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에는 귀함과 천함이 따로 없다고 했다. 거짓말이다. 가난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불편할 뿐이라는 말도, 열심히 공부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말도 마찬가지다. 노동을 이윤창출의 수단으로 치부하는 자들이 눈가림용으로 만들어낸 삿된 꿈이다. 그 삿된 꿈에 취해, 저임금과 장시간노동을 참아내게 하려는 마약성분의 처방전일 뿐이다. 돈이 주인인 세상에서 가난은 죄악이다. 아무리 공부를 해도 가난한 자의 눈에는 답이 보이지 않는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 역시 헛소리다. 용은 개천에서 나오지 않고 강남에서 나온다. 노동자가 평생 벌어도 모을 수 없는 돈을 강남에서는 집 한 채 사고 팔면 뚝딱 벌어들인다. 성공의 조건은 노력(努力)에 있지 않고 재력(財力)에 있다. 당연히 인격보다 돈이 대접받는다. 2010년, 거액의 회사 돈을 빼돌린 그룹 총수가 254억 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그룹 총수는 벌금 낼 돈이 없다고 배를 내밀었고, 판사는 벌금 대신 일당 5억 원짜리 노역을 허락했다. 벌을 받기는커녕, 그룹 총수는 하루에 5억 원씩 벌금을 털어내는 수단으로 교도소를 이용했다. 황제노역이라는 말이 나오게 된 문제의 사건과 판결이었다. 돈이 서고 사람이 추락하는 세상
전통이란 자기 자신이다. 문화재에 담긴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는 것은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는 값진 일이다. 코로나19로 답답함을 달래줄 국보급 전시가 열리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과 문화재청이 공동으로 펼친 특별기획 ‘신국보보물전(新國寶寶物展)’이다. 방역수칙에 따라 온라인으로 사전 예약된 시간에 관람을 했다. 일생에 꼭 봐야 할 전시다. ‘새 보물 납시었네’ 슬로건처럼 사상 최대 규모로 국보와 보물을 선보였다. 간송미술문화재단을 비롯한 유물 대여 기관만 34곳이다. 외부로 처음 공개된 국보와 유물이 눈길을 끈다. 간송이 소장한 22점, 이화여대가 보유한 청자 순화 4년명 항아리 등이 바깥에 나와 눈길을 끈다. 청자가 푸른빛이 아닌 녹갈색을 띠고 있다. 굽 안쪽에 제작 시기, 사용처, 장인의 이름이 새겨져 역사적 가치가 높다. 특히 두루마리 그림으로 희소성이 높은 조선의 대표적 풍경화는 특별전의 압권이다. 8m가 넘는 심사정(1707~1769)의 마지막 작품 촉잔도권(蜀棧圖圈⦁818*58cm)과 이인문(1745~1821)의 강산무진도(江山無盡圖⦁856*43.9cm)를 한자리에 배치했다. 심사정은 조선 최고의 실력을 갖춘 화가였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정
서울 성북구 사랑제일교회, 8월15일 광화문 집회가 코로나19 재확산의 중대한 계기가 된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반성하고 자숙하며 방역에 적극 협조해야 할 사람들인데 이들이 하는 행위를 보면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보건소 의료진과 방역 공무원들은 밤과 낮, 주말과 연휴도 쉬지 못하고 코로나19 종식을 위해 탈진한 상태에서 싸우고 있다. 식당과 가게, 공장은 문을 닫고 국민들은 일자리를 잃고 있다. 아이들도 제대로 된 등교를 못하고 있다. 그동안 문재인대통령과 대통령과 정부, 지방정부, 경찰은 입이 닳도록 방역 협조를 호소해왔다. 하지만 이들은 국민 건강과 사회 안전엔 아랑곳없이 방역 당국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교회는 영혼의 상처를 받은 사람들을 품고 아픔을 어루만져 주는 곳이다. 그러나 죄의식도 없이 방역방해 행위를 저지르고 있다. 경기도의료원 파주병원에 입원했던 사랑제일교회 전도사 50대 남성이 몰래 도주했다가 다음날 새벽 붙잡혔으며, 남양주의 한 병원에서도 이 교회 관련 확진자가 방역당국의 눈을 피해 사라진 일도 있었다. 포천시에서는 이 교회 교인 확진자 부부가 코로나19 검사를 위해 찾아온 보건소 직원들을 껴안고 침을 뱉기도 해…
