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일평생을 학창시절 열심히 공부해 입시경쟁도 무난히 치르고, 젊은 날에는 직업전선에서 치열한 경쟁을 헤치고 생활기반도 다지며, 자녀들 양육과 교육부터 결혼시켜 가정을 꾸려주기까지 힘겨운 삶의 여정을 보내고 정년이 되어 은퇴하고 젊은 날 느껴보지 못한 편안하고 여유로운 삶의 노후를 보내게 된다. 사람에 따라서는 노년의 삶은 젊은 날 못한 것에 대한 새로운 시작이 될 수도 있지만 대체로는 인생의 휴식기이자 정리하는 시기이다. 그런데 그 노년의 삶은 오늘날과 같은 백세시대에는 3~40년의 긴 세월이다. 사람에 따라 사전 준비가 되어 있기도 하지만 더러는 대책 없이 맞이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보람되고 편안한 노년의 삶’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조선시대 성리학자 장현광은 ‘노년의 삶은 지나치게 간섭하여 잔소리 말고, 잡스러운 일을 줄여 심신을 피곤케 말고, 마음을 비워 잡념을 끊고, 자신의 삶을 천지자연의 이치에 맡겨 지나치게 아등바등하지 말라’고 했다. 구약성서 시편에 ‘사람의 연수는 70’이라 했고 ‘강건하면 80이상이 되기도 하지만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고생)와 슬픔’이라고 쓰여 있다. 의학이 발달되어 수명이 늘어가고 있는 우리는 욕심을 버리고…
그대의 미소는 잠깐뿐 박 영 하 그대 눈에 비친 나의 삶이 안타까워 보여서 잠시 달래 주려는 마음으로 나를 기억하지는 마십시오 애절한 눈으로 잠 못 이루는 연민이 나를 감싸지는 못하니까요 오늘 그대의 미소는 잠깐뿐 언젠가는 거두어 가니까요 그림자에 가리워 보이지 않는다고 돌아서 가노라면 자꾸만 엷어지는 내 마음 나를 기억하지 마십시오. 박영하 1955년 서울 출생, 한국시인협회 이사, 여성문학인회 이사. 월간 ‘순수문학’ 편집주간
연거푸 ‘전국 장맛비 계속’이라는 기상예보가 이어졌다. 눅눅한 공간은 때로 마음을 녹녹하게 만들 때가 있다. 동이 트자 잠시 하늘이 개는 것 같아 장마철 틈새 공략으로 강아지 ‘해치’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보았다. 촉촉하게 비를 머금은 골목에선 연거푸 쌉싸름한 냄새가 배어나왔다. 누군가의 손길이 오갔을 풀, 꽃, 나무, 오래된 건물마다의 냄새들로 채워진 길. 드문드문 그 길을 따라 걸어 다니는 사람들, 마치 흑백사진 속 풍경처럼 정갈하게 보였다. 한참을 걸어 아파트를 끼고 있는 작은 공원에 도착했다. ‘아니, 이렇게 예쁘단 말이야!’ 새로 돋은 줄기마다 풍성한 잎을 매달고 싱싱하게 웃고 있는 나무들이 눈에 들어왔다. 지난 봄이 채 시작하기 전이었던 것 같다. 공원의 조경수들을 가지치기 하던 때가 말이다. 과감한 가지치기로 하나같이 헐벗은 모습에 ‘저렇게까지 잘라야 하나’ 하며 안쓰럽기까지 했었는데. 잘려나간 생체기 위로 풋풋한 새순을 내밀고 또 다른 얼굴들을 선보이다니. 다닥다닥 엉켜있는 명자나무 무리는 참새 가족을 품었는지 작은 참새들이 연신 들락거렸다. 저 나무들에게는 서로 햇살을 더 받겠다며 뒤엉켜 자란 가지들을 과감하게 잘라낸 것이 어쩌면 다시 한 번…
불 문 영 하 뼈 없는 몸이 납작 엎드린 채 온돌의 입 속으로 기어 들어간다 홀린 듯 홀린 듯 내장 깊숙이 흘러 들어가는, 어둠을 먹고 냉기를 밀어내는 낼름낼름 혓바닥 같은 불이여, 불이여 샤먼의 주문인가 시뻘건 불이 해탈한다 어두운 골목길 고래*를 벗어나 벌떡 일어서는 불이 굴뚝으로 올라가더니 초혼의 흰 옷자락인 듯 나부끼며 뜨거운 몸을 해체한다 불이 자신을 사르며 지나간 길 위에 누천년에 이르는 생의 내력이 피었다 지곤 한다 *방의 구들장 밑으로 낸 고랑. 문영하 1951년 경남 남해 출생. 서울시 초등교사로 32년간 근무, 명예퇴임. 2015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계간 ‘미네르바’시예술아카데미상 수상. 한국시인협회 회원. 시집 ‘청동거울’이 있음.
