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내린 눈으로 세상이 하얀색으로 변신했다. 뽀드득 뽀드득하는 소리에 어릴적 세배 가는길 추억도 생각난다. 시베리아 한파로 기온은 곤두박질 치며, 땅바닥은 얼었지만 수북히 쌓인 눈은 어찌보면 따뜻하다. 길이 미끄러우니 조심해서 다녀오라는 아내의 걱정어린 당부도 있었기에, 조심스럽게 걸음을 도덕산 정상으로 옮긴다. 가는길에 어린아이와 눈싸움을 하는 젊은 아빠가 보이고, 조금 떨어진 곳 엄마는 눈사람을 만드는 듯 눈을 크게 뭉쳐 굴린다. 누구는 눈덮인 산을 보러가고, 누구는 눈으로 놀이삼아 웃으며, 엄동설한 한파 속 즐거움 가득담은 추억을 만드느라 여념이 없다. 가는길 마다 소복히 쌓여있는 함박눈은 하얀 선녀의 고운 모습으로 보여지기도 한다. 온 천지를 깨끗함과 정갈함으로 새하얗게 물들여 놓은 눈은 필자의 마음을 정화시키며 도덕산으로 발길을 이끄는 마력의 원천이다. 나뭇잎 떨어진 앙상한 가지위에 눈옷을 입은 나무와 겨울 풍경을 바라보며 걷다보니 어느덧 강렬한 추위는 상념 밖에 있다. 도덕산에서 ‘도덕(道德)’은 사회를 구성하면서 인식한 것이 모습으로 드러난다. 사람 서로 간의,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사람이 지켜야하는 준칙을 정해 같이사는 공존의 삶 속에 사람의…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이 지난달 9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인구 100만 이상 대도시와 실질적인 행정수요, 국가균형발전 등을 고려해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정하는 시·군·구에 행정·재정 운영 및 국가의 지도 감독에 대한 특례를 둘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따라 경기도의 수원시와, 용인시, 고양시, 그리고 경남 창원시 등 인구 100만 명 이상 기초 4개 대도시는 2022년부터 ‘특례시’가 된다. 특례시란 기존 광역지방정부(시·도)와 기초지방정부(시·군·구)의 중간 단계 지방정부라고 생각하면 된다. 해당 도시들은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 국회통과를 크게 환영하고 있다. 100만 명 이상 4개 대도시의 맏형격인 수원시 염태영 시장은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은 기초지방정부의 지위와 권한과 지위를 제도화하는 초석이 될 것” “100만 인구 대도시를 특례시로 지정하고 행정수요·국가균형발전·지방소멸위기 등을 고려한 시·군·구 특례조항을 넣어 각자 몸에 맞는 옷을 입고 다양한 행정을 펼칠 수 있게 된 점도 큰 진전”이라며 기뻐했다. 그동안 이들 기초 지방정부들은 매우 불합리한 차별을 받아왔다. 지난 2002년에 이미 100만 명을 넘어섰고 2020년 말 기준 123만 명을…
어떤 주인이 모든 걸 다 준비해주고 누군가에게 일을 맡겼다. 그런데 정작 상대는 딴 맘을 먹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애초에는 신뢰할 만하니 그랬을 텐데 말이다. 과연 그 끝은 어찌 될까? 예수가 들려준 이야기다. “어떤 사람이 포도농사를 위해 직접 울타리도 세우고 즙 짜는 틀도 만들어놓고 망대까지 세웠다. 이렇게 일일이 다 챙겨 주는 주인은 없었다. 그는 마을의 어떤 이들에게 세를 받기로 하고 여행길을 떠났다. 이제는 수확철이겠거니 하고 세를 거두려 자기 수하를 보냈다. 주인없다고 어느새 주인 행세를 하던 자들이 주인이 보낸 이를 실컷 때리고 빈손으로 보내버렸다.” 뭔가 잘못 알아보고 그랬지, 하고 주인은 다른 자기 하인을 이곳으로 보냈더니 머리를 거의 박살내다시피 하고 능욕까지 했다. 상황이 좀 이상하긴 했으나 그래도 혹시, 하고 또 사람을 보냈단다. 그러자 이번에는 아예 죽여버리기까지 했다. “내 아들을 보내면 다르게 대하겠지.” 오산이었다. 상대가 얼마나 악한 지 미처 알지 못했던 거다. 아들이 오자 “이 자는 상속자다. 해치우면 이 포도원은 모두 우리 차지가 된다.” 그리고는 그 시신(屍身)을 밖에 버렸다. 너무나 무서운 사태가 벌어졌다. 어느…
