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어두움이 찾아오면 집 근처에 있는 학교 운동장을 자주 간다. 코로나로 인한 언택트(비대면) 사회가 깊어지면서 저녁을 집에서 하면, 밖으로 나가 1시간여 운동장에서 뛰거나 걷곤 한다. 낮에 거의 해를 볼 수 없었던 사상 초유의 긴장마를 거친 뒤 찾아온 최근 며칠 사이의 청명한 가을 날씨는 모처럼 자연이 주는 선물 같다. 모두들 지쳐있다. 코로나가 우리의 모든 일상을 집어삼킨지 벌써 9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숨도 마음대로 못 쉰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돌아오는 가족들을 불안한 마음에 다시 쳐다보는 계절이다. ‘아무 일 없이 들어왔겠지?…’하면서. 코로나사태로 세계경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마이너스 행보를 하고 있다. 그 냉기가 안방까지 깊숙이 스며들고 있다. 이제는 코로나의 비정상이 일상이 되버렸다. 하지만 코로나가 건네준 가을 밤은 좀 다른 얘기도 들려주는 것 같다. “계절을 가리지 않던 불청객 황사도 ‘세계의 공장’이라는 중국이 잠시나마 서행하면서 조금은 뒷걸음치고 있다. 인류가 그동안 무한 질주해 올해는 유난히 지구촌에 기상이변 재해가 많았다. 그래서 좀 쉬었다 가라”고. 오늘밤도 운동장을 쳇바퀴 돌듯 걸으려 한다. 하지만 내 눈에 들어온 달과
지난 22일 우리나라 해양수산부 소속 어업지도 공무원이 북한군에 피살된 후 시신이 불태워진 사건이 터져 큰 파문이 일고 있다. 우리 군의 대응은 적정했는지, 청와대의 대처는 타당했는지를 비롯한 갖가지 논란이 확산 중이다. 우리 국민이, 그것도 공무원이 북한군으로부터 사살되고 불태워진 끔찍한 사태다. 자진 월북이냐, 아니냐 등 본질을 벗어나는 논쟁은 무의미하다. 너무 다른 남북당국 발표의 차이점부터 낱낱이 밝혀내는 게 급선무다. 우리 공무원에 총격을 가하고 시신을 불태운 사건에 대해 북한이 25일 통지문을 통해 입장과 해명을 내놨다. 하지만 상당 부분 모순점들이 많아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북한이 반인륜적 만행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사실관계를 왜곡하는 방식으로 국면전환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우리 국방부가 발표한 내용은 참혹하다. 국방부는 24일 “북한이 북측 해역에서 발견된 우리 국민에 대해 총격을 가하고 시신을 불태우는 만행을 저질렀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북한은 “부유물을 타고 불법 침입한 자에게 80m까지 접근해 신분 확인을 요구했으나 처음에는 한두 번 대한민국 아무개라고 얼버무리고는 계속 답변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가면을 쓴 윤희가 가운을 이민지에게 맡기고 발가벗은 몸으로 정물대에 올랐다. 화가들이 신음 같은 감탄을 연발했다. 정물대 가까운 곳에서 이민지가 손짓 몸짓을 섞어가며 작은 소리로 윤희의 동작을 리드했다.… ‘윤희. 잘 잤어? 이따가 오후 두 시에 극단사무실로 데리러 갈 테니까 거기서 기다려. 어제 산 원피스 입고 나와. 알았지?’ 마치 우주여행에서 돌아온 듯한 들뜨고 야릇한 기분으로 인해 밤잠을 설쳤다. 새벽 나절에 잠시 눈을 붙였다가 깨어난 아침에 이민지로부터 휴대전화 문자가 날아들었다. 이민지. 이 여자의 정체는 도대체 뭘까. 엊그제 스크랩에서 본 자료 속에서 그녀는 극단 카프카에서 주연을 도맡아 하는 대단한 배우였다. 백두 단장과는 오랫동안 손발을 맞춰온 배우라고도 했다. 대개 연극배우들은 어렵게 산다고 들었다. 어쩌다가 TV나 영화에 진출하여 스타반열에 오르는 배우도 있지만, 나머지 연기자들은 곤궁한 처지를 면치 못하면서 오직 예술가의 열정 속에 살아간다고 했다. 그걸 알려준 사람은 윤희에게 연극을 가르쳐 준 장시욱 선생이었다. 그런데 이민지는 그렇지 않았다. 그 으리으리한 고급 아파트와 외제 승용차는 뭔가. 윤희를 마치 피붙이처럼 살피려 들기 시작