햇감자가 생겼다. 감자하면 떠오르는 것이 <동백꽃>이다. 김유정의 단편 <동백꽃>에서 옆집 ‘점순이’가 ‘나’에게 내밀던 큼지막한 감자 세 알이 퍽이나 인상 깊었다. “느 집엔 이거 없지?”라며 감자를 내민 점순이의 손을 밀치던 ‘나’의 비참한 심정이 감자 알 만큼이나 크게 가슴에 들어찼기 때문이었다. 감자 요리를 그리 즐기지 않는다. 그래도 감자 수프는 좋아한다. 감자를 깎는 일은 좀 재미있다. 칼끝에서 돌돌 말리는 감자껍질은 나선으로 바닥에 떨어진다. 나선으로 꼬인 상념들도 감자 껍질 떨어지듯 툭 떨어진다면 좋겠다. 양파도 깐다. 감자 수프엔 양파가 들어가야 감칠맛이 난다. 이상하게도 수프는 비 오는 날 만들게 된다. 홈통에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스프를 만들면 마음은 차분하게 수프에 몰두한다, 깊은 냄비에 주걱을 넣어 바닥에 가라앉는 전분을 저으면서 비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낮은 소리에 집중한다. 그러다보면 수프는 다 만들어지고 집안에는 부드러운 감자 수프 냄새가 머문다. 감자 수프의 맛은 밋밋하다. 나처럼 싱거우면서도 묘하게 숟가락이 자주 간다. 특별한 맛은 아니지만 한 숟가락 입안에 넣으면 나른하고 따뜻하게 목을 넘어간다. 걸
경기신문사가 27일 용인사옥 1층 대회의실에서 국내 대형여행사인 참좋은여행과 ‘2020 경기도내 31개 시·군 국내여행상품 공동개발 추진 및 마케팅 업무 협약식’을 체결했다. 언론사와 여행사가 함께 경쟁력 있는 여행상품을 개발, 위축된 지역 경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이 프로젝트가 성과를 맺어 코로나 19 사태로 지친 지역민들에게 위안이 되기 바란다.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하면서 국내·외 여행 부문은 최악의 상황에 처했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해외여행 수요는 한마디로 바닥을 쳤다. 국내여행도 마찬가지다. 여행사는 물론이고 숙박업소, 요식업소 등 관련 업종들도 큰 타격을 입고 있다. 실제로 e커머스(전자상거래) 업체인 티몬이 고객 94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 '올해 여름휴가 계획을 세우고 있지 않다'고 응답한 사람들이 50.9%로 절반을 넘었다. 37.5%는 국내로 여름휴가를 계획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에 따라 e커머스 업계는 여름 휴가철 국내 여행상품을 속속 내놓고 있다. 업계는 코로나19 사태가 계속되는 한 국내 여행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5월 경기도 관광업계를 돕기 위해 경기도가 티몬과 함께 진행한 ‘
새로 임명되는 이인영 통일부장관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특히 금번 추석에 이산가족상봉을 이루겠다는 그의 생각에 많이 공감한다. 과거 금강산상봉행사장에서 경험했던 이산가족의 한(限)을 필자들과 함께 나누면서 남북관계의 복원을 소망해 본다. 2002년 초가을, 금강산에 있는 대형 식당 온정각, 100개의 테이블에 500명 가까운 우리측 상봉단이 꿈에도 그리던 북측의 가족을 기다리고 있었다. 할머니 한분과 두 딸, 그리고 사위 두 명으로 이루어진 한 가족도 50년 전 자신들을 두고 북으로 떠난 남편이자 아버지인 노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원래 딸 셋을 두었지만 첫째 딸은 병환으로 이곳에 오지 못했다고 한다. 약속된 시각, 북측 이산가족을 태운 버스가 온정각 주차장 안으로 서서히 들어섰다. 버스에서 내리는 북측 할아버지들은 배급을 받은 듯 비숫하게 생긴 새 모자와 새 구두를 신고 있었고 할머니들은 깨끗한 한복을 입고 있었다. 아버지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 딸들은 입구로 들어서는 북측 할아버지들과 옆에 선 어머니의 얼굴만 번갈아 보고 있었다. 갑자기 할머니의 눈빛이 흔들리더니 손을 들어 올렸다. 바로 그이다! 할머니는 다가온 할아버지의 손을 잡으며 잠깐 알은체 하더니
