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와 정의를 추구하는 사람은 고독 속에 혼자 있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베르시에) 납과 같은 본성에서 황금 같은 행동을 이끌어내는 것은 어떠한 정치적 연금술로도 불가능하다. (허버트 스펜서) 만약 사람들이 세계를 구원하는 대신 자기 자신을 구원하고자 하고, 인류를 해방시키는 대신 자기 자신을 해방시키고자 한다면, 그들은 세계를 구하고 인류를 해방하기 위해 참으로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텐데! (게르 센) 사회주의에는 두 종류가 있다. 그리고 둘 다 모든 사람의 최대 행복을 추구한다. 하나는 모든 사람의 행복을 획득하려고 노력하고, 다른 하나는 모든에게 저마다 제 나름대로 행복해질 수 있는 가능성을 주려고 한다. 전자는 국가의 권력을 인정하지만, 후자는 어떠한 권력도 인정하지 않는다. 전자는 국가의 전제를 요구하지만, 후자는 모든 계급의 절멸을 요구한다. 전자는 사회주의적 전쟁을 긍정하지만, 후자는 오직 사회주의의 평화적 방법만을 믿는다. 사회주의에는 이 두 가지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는 어린이의 사회주의, 다른 하나는 어른의 사회주의이다. 전자는 과거의 것이고 후자는 미래의 것이다. 따라서 전자는 후자에게 마땅히 그 자리를 물려주어야 한다
우리 반 아이들은 다음 주 월요일부터 매일 등교한다. 교육부에서 2학기부터 전면 등교를 하겠다고 발표했는데 학교 규모가 작은 편에 속하는 우리 학교는 한 달 먼저 등교를 시작하기로 했다. 1년 4개월 만에 아이들이 매일 학교에 올 수 있게 되었다. 드디어 아이들을 매일 보려나 기대하던 찰나에 옆 학교에서 확진자 수가 갑자기 늘었다. 다시 전면 온라인 수업으로 넘어가는 거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왔지만 다행스럽게 위기가 넘어갔다. 우리 반 아이들은 언제나 매일 학교에 오고 싶어 했다. 거리 두기 때문에 교실에서 별다르게 재밌는 활동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왜 학교가 재밌냐고 묻자, “뭘 하든 학교에 가는 게 낫죠.”라고 말하곤 했었다. 교육부에서 실시한 등교 관련 설문조사를 봐도 고등학생은 등교를 원하는 학생이 26퍼센트에 머무르는 반면 초등학생들은 열 명 중 일곱 명이 학교에 가고 싶다고 답했다. 역사의 기록으로 사라질지 모르는 마지막 온라인 쌍방향 수업이었다. 어떤 내용으로 수업할까 고민하다가 교실에서 하지 못했던 음식 만들기를 했다. 6학년 실과에는 한 그릇 요리를 만드는 단원이 7차시 분량 정도 나온다. 등교했을 때 실습을 하기가 어려워서 콘텐츠로
당신이 계신 곳은 어떠십니까. 제가 머무는 산기슭에는 비가 내립니다. 빗소리는 그윽합니다. 라디오 볼륨을 높여도 빗소리는 멀어지지 않습니다. 음악과 빗소리는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안과 밖에서 차분합니다. 아침상을 물리고 길을 나섭니다. 우산으로 비를 가리며 산길을 걷습니다. 가려지는 것보다 가려지지 않는 것들이 많습니다. 생각해 보면 늘 그랬습니다. 가리고 싶어도 끝내 가릴 수 없는 것들, 아랫배에 그어진 수술자국 같은 것들, 지금은 잊어버리고 없는 흑백사진 속 아버지의 눈물 같은 것들, 빗길을 걸어 숲에 들면 가려질 수 있을까요. 잣나무 숲길을 걷습니다. 우산으로 비를 가리며 걷습니다. 여전히 가려지는 것보다 가려지지 않는 것들이 많습니다. 숲길을 따라 양치식물이 군락을 이뤘습니다. 군데군데 산딸기가 익어갑니다. 숲에서 익어가는 산딸기는 달콤 쌉싸름합니다. 세상살이의 맛도 이러할까요. 어쩌면 나무(木)가 숲(林)을 이루는 것도 그래서일지 모릅니다. 당신 생각은 어떠십니까. 저는 ‘삼림’(森林)이라는 단어를 볼 때마다 ‘살림’이 떠오릅니다. 살림살이는 죽임이 아니라 살림입니다. 살림살이는 혼자가 아니라 함께입니다. 생명 가득한 삼림처럼, 우리네 세상살이도 그