빨간 방울토마토는 꼭지가 꽃이다 꼭지가 별이다 바구니를 들고 별들에게서 동그란 위성 똑똑 딴다 별은 원래 방향이 없다 동그란 것들은 방향이 없어 굴러가는 쪽을 방향으로 제멋대로 굴러가면 된다 어디까지 가 볼까 동쪽으로 멀어질까 서쪽으로 다가갈까 엉뚱한 방향으로 부딪치다 튕겨져 나간다 빨간 위성을 가르면 별의 씨앗이란 너무 부드럽다 빨간 방울토마토를 먹는 동안에는 내 입속에 아무런 방향도 없다 이때 말들을 저장해 놓으면 좋겠다 방울토마토가 멈췄다 한순간 아슬한 난간 위 떨어질까 말까 한 마음이 한 마음을 붙들고 있다 저자 약력 대전일보 신춘문예당선, 시집 [시간이 머무른 곳], [덤불설계도] 외 유심신인상, 천강문학상, 한올문학상 국전 우수상(서양화 비구상) 현재 : 삼정문학관 관장, 한국미술협회이사
죽음의 순간에 전 생애를 드러내는 사람이 있다. 지구 반대편 나라의 가수, 칠레의 빅토르 하라(1932- 1973) 이야기를 하려한다. 그에 대한 이야기는 월드뮤직을 접하기 전 먼 바람을 타고 전설처럼 흘러 내 귀를 스쳐갔다. 전두환, 노태우 정권 때 청춘을 보냈는데, 우리처럼 군부독재탄압에 신음하던 칠레에 민중가수 김민기같은 존재가 있다더라는 이야기를 들었었고 20여년 전 체 게바라 열풍이 불어 거리에 그의 얼굴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은 젊은이들이 넘치던 때, 어느 술자리에서인가 ‘칠레에도 체 게바라같은 대단한 존재가 있는데.....’는 말이 오갔던 기억이 있다. 월드뮤직에 빠지면서 다시 한 번 그 이름을 접했고 노래를 찾아 듣던 중 유독 가슴에 꽂히는 곡을 만났다. ‘Manifesto’(선언). 감미로운 기타 전주 후에 나오는 미성의 달콤한 목소리....라고 하기에는 저변을 흐르는 슬픔. 회환이 가슴을 파고 들었다. 내가 노래하는 것은 목소리가 좋아서, 노래하기 좋아서가 아니지/내 기타도 이성과 감정이 있기 때문이야/내 기차는 대지의 심장과 비둘기의 날개를 갖고 있어/마치 성수와 같이 기쁨과 슬픔을 축복하지(중략)내 기타는 돈 많은 자들의 기타가 아니야/내
◇인도에서 일고 있는 한국 열풍 2018년 7월 문재인 대통령은 인도를 방문하기 전 현지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양국 교류의 역사는 2000년에 이른다”며 “한반도 고대 왕국인 가야국의 김수로왕과 결혼해 허황후가 된 아유타국 공주에서 시작된 인연은 60여년 전 한국전에 참전한 인도 의료부대까지 이어졌다”고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문대통령을 크게 환대했고, 문대통령이 인도 거주 교포 초청 간담회를 할 때 인도 전통의 ‘카탁’ 무용단을 보내 수로왕과 허황후를 주제로 한 공연을 하도록 했다. 인도 아유타국에서 왔다는 허황후가 2천여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15억 인도인과 5천만 한국인을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인도에서는 한국인 여행자들을 사돈나라에서 왔다고 크게 환대한다는 이야기를 쉽게 접할 수 있다. 과거 역사가 후세 세대에 어떤 긍정적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말해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사정은 국내 강단 사학계에 오면 아주 달라진다. 문재인 대통령은 인도 방문 1년 전인 2017년 6월 1일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국정과제에 가야사 연구와 복원을 지시했고, 그 일환으로 2019년 12월 3일부터 국