세대를 넘어 우리에게 잘 알려진 영화로 슈워제네거가 주연을 맡아 미래 기계와의 전쟁을 그린 ‘터미네이터’(시리즈)가 있다. 그 가운데 1991년 개봉작 ‘터미네이터2’에 나오는 ‘액체금속 인간로봇’의 모습이 세월이 지나도 잘 잊혀지지 않는다. 슈워제네거의 총에 맞아 몸에 큰 구멍이 나도, 몸이 거의 형체가 없이 사라질 것 같아도 이내 원래의 상태로 복원된다. 불사조같은 로봇이다. ‘액체금속(형상기억합금)’은 일정 온도가 되면 기억을 찾아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다는 꿈의 소재로 알려져 있다. 그런 로봇과 싸우는 일은 상상하기 싫은 일이다. 하지만 그런 상상이 현실로 나타났다. “바늘로 100차례를 찔렀다. 순간적으로 찌그러졌으나 바늘을 떼자 원래 모양대로 돌아왔다.” “섭씨 90도로 10분간 가열했지만 일부 스파이크(돌기)만 떨어졌고 전체적인 구조는 변하지 않았다.” 헝가리의 한 대학교 생물학 연구팀이 코로나 바이러스를 상대로 실험한 결과라고 한다. 연구팀은 이같은 바이러스의 질긴 생명력이 오늘날 팬데믹(대유행)을 일으킨 것으로 보고 있다. 또 보통 바이러스는 숙주의 몸 바깥에 나오면 생존 능력이 감소하는 데 반해 코로나는 물건 표면에 붙어 며칠간 생존할 수…
국회의원의 이해충돌과 관련한 정치권의 ‘전수조사’ 공감대가 확산하고 있다. 이해충돌 문제에 관한 관심은 대량해고 사태를 빚은 이스타항공에 대한 창업주 민주당 이상직 의원의 책임론과 피감기관의 수천억 원대 공사 수주 의혹 끝에 국민의힘을 탈당한 박덕흠 의원 사태에 의해 촉발됐다. 차제에 정치인 이해충돌 전수조사의 범위를 ‘지방의회’까지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다만, 이해충돌 여지에 대한 현황조사가 정쟁을 덧내는 불쏘시개가 아니라 ‘이해충돌 방지법’ 제정의 기초자료로 활용해야 한다는 여론이다. 더불어민주당은 23일 정치개혁 태스크포스(TF)를 출범하고 이해충돌방지법을 정기국회 내에 처리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김남국 의원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근본적으로 이해충돌과 관련된 세부적 기준의 규정을 마련하고 이해충돌 사안이 발생할 시 처벌할 명확한 근거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법안 추진에 공감대가 높아지면서 이해충돌 기준을 만들 필요가 있다는 견해에 힘이 실리고 있다. 하태경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여야를 떠나 해당 분야의 전문성과 이해충돌 사이에서 명확한 기준이 없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라며 “(국회의원의) 이해충돌 문제가 정
최근 하버드 대학교 교수이자 정치철학자로 유명한 마이클 샌델 교수는 ‘능력의 횡포(The tyranny of merit)’이라는 제목의 책 출판을 기념한 테드(TED) 강연에서 세계화는 깊은 불평등과 임금 정체를 야기했음에도 불구하고 높은 소득 등 세계 경제에서 살아남으려면 대학을 나와야 한다는 세계화 옹호자들은 비판했다. 여기서 능력(merit)은 실력이나 성과, 지능 등을 뜻하는 용어지만 능력주의(meritocracy)에는 많은 함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교육받거나 능력 있는 계층의 지배층'이 운영하는 어떤 정부를 가리키기도 하고, 원칙 외의 뭔가에 차이를 두는 체제를 의미하기도 한다. 또 마이클 샌델 교수는 지금의 코로나 확산은 교육을 많이 받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수선공, 식료품 가게 점원 등과 같이 급여가 낮다고 무시하고, 존경하지 않던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이 의존해 왔었는지를 자각하게 해준다고 했다. 그동안 공부라는 기준으로 누구는 사무직으로, 누구는 청소부가 되는 능력주의는 공공의 선을 손상시키고, 직업에 열등의식을 심어주는 오류에 빠지게 했다며 이제는 그들이 하는 일의 중요성을 참작하여 급여나 사회적 인정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살면서 지금과 같은 사태는 모두가 처음 겪는 것이긴 하지만 이렇게까지 바닥으로 굴러 떨어질 줄은 아무도 몰랐다. 현실은 상상 그 이상이다. 코로나 사태로 영화 제작일이 중단되고 방송사들도 신규 제작보다는 재활용을 하며 제작비 절감을 하고 있는데 적자의 늪에서 헤매는 악순환이 외주제작사로 전가되었다. 프로그램들은 손쉬운 예능 프로그램으로 도배하다시피 하고 스페셜이라는 미명 아래 재방송을 하며 외주제작사들은 재편집료로 기존 제작비의 30%를 받는다고 한다. 이미 동료직원들을 다 내보내고 사무실 임대료와 기본 제작비를 겨우 맞추는 수준이다. 한 방송사가 계절마다 했던 공모도 줄어들어 겨우 수십 편에 이르던 외주공모가 3편 정도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그나마도 국내 취재 다큐 프로그램 30분 한 편에 500만 원이니 어떻게 제작을 하라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제작사의 울며 겨자 먹기 식의 제작으로 완성도가 떨어질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이제 외국 출장 프로그램 제작은 엄두도 못 낸다. 출국은 되어도 상대국의 입국 보장이 안 되는 현실에 또 입국 후 격리되어야 하니 외국 출장은 힘들다. 그나마 제작사들은 외주PD들에 비해 상황이 나은 편인데 외주PD들은 제작 일을 못하