대학생 박성민이 청와대 청년비서관이 되었다고 해서 잠시 소란이 있었다. 청와대 국민청원이나 고려대 재학생이 개설했다는 박탈감닷컴 따위를 보면, 대학 졸업도 않고 취업 노력도 없는데 9급 공무원 시험이나 행정고시 등 공정한 경쟁도 치르지 않고 단박에 1급 공무원이 될 수 있느냐 하는 시기와 불만이 대부분이다. 각설하고, 일각의 대학 졸업 운운에 대해서만 생각해보기로 한다. 11년 전 한 학생이 대학을 그만둔다며 자퇴를 했다.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3학년 김예슬은 2010년 3월 10일 고려대 정문에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라는 제목의 대자보를 붙이고 ‘오늘 저는 대학을 그만둡니다. 진리도 우정도 정의도 없는 죽은 대학이기에’라고 쓴 팻말을 들고 시위를 했다. 김예슬은 고등학생이던 2005년부터 대학생나눔문화에서 고전을 배우고, 민주주의와 평화를 지키는 현장을 익히고, 농촌활동을 하며 세상을 알아갔다. 학이시습의 과정에서 훌쩍 커버린 김예슬이 경험한 대학은 죽은 대학이었다. 김예슬은 현재 박노해 시인이 설립한 시민단체 나눔문화의 사무처장이다. 박성민 비서관은 이미 정치인이다. 박성민은 공개 오디션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민주당 청년대변인이 되
사막을 건너 멕시코 장벽을 넘으려던 여자의 심장이 멈췄다 맨발은 더 이상 모래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선인장이 가시를 견디고 있다 독수리들이 그녀의 마지막을 견디고 있다 뒤늦게 도착한 국경수비대가 흩어진 소지품을 챙긴다 발을 떠난 신발이 국경을 바라보며 저만치 엎어져 있다 인적이 드문 밀입국로, 성공하기 제일 어려운 루트, 사막과 더위와 가난과 희망, 어느 것이 더 무모했을까 국경수비대는 흐트러진 몸을 담요로 덮어주고 옷깃을 여민다 경고문이 적힌 소용없는 팻말들, 사람들 사이에서 사라진 말들, 그녀의 마지막 길에 거수경례를 한다 국경을 넘으려는 자동차들이 줄을 지어 서 있다, 없는 트렁크 속의 마리화나, 없는 고가의 물건들, 국경을 넘으려는 사람들은 지은 죄가 없어도 액자 속에서 얼어버린 파도 소리가 들린다 심장의 파도 소리가 들린다 새들, 중앙선을 넘고 국경을 넘어 날아간다 공중에서 죽음을 맞는다 국경은 보였다가 안 보였다가 ▶약력 ▶서정시학(2006) 신인상 등단. ▶시집 『이혼을 결심하는 저녁에는』
코로나19 영향으로 일자리를 잃고 생활고에 시달리는 국민들이 늘어났다. 기업의 신입채용 계획이 대폭 축소되거나 취소되고 채용 규모도 줄었다. 수요가 급증한 배달업 등 일부 직종을 제외한 재취업도 어렵다. 특히 상대적으로 취업문이 좁은 여성들은 더 가혹한 취업난에 시달리고 있다. 남편의 실직 등으로 가정 형편이 기울면서 재취업을 원하는 경력단절 여성들의 경우, 원하는 일자리를 얻기는 더욱 지난하다. 여성 비정규직 취업도 어려워지고 있다. 통계청이 낸 ‘2020년 8월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를 보면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는 409만1000명으로 전년도 8월보다 3만5000명 감소했다. 남성 노동자는 333만5000명으로 전년도 8월보다 2만1000명 감소했다. 그러나 코로나19 발생 후 비정규직 중 파견, 용역 노동자 혹은 가사 도우미, 배달 기사, 학습지 교사, 단기 노동자 등을 가리키는 개념인 ‘비전형 노동자’는 가장 큰 성별차를 보였다. 여성은 5만9000명이 감소했지만, 남성은 8만7000명이 증가한 것이다. 남성 취업자가 증가한 것은 전기한 것처럼 많은 배달 등 플랫폼 일자리는 늘어났기 때문이다. 반면 학습지 교사, 가사 도우미처럼 여성이…