며칠 전 비도 내리고 해서 방 정리를 하다가 대학 시절의 노트를 하나 발견했다. 당시 나는 시를 써보겠다고 항상 가방 안에 작은 노트를 가지고 다니곤 했다. 지금 다시 읽어보니 치기 어리고 낯 뜨거운 글이 많았지만, 덕분에 즐겁게 페이지를 넘겨보았다. 그 노트에는 시 이외에도 내가 만났던 주변인들과의 대화와 그때의 감정을 적어둔 글도 간간이 보였는데, 피 끓는 청춘의 시기였던 만큼 연애에 관한 이야기가 가장 많았다. 우습게도 그 시절의 우리는 다들 비슷한 입장이었음에도, 누군가를 상담해줄 때면 연애 전문가로 빙의해 자신만의 철학을 풀어놓곤 했다. 노트 중간쯤의 짧은 글에서 오래된 연인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당시 수년간의 연애로 권태가 온 친구와 나눈 대화의 마지막 부분에 ‘불편함과의 균형’이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 그때는 저 알 수 없는 결론에 서로 만족하며 자리를 파했던 것 같은데, 지금 돌아보니 어쩌다가 그런 말이 나왔나 싶다. 그래서 나는 그때 그 상황으로 돌아가 보았다. 기억을 더듬어 ‘불편함과의 균형’에 대해 생각해보니, 어떤 새로운 일이 일어났을 때 발생하는 긍정적 자극으로 인해 적절한 삶의 균형이 맞춰진다는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하는 결론에 다
남한 강단사학계의 ‘삼국사기’ 불신론 일반 국민들은 잘 모르지만 남한 강단사학계에는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이라는 것이 있다. 남한 강단사학계의 행태에 이해하지 못할 내용이 있으면 모두 일본인 스승들이 만든 것을 추종하는 과정에서 생긴 것이라고 생각하면 정확히 맞다. 그런데 민족사학자들이나 역사에 관심이 있는 일반국민들도 김부식의 ‘삼국사기’를 비판한다. 그러나 남한 강단사학자들의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과 민족사학자들의 ‘삼국사기’ 비판론은 그 방향이 완전히 다르다. 민족사학자들은 ‘삼국사기’가 사대주의 사관에 빠져서 고대사의 많은 부분을 생략했다고 비판한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고구려와 신라의 건국연대에 대하여〉라는 글에서 고구려의 건국연대가 200년 삭감되었다고 주장했다. 신채호는 “이 탈루는 김씨(김부식)의 소홀한 허물도 없지 않으나 기실 신라사가의 삭감한 죄가 더 많으니 어찌 김씨만 책하랴”라고 말했다. 고구려의 건국연대를 삭감한 것은 김부식만의 단독 행위가 아니라 신라 건국연대가 고구려·백제보다 늦은 것을 수치스럽게 여긴 신라 역사가들이 두 나라의 건국연대를 삭감했다는 것이다. 신채호가 ‘삼국사기’를 비판했다는
22일 부산에서 회동한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양제츠 중국 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원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을 조기에 성사시키기로 합의했다. 시 주석의 방한을 놓고 ‘코로나19 상황이 안정돼 여건이 갖춰지는 대로’ 라는 전제가 붙긴 했지만, 두 고위급회담은 교착 상태가 깊어지고 있는 한반도 평화구축 작업을 활성화할 새로운 계기 마련에 대한 희망을 품게 한다. 한반도 평화 진전을 위한 중국의 보다 능동적인 역할을 이끌어내길 기대한다. 부산 웨스틴조선호텔에서 가진 4시간 가량의 회담에 이은 오찬까지 약 6시간 동안 회동한 서 실장과 양 정치국원은 ‘코로나19 대응 협력’, ‘고위급 교류 등 한·중 관심 현안’, ‘한반도 문제와 국제정세’ 등 폭넓은 이슈에 대해 허심탄회하고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눴다는 것이 청와대의 설명이다. 회동에서는 최근 미·중 관계에 대한 문제 등 ‘예민한’ 이슈도 다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는 양 정치국원이 최근 미·중 관계에 대한 현황과 중국 쪽 입장을 설명했고, 서 실장은 미·중 간 공영과 우호 협력 관계가 동북아 및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 중요함을 강조했다고 ‘간단’하게 언급했다. 두 사람은 양국의 현안 전반에 걸친 폭넓은…
반세기전인 1970년 12월 7일 아침 폴란드 바르샤바에 있는 아우슈비츠 유대인 추모비 앞에서 전세계를 놀라게 한 일이 벌어졌다. 당시 폴란드를 방문한 서독 총리 빌리 브란트가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 희생자 위령탑을 찾았는데, 헌화하던 도중 비에 젖은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브란트가 나치 독일의 잘못을 사죄한 것이다. 세계 언론들은 “무릎을 꿇은 것은 한 사람이지만, 일어선 것은 독일 전체였다”며 브란트의 용기를 높이 평가했다. 