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머니 안에서 손가락들이 꿈틀거린다 젖먹이처럼 곤지곤지를 하거나 주먹을 쥐었다 폈다 죔죔을 할 수도 있다 가르쳐 주지 않아도 아가들은 엄지손을 쪽쪽 빨다가 고개를 가누고 두 손으로 땅을 짚고 배밀이를 한다 머지않아 바닥을 기던 손은 덩굴손처럼 영글어서 무엇이든 움켜쥘 수 있을 것이다 흐느끼는 사람의 어깨를 누군가 가만히 움켜쥔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외투가 당신의 어깨에 걸쳐졌다 당신과 나는 열 개의 손가락을 나눠 가졌다 그것으로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약력 ▶2008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입술의 문자』(민음사, 2013)
- 예수와 단군 어느 학교의 교가(校歌)다. 어디일까? “한뫼가 우뚝코 은택(恩澤)이 호대(浩大)한 한배검의 깃치신 이 터에/그 씨와 크신 뜻 넓히고 기르는 나의 명동(明洞)/웅장한 조상피 이 속에 흐르니 아무런 일 겁낼 것 없구나/정신은 자유요 의기가 용감한 나의 명동” 그렇다. 시인 윤동주가 나온 만주(동북 3성) 용정에 있는 명동촌의 명동학교 노래다. ‘한뫼’는 큰 산(백두산)이고 ‘한배검’은 단군왕검이라는 뜻이다. 그 첫머리를 요즘 말로 풀자면 “큰 산이 우뚝 서 있고 은혜와 축복이 차고 넘치는 단군 임금님의 힘이 끼쳐 이루어진 이 터에”로 풀 수 있다. 기이하지 않은가? 명동학교는 기독교인 김약연이 1908년 세운 학교인데 난데없이 왜 단군일까? 그런데 이 명동학교 교실 벽에는 예수와 단군의 초상화가 나란히 걸려 있었다고 하니 이를 또 어찌 생각해야 하는가. 목사였던 김약연은 윤동주의 외삼촌이다. 명동학교의 전신(前身)은 “서전서숙(瑞甸書塾)”으로 ‘하늘의 기운이 상서로운 땅에 세워진 글방’이라는 의미를 가진 민족교육기관이었다. 1906년에 대종교(大倧敎)에 소속되어 있던 서일, 이상설 등이 중심이 되어 세운 학교였다. 그러나 그다음 해인 1907년
‘이준석 돌풍’이 세기와 몸집을 키우며 여의도 정치권 전체가 영향권에 들어갔다. 6·11 국민의힘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가 얼마남지 않았다. 36세의 이준석 후보를 에워싼 다른 중진 경쟁자들의 공세가 거세지고 있다. 하지만 초기 태풍의 눈이 이동 과정에서 ‘수증기’를 공급받으면 더 강하게 성장하듯 ‘이준석 바람’이 현재 그런 양상이다. 물론 지금의 위력을 간직한채 골인지점에 도착할지는 지켜봐야 한다. 그러나 대선을 불과 9개월여 앞두고 나타난 이같은 현상이 단발성으로 끝날 것 같지 않아 보인다. ‘세대교체’는 변화와 쇄신을 요구하는 민심의 또다른 표현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는 수많은 적폐가 끊임없이 분노의 수증기를 생성시켜왔다. 불과 두세달 사이에 ‘LH파문·도자기 대량반입·관평원 유령청사’ 등이 잇따라 민심을 덮쳤다. ‘4·7 재보선’ ‘이준석 바람’에 이어 제3의 태풍을 몰고올 뇌관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일 ‘민심보고대회’를 가졌다. 최근 논란이 일고 있는 조국 전 장관 관련 사과를 포함해 지난 4년의 국정 전반에 대해 입장을 밝혔다. 집값 폭등, LH 직원들의 도덕적 해이, 세종시 특공, 지도층의 가족 입시·취업 비리
땅은 사람의 몸과 마찬가지로 사고파는 대상이 될 수 없다. 땅을 사고파는 것은 사람을 사고파는 것과 같은 행위이다. 노예제도의 본질은 남의 노동을 대가도 주지 않고 빼앗을 수 있는 권리를 특정한 사람에게 주는 것이다. 땅의 개인 소유는 노예 소유의 권리와 마찬가지로 특정한 권리를 특정한 사람에게 주는 것이다. 노예 소유자는 자신의 노예에게 그 노동에 의해 얻어지는 것 가운데 그가 사는 데 필요한 만큼은 남겨준다. 그런데 과연 자유국가의 무수한 무산계급 노동자들은 그 필요한 만큼을 받고 있는 것일까? (헨리 조지) 땅은 자연이 인간에게 준 엄숙한 선물이다. 