지난해 12월 23일에는 중·러 공군기 20여대가 합동 훈련을 하면서 우리방공식별구역 카디즈(KADIZ)와 일본의 방공식별구역을 여러 차례 침범하여 우리 공군이 긴급 출동해야 했다. 또한 일본은 이를 빌미로 독도 영공이 일본 영토라 주장을 하고 있다. 일본 방위성(防衛省)은 2021년도 방위예산으로 5조 4,898억 엔을 편성하였다. 이번 일본의 방위예산은 역대 최대 규모인데, 다차원 종합방위력 구축이라는 목표하에 예산이 포함되어 동북아 안보의 위협이 함께한다. 미국의 제46대 대통령 당선인 조 바이든 신행정부는 안보팀 주요 인선을 발표하면서 “미국의 귀환(America is back)을 선언하고, 동맹을 거부하지 않고 적들을 대면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바이든 행정부의 대외정책 기조는 민주주의적 가치를 공유하는 동맹을 강화하여 중국을 견제하고, 국제제도에 복귀하여 다시금 중국이 아닌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질서 형성을 위해 글로벌 리더십을 발휘할 것을 천명하고 있다. 이러한 대외정책 기조를 볼 때 바이든 행정부는 민주당의 자유주의적 국제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전통적 미국의 역할로 회귀할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주요 대외정책은 첫
왜 이렇지? 자칭 잘난 사람들 집단인데 국민들은 못 믿겠단다. 검찰과 언론이 그렇다. 수없는 원인이 어우러진 결과겠지만, 자신들의 눈으로만 세상을 재단하려는 그릇된 선민의식에 대한 반감이 클 것이다. 지난해 코로나19와 검찰 이슈는 한국사회를 지배했다. 상반기엔 정부의 코로나 방역은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았지만 한국언론이 애써 외면했다. 외신들의 찬사는 총선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국내언론의 보도 프레임이 의도대로 작동되지 않았다. 유신 때나 5공화국 시절 1단 기사의 가치가 1면 톱기사나 9시뉴스 첫 보도보다 더 의미있었던 때가 있었다. 외국 언론의 한국보도가 더 영향력을 발휘했다. 기자들을 앞서는 국민들의 뉴스 수용 수준을 보여준 반증이다. 하반기에는 검찰 이슈가 세상을 뒤덮었다. 왜 검찰의 권력집중 문제가 개혁 이슈로 부각됐는지는 찾기 어려웠다. 언론보도는 추미애와 윤석열의 치킨게임, 넓게는 청와대와 윤석열의 파워게임으로 환치시켰다. 공수처 설치의 발상은 왜 나왔는지,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이양은 어떤 연유로 제기 됐는지 그 배경은 다룬 기사는 거의 없었다. 두 사안 모두 과도한 정치적 시각으로 기사를 다뤘다. 언론이 위기라고한다. 맞다. 다만 전통 언
서정시 사람의 마음을 언어로 표현했지만 21세기 20년 마음을 기계가 설계한다 설치한다 마음을 약물이 조율한다 조정한다 산만한 아이를 침착하게 죽고 싶도록 괴로운 사람을 푹 자게 술을 주지 않고도 흥분할 수 있게 기계가 그림을 그리고 작곡을 하고 공상과학소설을 쓰고 시간여행을 하고 마침내 시상을 떠올려 시를 쓸 수 있다고 하니 내 마음 숨을 곳 찾아서 어디로 가나 언제부터인가 시는 마음의 프로젝트 이제부터는 언어의 조합과 배열 내가 즐겨 쓰는 시어와 시의 리듬을 아는 인공지능 내 시의 독자도 이제는 기계? 약력 중앙일보(1984)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 [뼈아픈 별을 찾아서] [생애를 낭송하다] [예수·폭력] 등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