국가의 흥망성쇠를 지리와 환경의 관점에서 분석한 ‘총·균·쇠’의 저자로 유명한 재러드 다이아몬드 미국 캘리포니아대(UCLA) 교수는 지난해 우리나라를 방문해 “일본은 피해 국가 폴란드를 방문해 무릎 꿇고 사죄한 독일 빌리 브란트 전 총리에게 배워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브란트의 통렬한 사과는 세계사에 큰 울림을 주고 있다. 미래통합당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19일 광주 5·18묘역을 방문해 무릎 꿇었다. “광주에서 비극적 사건이 일어났음에도 그것을 부정하고 5월 정신을 훼손하는 일부 사람들의 어긋난 발언과 행동에 저희 당이 엄중한 회초리를 들지 못했다”면서 당 책임자로서 사죄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보수정당 대표가
필자는 1980년을 전후하여 3년간을 경기도의 한 기초자치단체의 면사무소에서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를 담당하는 팀의 일원으로 근무한 적이 있다. 그린벨트는 2평짜리 돼지 축사 하나 마음대로 못 지을 정도로 강력한 규제였다. 축사 신축은 아예 허가가 불가능하다보니 무허가로 축사를 지은 주민에게 철거를 최고하고, 이행하지 않을 경우는 팀원 모두가 현장에 나가 강제 철거를 했다. 돼지나 오리 두세 마리 있는 축사를 해머나 빠루(긴 장도리)로 철거를 하노라면 죄를 짓는 심정이었다. 그냥 자포자기한 마음으로 철거하는 것을 보고만 있는 주인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욕설을 하며 거세게 항의하거나 막대기 등으로 폭력을 가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현장에 있었던 공무원들이 맞는 경우가 빈번했다. 그린벨트 지역에 불법행위가 이루어진 것을 몰랐거나 그린벨트에 신축이 허용되지 않는 것을 모르고 허가하여 해당 공무원들이 징계처분을 받는 경우도 많았다. 또 뇌물을 받고 그린벨트의 대장을 위변조하여 건축이나 개발행위를 탈법적으로 허용했다가 적발되는 경우도 빈번했다. 급기야 정부는 그린벨트 건축물대장 변조와 위조를 차단하기 위해 항공촬영으로 건물과 지형물 지도를 작성·관리했다. 정부가 그
천정부지로 오르는 서울 및 수도권 집값 안정을 위한 방안이 강력하게 추진되고 있다. 7·10 부동산대책을 통해 다주택자와 단기거래 부동산에 대한 세제 강화가 추진되었고, 8·4 주택공급대책을 통해, 태릉골프장, 과천청사, 용산 캠프킴 등 국공유지를 개발하여 총 13만2천 가구의 주택을 건설한다는 계획이 발표되었다. 그러나 아무리 공급이 많이 늘어도 다주택자가 투자 목적으로 집을 소유한다면 집값은 떨어지지 않으며, 또 세금정책은 항상 바뀔 수도 있다고 보아 일단 버티고 보자는 국민이 많은 상황이라면 효과를 보기 어렵다. 공급확대 정책도 필요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자본이 부동산에 쏠리는 현상을 차단하는 것이 필요하다. OECD도 최근 2020 한국경제보고서를 발표하면서 한국은 자본의 부동산집중 등의 금융안정 리스크에 특별히 유의해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현재의 집값이 너무 올라 있어 주택을 사려는 사람, 특히 신혼부부 및 최초 구입자 들에게는 너무나 문턱이 높다. 젊은 2030세대들의 경우 서울아파트를 사려면 한푼도 안쓰고 모아도 15년 이상 소요되며 불가피한 소비만 하고 저축을 하더라도 서울은 25년, 수도권은 20년 걸린다. 평생 일해서 그전 세대에 소득을…
청보리가 일렁이는 1970년 5월, 목포에서 출발한 여객선을 타고 네 시간 만에 보길도에 내렸다. 안개비를 맞으며 첫 부임지인 보길초등학교에 도착했을 때, 옅은 막걸리 냄새가 섞인 교장 선생님의 환영사에 정을 느꼈다. 완도군에서 가장 빼어난 자연환경의 학교라며 축하해주던 곳이 멀고 깊은 섬이라니. 고산 윤선도가 제주도로 은신하러 가는 중에 풍랑을 만나 들렸다가 13년을 지낸 보길도는 그분의 자취가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첫발을 디딘 곳을 ‘등문’이라 하고, 잠시 고향에 가기 위해 배를 탄 곳을 ‘청별’이라 한 지명이 어찌 그리 예쁘던가. 고산이 머문 집터의 주춧돌이나, 이집 저집 안방에 붙어 있는 먹물 묻은 벽지에 숨어 있는 이야기는 값진 보물이었다. 고산이 정성을 쏟아 조성하고 아낀 운동장 옆의 새연정은 아이들의 미술실이고, 냇물을 타고 온 수달이 밤에 비단잉어를 사냥하고 머리만 남겨 놓은 새연지 안의 바위는 생태계의 학습장이 아니던가. 밤새 뚝뚝 떨어지는 동백꽃과 돛대 끝에서 떨고 있는 칼바람 하며, 제비와 동박새가 멱살잡이로 차지하려는 둥지와, 허기진 주민의 삶도 가공하지 않은 글 소재였다. 어느 교수가 고산 연구차 왔을 때 고산 집이 있던 부용동의 주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