧 독립국이었다. 20세기 초, 일본제국주의의 강탈로 국권을 잠시 상실하였지만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1919) 이후 해내외 동포사회의 줄기찬 독립투쟁과 미·영·중·소 연합군의 승전으로 독립을 쟁취하였다. 그날의 감격은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 기어이 보시려던 어른님, 벗님 어찌하리. 이날이 사십 년, 뜨거운 피 엉긴 자취니 길이길이 지키세, 길이길이 지키세.”라는 위당(爲堂) 정인보의 ‘광복절 노래’(1950)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는 30만 애국지사·순국선열의 피땀, 200만 독립만세 영웅의 용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무명(無名) 후원자들의 열망이 하나되어 이뤄낸 값진 노력의 대가(代價)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광복절은 정부 수립을 경축(慶祝)하는 날이다.
전남 강진 읍내에 가면 다산 정약용 선생께서 유배를 왔을 때 묵었던 주막이 초가집으로 복원되어 있다. 1801년 12월 엄동설한에 40세의 다산 선생은 이곳 시장 골목에 있는 초라한 주막에 도착했고, 이때 늙은 주모가 건넨 밥 한 그릇을 먹고 차가운 냉방에서 유배 첫 날을 보냈던 집이 사의재(四宜齋)이다. 다산 선생은 정조대왕의 사랑과 지원을 받으며 동부승지와 형조참의라는 당상관직의 높은 벼슬에 재직하다가 하루아침에 옥에 갇히는 죄수가 되었다. 다행히 감형이 되어 이곳 강진에 유배를 오게 되었다. 함께 구속되어 심문을 받았던 정약전 둘째 형은 흑산도로 귀양을 가고, 정약종 셋째 형과 매부인 이승훈은 사형을 당하는 등 한 가문이 일시에 폐족(廢族)이 되었다. 이러한 엄혹한 여건 속에서도 다산 선생은 새롭게 마음을 다잡아 학문에 전념하게 된다. 그 좌우명으로 다산 선생은 네 가지 덕목을 실천하기로 작정하였다. 첫째, 생각은 담백해야 하니 담백하지 않은 바가 있으면 그것을 빨리 맑게 하고, 둘째, 외모는 장엄해야 하니 장엄하지 않은 바가 있으면 그것을 빨리 단정히 하고, 셋째, 말은 과묵해야 하니 적지 않은 바가 있으면 빨리 그쳐야 하고, 넷째, 행동은 무거워야…
대규모 정산 지연 사태를 빚은 티몬·위메프 피해자들이 검은 우산을 들고 거리 집회에 나섰다. 검은 우산 집회는 피해자 구제를 위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했다. 단기적으로는 피해 금액 회복을, 장기적으로는 전자 상거래의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목표로 삼았다. 검은 우산은 정부의 관리 감독 책임을 묵과할 수 없다는 항의의 표시다. 규제의 사각지대가 이 사태를 불렀다는 의미다. 정부는 5월까지 미정산액을 2천7백억 원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6월과 7월 거래분과 해외 미정산금까지 합하면 피해액이 최대 2조 원을 훌쩍 넘길 거란 예측까지 나왔다. 온라인 쇼핑몰 입점 업체가 6만 개에 달한다는데 이중 대다수는 중소 판매자들인데다 규모가 작은 중소 판매자들이어서 대금을 제때 받지 못하면 영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 피해 규모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게 시급한 일임은 분명해 보이지만 섣불리 피해 규모를 재단할 수도 없어 보인다. 이런 사건이 터질 때마다 ‘하인리히 법칙’이 소환된다. 하나의 대형 사건이 터지기 전에 이미 유사한 사건이 십여 차례 발행했을 거고, 같은 이유로 피해가 발생할 수 있었던 잠재적 상황은 수백 번 있었을 것으로 짐작되기 때문이다. 교통사고가 잦은 곳에 머지않
‘우리산을 푸르게 푸르게’ 이런 표어를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한국전쟁 후 황폐해진 우리땅에는 나무가 사라져 민둥산이 많았다. 여름철 비가 많이 오면 토사가 흘러내려 피해를 막기 위해 ‘산림녹화 사업’으로 생명력이 강하고 척박한 환경에도 강한 아까시나무를 많이 심어 빠르게 우리산을 푸르게 가꾸는데 공헌을 많이 했다. 우리가 아카시아로 잘못 알고 있는 이 나무의 본명은 아까시이다. 아까시나무는 초여름 10일 이상의 꽃을 피어서 많은양의 꿀을 얻게 해준다. 우리나라 꿀의 80%가 아까시나무에서 얻는 최고의 밀원식물이기도 하다. 그런데 며칠 전 뉴스에서 사라지는 ‘산림녹화 주역’ 아까시나무의 소식을 들었다. 지금은 쓸모없다는 이유로 나무를 마구 베어 내 30만 헥타르가 넘던 것이 30년 새 10분의 1로 줄었다고 한다. 이로 인해 양봉산업에도 큰 위기를 맞고 있다. 심각하게 벌의 개체수가 줄어들고 있고 때문이다. 자연은 우리에게 얼마가지 않아 벌들이 사라 질 수 있다는 경고를 보내고 있다. 꿀벌이 사라지면 전 세계 100대 농작물 중 70%가 사라질 수 있다고 한다. 최근 들어 많은 사람들이 도시양봉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지자체별로 양봉학교를 활발하게 운영