적어도 땅 위에 태어난 사람은 모두 땅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아기에게 어머니의 젖을 물 권리가 있는 것처럼 당연한 권리이다. (마르몽텔) 내가 땅에 태어난 이상, 그것을 갈고 씨를 뿌리는 데 필요한 만큼은 주어져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내 몫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에머슨) 남자든 여자든 인간의 몸을 사고팔아서는 안 되며, 영혼은 더더욱 사고팔 수 없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땅과 물과 공기도 매매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러한 것들은 인간의 육체와 영혼을 지탱하는 데 없어서
전 세계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아티스트를 꼽자면, 반드시 이 밴드의 이름이 거론될 것이다. 바로 비틀스(The Beatles)이다.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 존 레넌(John Lennon), 조지 해리슨(George Harrison) 그리고 링고 스타(Ringo Starr)로 구성된 비틀스는 시대의 절대적인 아이콘이었고,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았던 그 시절에도 전 세계가 열광했을 만큼 엄청난 파급력을 보여주었다. 1962년 영국 리버풀에서의 밴드 결성부터 1970년 공식 해체까지, 8년이라는 명성과 비교해 매우 짧은 활동 기간이었음에도, 그들은 음악적 그리고 상업적 성공을 모두 거두며, 여전히 후대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런 비틀스의 사진전이 '비틀스 바이 로버트 휘태커 : 셔터 속 빛나는 청춘의 기록(The Beatles by Robert Whitaker)'이라는 타이틀로 열렸다. 원래 작년 겨울 열릴 예정이었으나 방역상의 문제로 연기되었기에 못내 아쉬웠는데, 이렇게 늦게나마 전시를 볼 수 있어 들뜬 마음으로 전시장으로 향했다. 사진전 타이틀에 이름을 올린 로버트 휘태커라는 사람이 궁금한 분들이 있을 것 같다. 혹시
인도는 중국 다음으로 인구가 많다. 우리의 20배가 넘는 13억이다. 이 중 3분의 2는 빈곤상태에 놓여있다. 아동 두 명 중 한 명은 영양실조다. 특히 인도 중부의 마디아 프라데시(Madhya Pradesh) 주의 고다쿠르(Ghodakhurd)와 자그말 피팔야(Jagmal Pipalya) 마을은 가장 심하다. 영양실조와 설사병으로 죽어가는 아이들을 일상적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의 반전을 기대한 걸까. 마디아 프라데시 주 정부는 기본소득 실험을 단행했다. 2011년부터 2013년까지 3년 간 고다쿠르와 자그말 피팔야, 그리고 다른 일곱 개 마을의 주민들에게 성별, 나이, 신분, 직업에 관계없이 매월 200루피(약 3160원)를 지급했다. 아동들에게도 100루피(약 1580원)를 줬다. 수혜자들은 총 6000명. 이들은 기본소득을 받아 식료품비, 보건비, 교육비 등 필요한 곳에 사용했다. 이 소득은 직장 없이 살기에는 역부족이지만 의식주를 해결하는 데는 유용했다. 유니세프(UNICEF)는 2014년 12월 뉴델리에서 열린 세계회의에서 마디아 프라데시의 기본소득 실험 보고서를 영어와 힌두어로 출판하고, 성공 사례로 소개했다. 더욱 더 혁명적으로 기본소득을
지나간 일을 후회하지 마라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허위는 회개하라고 한다. 그러나 진실은 오직 사랑하라고 말한다. 모든 추억을 멀리하라. 지나간 일에 대해 얘기하지 마라. 오직 사랑의 빛에 살며 그 밖의 모든 것은 내버려 두어라. (페르시아 격언) 젊을 때 쌓은 지성은 노년기의 악을 미리 예방하는 것과 같다. 만일 당신이 지성을 갖추는 것이 노년기를 위한 양식을 미리 준비해 두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당신이 늙었을 때 영양 결핍이 되지 않기 위해서 당신은 젊었을 때 미리 대비하고 준비하여야 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길은 가까운 곳에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헛되이 먼 곳에서 찾고 있다. 