코로나19 이후 하염없이 추락했던 주가가 최근 역대 최대폭으로 반등하면서 주식투자 인구와 자금, 거래규모 등에서 각종 신기록을 수립하며 주식대박의 무용담들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지난 3월 19일 장중 1439로 무너졌던 코스피 지수는 6개월만에 1천포인트 가까이 상승하며 2400선을 넘었고, 코스닥도 100% 이상 뛰어오르며 900선을 눈앞에 두고 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주목할 만한 변화는 증시흐름을 주도하는 주체가 ‘기관과 외국인’에서 ‘개인’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전 세계적인 코로나19 확산으로 경기 침체 우려가 불거지면서 외국인과 기관이 팔아치운 물량을 개인이 고스란히 받아내며 지수를 방어한 것을 빗대어 ‘동학 개미 운동’이라는 신조어까지 나오기도 했다. 이 무렵 증시로 유입된 개인투자자 자금은 무려 70조 원으로 여기에 선물옵션 자금까지 더하면 80조 원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정부가 코로나19 위기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 대대적인 ‘돈 풀기’에 나서면서 결국 시중에 넘치는 유동자금이 부동산을 대체할 투자처를 찾아 하루 평균 약 6천억원씩 증시로 몰린 탓으로 풀이된다. 특히 2030세대의 경우 ‘비대면 경제’가 보편화되고 안정적 일자리
어려서 3권짜리 삼국지를 읽었다. 표지가 떨어져나간 이 책을 동네 청년들이 돌려가며 보았다. ‘새농민’이라고 월간지가 우체부 아저씨의 붉은 가죽가방에 담겨 배달되었다. 아마도 당시 농어촌 사람들을 계몽하기 위해 만든 잡지였을 것이다. 거기서 고바우 영감을 처음 만났다. 이마에 머리카락 한 올 세우고 세상을 비평하는 4칸짜리 만화였다. 세월이 흘러 책이 줄어들고 모바일이 늘었다. 전기만 통하는 철선인줄 알았는데 전기줄 속으로 말이 오간다. 시골마을 이장집에 전화기가 들어오자 동네사람들이 줄을 선다. 도시에 나간 아들딸에게 소식을 전하고 그 자녀들이 전하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 줄을 서니 이장님 집 앞은 줄서는 맛집(!)이 되었다. 이장님댁 전화를 쓰기위해서는 10원짜리 동전이 필요했다. 시외전화 전용전화기로 시내전화가 되는 줄을 누군가가 알아냈다. "유레카~!" 대단한 발견이었다. 시외전화 되는 기기이니 시내는 당연히 되는데 시외만 거는 줄 알았을 정도로 착하게 몰랐다. 모바일은 무선으로 연결된다. 이제 4살 아이도 그림책을 문지르다 화면이 바뀌지 않으니 책을 내던진다. 매일 오전, 오후로 예쁜 사진을 주고 받는다. 참 좋은 글을 어디서 구했는지 긴 문장을 정성
더불어민주당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공수처장) 후보 추천과정의 ‘야당 비토권’을 무력화하는 공수처법 개정안을 상정하면서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국정원·검찰·경찰 개혁 전략회의’에서 공수처의 조속한 출범을 주문했다. 지난해 패스트트랙 과정에서 좌절을 맛본 국민의힘은 그동안 ‘태업’전략을 써왔다. 그러나 이제 전략을 바꿔야 한다. 현행법에 따라 공수처 출범을 수용하면서 ‘독립성 확보’를 뒷받침하는 정치적 역할을 모색하는 게 맞다. 여당이 추진하고 있는 공수처법 개정안은 ‘백혜련안’과 ‘김용민안’ 두 가지다. 대략 공수처장 추천위원을 여야가 각각 2명씩 추천하고, 총 7명의 추천위원 중 6명의 찬성으로 추천하도록 한 현행 야당의 견제권을 무력화(無力化)하는 내용이다. ‘백혜련안’에 따르면, 10일 이내에 야당이 추천하지 않으면 국회의장이 한국법학교수회 회장 등을 추천할 수 있도록 하고 의결정족수도 6명에서 5명으로 낮추고 있다. ‘김용민안’에는 공수처 인력을 대폭 늘리고 자격요건도 완화해 민변 출신들의 진출도 쉽게 하도록 하는 내용이 들어있다. 21대 국회 들어서 제1야당 국민의힘은 처장 추천위원 명단 제출을 해태하는 전략으로 공수처 출범을 지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