놀랍게도 한국영화 중 독립운동을 그린 영화는 그리 많은 편수를 차지하고 있지 못하다. 어쩌면 툭하면 벌어지는 역사 논란들이 영향을 줬기 때문일 수 있다. 이상한 논란에 휘말리거나 공격받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제작자나 투자자를 지배할 수도 있다. 홍범도 장군의 위대한 쾌거의 독립운동 전투 ‘봉오동 전투’(2019)가 영화로 만들어진 것이 절묘했다는 생각을 갖게 할 정도이다. 이 영화를 요즘 같은 때에 다시 본다면 어떨까 싶다. 영화 ‘파묘’가 아무리 일부에서 반일 좌파적 영화라며 국정에 도움이 되지 않는 영화라는 식으로 떠들어 댄다 한들 관객 천만을 훌쩍 넘기는(11,913,519명) 대성공을 거둔 것은 어리석은 정치가 역사를 놓고 ‘대중의 역린’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개봉하기 전 정부와 국방부는 홍범도 흉상을 철거하기로 결정했는데 홍범도 장군이 고려공산당 활동 전력을 문제 삼았다. 대중들은, 그렇다면 장제스와 마오쩌뚱의 1,2차 국공합작(일본 제국주의와 싸우기 위해 일시적으로 국민당과 공산당이 힘을 합한 것) 역시 장제스의 공산당 활동 전력으로 봐야 하느냐는, 기이한 역사 해석을 요구 받는 셈이라 느꼈다. 홍범도 흉상 철거 문제를 놓고 대중들의 정
몇 년 전에 우연히 철학자 데이비드 베나타의 반출생주의에 대해 배우게 되었다. 대학생 때부터 철학 수업을 꾸준히 들어왔지만, 베나타만큼 비관적인 철학자는 없다고 생각했다. 반출생주의자인 그는 삶이란 너무 나쁘고 고통스럽기 때문에 인간은 번식을 중단해야 한다고 믿는다. 베나타의 관점에 따르면 삶 자체가 악에 의해 지배되고 있기 때문에, 인간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더 나은 세상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모두 손에 손잡고 멸망의 길로 가는 것이 진보적인 일이라고 믿는다. 반출생주의 사상을 처음 접했을 때 충격은 물론 느꼈지만, 동시에 부분적으로 동의하는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출산과 가족 형성, 양육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출산의 목적은 과연 무엇일까? 아이를 위해?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생명체를 위해 출산을 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욕구 실현? 자연의 질서? 이러한 흐지부지한 설명도 와닿지 않는다. 대개의 인간은 번식 욕구가 있다. 이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이 번식해야 한다는 것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출산은 오로지 이미 존재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임신 과정의 즐거움을 경험해 보고 싶어서, 가족을 꾸리고 싶어서.…
이 더위에 난 꽃이 피었다. 이른 봄에 분갈이를 해서 그럴 것이다. 먼저 올라온 꽃대는 시들해졌다. 난을 선풍기 옆으로 앉히고 차분히 들여다본다. 꽃은 꽃인데 난 꽃이라서인지 코와 눈과 가슴이 나도 모르게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 신석정 선생의 수상집 ‘蘭草 잎에 어둠이 내리면’을 펼쳐본다. 선생님은 한복을 곱게 입고 뿔테안경을 쓴 채,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시는데 책상머리에는 큼직한 난 화분이 놓여 있다. 그 사진 우측 아래는 작은 글자로 ‘그윽한 서실에서의 저자’라고 새겨져 있다. 책장을 넘기니 ‘서시’로써 ‘난초 잎에 어둠이 내릴 때’라는 시가 있다. ‘난초 잎에/ 어둠이 내릴 때// 그때 나는/ 노을이 흔들리는/ 언덕에 앉아 있었다.// … ‘책을 읽는다는 것은 자신의 미래를 만든다는 것이다’ 에머슨의 글이다. 토머스 제퍼슨은 ‘나는 책 없이는 살 수 없다’고 했다. 그런가 하면 괴테는 ‘나는 책 읽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80년이라는 세월을 바쳤지만 아직까지도 잘 배웠다고 말할 수 없다’라고 했다. 인류를 창조한 것은 하나님의 영역일지라도 인류를 번영시킨 것은 책이 아니겠냐고 주장한 학자도 있다. 멈추지 않는 독서를 통해 자기 자신을 쌓아온 많은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