학기가 끝나고 성적을 입력하면서 젊은 친구들에 대한 교육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다행스럽게도 이번 ‘임시 교편’ 과정에서 좋은 학생들을 만났다. 한 번도 출석에 빠지지들 않았고 과제를 거른 적도 없으며 비대면 수업이지만 학습 태도들도 좋았다. 모두들 훌륭한 점수를 받기에 충분했다. 과제 명은 ‘올리버 스톤의 영화로 본 미국 현대사 1954~1974’이다. 올리버 스톤 감독이 변방의 한국에서 자신의 영화가 역사 공부에 쓰이고 있음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영화감독으로서 나름 자부심을 느낄 만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영화 중 ‘플래툰’과 ‘7월 4일생’ 그리고 ‘하늘과 땅’은 베트남전쟁사와 그와 연관된 미국 국내사를 들여다보는 데 있어 최적의 텍스트다. 특히 ‘플래툰’은 미군에 의한 미라이양민학살사건을 그리고 있고 이로 인해 미국 국내에서 반전 운동이 어떻게 확산되는지, 거기에 CBS TV 기자이자 앵커였던 월터 크롱카이트 등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알 수 있게 해 준다. 올리버 스톤의 ‘베트남 3부작’은 통킹만 사건에서부터 북베트남과 남베트남 반정부 게릴라가 연합한 구정 大공세, 치열했던 다낭 전투 등 전쟁 전사(全史)를 복기하며 그려…
실의란 인간이 자신의 삶 속에서나 세계의 어떤 삶 속에서도 의미를 찾지 못하는 정신 상태를 가리킨다. 실의와 분노 속에 있으면서 그러한 정신상태에 도취하거나, 심지어는 그것을 자랑하기까지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을 태우고 산을 달려 내려가는 말의 고삐를 놓치고도 여전히 채찍질을 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모든 것이 어둡게 보이고 모든 사람이 나쁘게 여겨지고, 아무한테나 욕을 퍼부으며 심술을 부리고 싶어질 때는, 절대로 자기 자신을 믿지 않는 것이 좋다. 그런 때는 자신을 주정꾼을 보듯 바라보며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런 상태가 빨리 지나가기를 기다려야 한다. 그런 상태에 있을 때는 가능한 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빨리 원상태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이다. 그것은 바로 주정꾼이 하룻밤 푹 자고 나면 말짱해지는 것과 같다. 끝없는 불행은 좀처럼 없는 법이다. 절망은 희망 이상으로 사람을 기만한다. (보브나르그) 인간은 행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만일 불행하다면 그것은 그 사람 자신의 잘못이다. /주요 출처 : 똘스또이 '인생이란 무엇인가'
나는 고개 들어 3층 학원을 바라본다. 둘째 아들이 공부하고 있는 학원이다. 학원의 불빛이 아직은 밝다. 아들이 학원을 마치고 내려오려면 10분쯤 남았다. 나는 항상 10분 정도는 여유 있게 도착한다. 학원 끝나고 아들이 내려오면 바로 픽업해서 집에 데려가려는 셈이다. 피곤한 아들을 단 1분이라도 빨리 집에 데려가 쉬게 하고 싶은 욕심이다. 나는 핸드폰을 켜서 김윤아의 ‘길’이라는 노래를 듣는다. ‘세상 어딘가 저 길 가장 구석에 갈 길을 잃은 나를 찾아야만 해.’ 노래 가사가 요즘 나의 처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 즐겨 듣는 노래가 되었다. 그때 신호를 받고 탑차가 들어온다. 아마도 생선이나 야채를 배달하는 것 같은 냉동 탑차다. 익숙하고 묘한 동질감을 갖게 만드는 차다. 그동안 관찰해보니 탑차의 주인은 나와 같은 학부모였다. 학원에서 나오는 그 딸의 교복이 아들과 같았다. 어쩌면 아들과 같은 반인지도 모른다는 상상도 해 보았다. 탑차는 내 차를 지나쳐서 학원 앞에 바짝 차를 붙인다. 그때 딸이 아빠를 향해 손을 흔들고 탑차 조수석 문을 열고 올라타서 아빠에게 하이파이브를 한다. 보이지 않아도 그 아빠의 으쓱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나는 아름답다는 생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