일은 해보면 쉬운 것이다. 시작을 하지 않고 미리 어렵게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들을 놓쳐버리는 것이다. (맹자) 씨ᄋᆞᆯ은 물입니다. 가는 길이 좁고 험하면 험할수록 아름다운 노래를 부릅니다. 노래는 나만 아니라 남까지도 하나로 싸서 전체에 바치는 향기입니다. 몸을 가졌으니 쾌ㆍ불쾌를 느끼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저 스스럽게 받을 뿐, 나를 거기 팔아서는 안 됩니다. 얻고 피하기에 마음을 쓰게 되면 나를 판 것인데, 나를 잃고는 역사의 주
요새 국민의힘 당 대표 경선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바로 “이준석 돌풍” 때문이다. 보도된 바에 따르면 정치 후원금도 이준석 후보에게 집중되고 있다고 한다. “돌풍”이라는 단어가 무색하지 않다. 그렇다면 이런 이준석 돌풍의 원인은 무엇일까? 일단 “이준석 돌풍”의 원인을 보자면 이렇다. 많은 중도층 유권자들, 그중 특히 비교적 젊은 중도층 유권자들은 현재의 정치판에 획기적인 변화를 바라는데, 그런 희망이 이준석 돌풍이라는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이준석에 의한 돌풍이라기보다는 이준석으로 상징되는 돌풍이라는 것인데, 그렇다면 왜 이런 바람이 민주당이 아니라, 국민의힘에 투영되고 있는지도 궁금하다. 그 이유는 이렇게 추론할 수 있다. 현재 민주당은 강성 친문의 영향력 하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송영길 대표가 부동산 정책을 뜯어고치려 해도,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을 보더라고 그런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스윙보터라고 할 수 있는 중도층은, 강성 친문이 민주당내에 버티고 있는 한, 민주당을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바꾸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해, 주류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는 국민의힘을 선택해 자신들의 희망을 실현하려고…
형은 정의당을, 나는 민주당을 찍었습니다. 촛불 혁명 이후 말입니다. 형과 나는 동시에 낙망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맘 둘 정당이 없다고 씁쓸해했습니다. 형은 정의당이 대학 동아리보다 못하다고 혀를 끌끌 찼고, 나는 민주당이 무능력한데다 새로움이 없다고 분개했습니다.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실토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우리는 비판했습니다. 그 말에 따르면 정치는 더 이상 필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정치적 동물인 인간은 허망해지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는 무한 시장 경쟁주의인 신자유주의를 있는 그대로 본 노 전 대통령의 솔직한 심정을 모르지 않습니다. 권력은 과연 시장으로 넘어갔을까요? 정치는 하위범주일까요? 정치는 경제를 변화시킬 수 없는 걸까요? 전 세계적 현상인 살인적 경제 양극화는 조금이라도 좁힐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일까요? 형과 나는 치열하게 논쟁했습니다. 촛불이 세운 문재인 정권마저 양극화를 심화시킨 것을 보고 우리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세계적 저금리에 따른 유휴 자금의 발 빠른 이동 등 부동산 가격 상승의 기초 조건을 우리는 압니다. 그러나 문정부의 숱한 정책 제시에도 부동산 폭등을 막아내지 못해 여전히 정치가 경제 불평등 완화에 무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