“태영호 의원이 사상 전향 여부를 저한테 다시 물어보는 것은 아직 남쪽의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것이라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국회에서 펼쳐진 통일부 장관후보자 인사청문회장에서 태영호 미래통합당 의원의 불편한 ‘사상 전향’ 질문 공세를 점잖게 받아넘긴 이인영 통일부 장관의 답변은 백미(白眉)였다. 태 의원의 거듭된 질문에 “그 당시에도 주체사상 신봉자가 아니었고 지금도 아니다”라고 못 박은 답변도 시원했다. 태영호는 우리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탈북 고위급 인사다. 논란이 있지만, 태영호의 부친은 김일성의 전령병 활동 경력을 가진 항일 빨치산 1세대 태병렬 인민군 대장이고, 부인 오혜선 씨도 김일성의 빨치산 동료로서 노동당 군사부장이었던 오백룡의 일가로 알려졌다. 탈북 당시 태영호는 주영(駐英) 북한 대사관에서 10년간이나 일한 서열 2위의 베테랑 외교관이었다. 태영호의 탈북 동기에 ‘북한 체제에 대한 회의감’이 빠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류경식당 종업원 집단 탈북 사건 이후 25세 이상 해외 거주 외교관 자녀의 평양 소환령이 떨어져 맏아들이 평양에 돌아가야 할 상황에 놓인 것이 결정적 계기였다는 설명이 가장 인간적이다. 볼모…
비상식량 서대선 백련꽃 세 송이 사들고 꽃집을 나섰네 앞에서 걸어오시던 할머니 한 분 두 손 모아 합장하곤 공손히 절을 하시네 부처를 보신 할머니 두 손에서 돋아난 백련꽃 이파리 마다 천수관음의 손이 신호등 앞에 서있는 백팔번뇌 주머니에 연밥 한 알씩 넣어주시네 서대선 1949년 경북 달성 출생. 2009년 시집 『천 년 후에 읽고 싶은 편지』로 작품 활동 시 작. 2013년 『시와 시학』신인상. 2014년 시집 『레이스 짜는 여자』. 2019년 시 평론집 『히말라야를 넘는 밤 새들』. 2019년 시집 『빙하는 왜 푸른가』. 한국 예술 평론가협의회상(문학 부문), 신구대학교 명예교수, 문화저널 21 편집위원.
요즘 10대 청소년들은 극장에서 영화를 보지 않는다고 한다. 이유가 간단하다. 코로나가 퍼지기 전 설문 조사에 따르면 아이들이 영화관에 가지 않는 가장 큰 이유로 ‘2시간 동안 핸드폰을 볼 수 없기 때문’을 꼽았다. 단 몇 시간일지라도 스마트폰과 떨어져 있어야한다면 그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겠다는 단호함이 느껴진다. 이 세대가 주류 소비층이 되는 미래엔 극장 산업이 위태로워질 거라는 전망도 있다. 기억이 있던 시절부터 핸드폰과 함께 한 신인류는 기존 세대의 문법과 다른 공식을 만들어 가는 중이다. 우리 반 아이들은 2011년생이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지 않는 10대 후반들과도 차이가 있는,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세상에 내놓은 지 4년 뒤에 태어났다. 부모의 단호한 의지가 개입된 몇몇 아이들을 제외하면 영아 시절부터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자랐다. 살아오면서 휴대폰을 사용한 날보다 휴대폰을 사용하지 않은 날을 세는 게 빠르다. 컴퓨터 키보드는 독수리 타법으로 치지만 스마트폰 타자는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칠 수 있다. 무인도에 가져갈 필수품으로 1위로 스마트폰을 꼽는 아이들이 많다. 어른들과 아이들의 스마트폰 사용 입장 차이는 극과 극을 달린다. 부모님은 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