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밍 /김명서 세뇌와 복종은 닮은 꼴인가 잡종 케리 칭얼대는 목줄을 달래다가 지친 듯 나른한 햇살을 베고 졸고 있다 낯선 발자국소리에도 반사적으로 앞발을 들고 꼬리를 살랑거린다 개밥그릇은 오만상을 찌푸리며 구토를 한다 토사물에 다량의 허기가 섞여있다 구토는 외롭다는 신호일 것이다 - 시집 ‘야만의 사육제’ 세뇌와 복종으로 통칭되는 저 개들의 일상을 천착해봅니다. 가축이란 미명하에 일정한 거리로 한정되는 저들의 행동반경은 얼마나 답답한 속박인가요. 이 시는 그 답답한 일상을 주변 사물에 투영하여 일체화하고 있습니다. 칭얼대는 것은 목줄이 아니지요. 나른한 것도 햇살이 아니며 우그러진 개밥그릇은 꼭 개밥그릇이겠습니까. 엎질러진 음식물은 개의 토사물로 치환됩니다. 이 모든 것이 그루밍이라는 제목으로 환유되어 개를 치장하는 장식물로 읽힙니다. 참으로 슬픈 장치들이지요. 혹은 길들여진 채 살아야하는 개의 숙명을 말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묶여있는 개를 보면서 하구한 날 무슨 생각을 하며, 무엇을 하며 날을 죽일까 문득문득 궁금해지던, 그런 날 언저리에서 만난 시입니다. 마지막 한 행이 명치를 때립니다, ‘구토는 외롭다는 신호일 것이…
많은 나라를 여행하다 보면 여행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세 가지 관점으로 여행을 하고 있음을 느낄 수가 있다. 첫째는 주로 경치를 보러 다니는 여행자들이다. 그들은 각각의 나라마다 특별하게 아름다운 자연경치를 보러 다닌다. 그리고 그 경치 앞에서 많은 감탄사를 쏟아낸다. 둘째는 경치도 구경하지만 여행과정에서 각각 나라들의 정치, 경제, 사회, 역사, 문화, 교육, 스포츠, 생활풍속,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삶의 현장 등을 전반적으로 보는 것이다. 노벨상을 32%나 차지하는 이스라엘 셋째는 여행객들 중에 둘째의 사람들처럼 관광을 하지만 한 가지를 특별하게 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 한가지란 각각 나라마다 배울 것이 있고 버릴 것이 있다는 것을 느끼고 오는 것이다. 필자의 경우에는 이스라엘에서 배우고 싶은 것이 가장 많았다는 기억을 가지고 있다. 이스라엘의 국내 인구는 약 500만 명이다. 국토면적은 불과 2만770㎢ 정도에 불과하다. 경상북도 정도의 넓이를 가진 작은 나라이다. 반면에 주변을 둘러싼 아랍국은 22개 나라로 인구는 약 5억이다. 500여 만 명이 5억과 전쟁을 해도 항상 이스라엘이 이긴다. 안보 일등 국가이다. 노벨상도 이스라엘이 약 32%를 차지한다.
1868년 작 <관람석 앞의 경주마>이다. 늦은 오후의 하얀 하늘빛이 눈부시다. 그 아래에 있노라면 그 무엇도 들키지 않고 가릴 수는 없을 것만 같다. 꽉 찬 해는 기울기 마련이고 날도 저물테지만, 견고함을 견지하고 있는 작가의 시선이 워낙 예리하기에 어둠은 쉬이 승낙되지 않을 것만 같다. 화면은 작가에 의해 잘려진 어떤 시점과도 같고 그 안에서 대상들은 하얀 대낮에 벌거벗겨진 존재와도 같다. 언젠가 드가는 작품을 그리는 일이란 강간행위와도 같다 했다 했던가. 그의 작품 속에서 대상들은 육체와 감정을 온전히 지닌 존재라기보다는, 그저 완벽한 구성에 동원된, 거세된 재료들에 불과하다. 그러한 연유로 드가는 차갑고 냉혹한 예술가라는 평을 듣곤 한다. 하지만 나 자신만큼은 드가가 냉혹한 인물이었다는 사실은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현실을 예리하게 포착하는 그 정확한 시선 속에서 일종의 위로 같은 감정을 느끼곤 했기에, 오랫동안 드가를 흠모해왔던 연유다. 경마장의 초원도 경마장 주변의 건물도 햇빛을 받아 노란 빛을 띠고 있다. 경마장에는 말을 탄 기수들이 몇몇 모여 있다. 경마장의 풍경은 에드가 드가가 즐겨 그리던 주제였다. 그는 말이 생명력을 담뿍 담고
NO. 07635915 /이난희 새벽안개는 흰 도화지를 닮았다 포클레인 한 대가 지붕을 덮친다 벽돌 공장이 무너진다 오줌을 누던 인부가 쌍욕을 하며 뛰쳐나온다 봤지 붓질은 이렇게 하는 거야 속도감 있게 강렬하게 움푹 파인 공장 웅덩이에 순식간에 완성된 그림 한 점이 새로 걸린다 아무도 공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이난희 시집 ‘얘얘라는 인형’ 폐업률이 높아가고 있다. 그에 따른 실업률 또한 치솟아 가고 있다. 이러한 일이 발생하게 된 원인은 무엇인가, 이러한 지속하는 현상을 우리는 어떻게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것인가. 폐업하는 것은 쉽다. 포클레인 한 대가 지붕을 덮치면 그만이다. 속도감 있게 붓질을 하듯 강렬하게 공장을 무너뜨리면 되는 것이다. 그 앞에서 인부들은 힘이 없다. 심지어 아무것도 모른 채 오줌을 누다 뛰쳐나올 수밖에 없는, 그리하여 저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쌍욕 한마디 내던지는 것으로 분노를 표출한다. 이렇듯 움푹 파인 공장 웅덩이에 순식간에 완성된 그림 하나가 새로 걸리듯 요즈음 우리의 생계는 위협받고 있다. 목 좋은 상가조차 관리비도 못 내고 있다는 조간신문기사는 우리를 불안하게 한다. 아무 걱정 없는, 모두가 잘사는…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가 58.0%로 취임 후 최저치를 기록하며 50%대로 떨어진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그동안 소폭의 등락은 있었지만, 추세로 볼 때 70% 중반대를 보이던 지지율이 6·13 지방선거 이후 하락세를 보이는 흐름이다. 청와대는 여론조사에서 드러난 민심의 추이를 예민하게 관찰하며 제반 정책들이올바르게 추진되고 있는지 점검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지지율 하락에는 여러 원인이 있을 수 있지만, 무엇보다도 민생과 경제에 대한 국민의 지속적인 불안 심리 속에서 일자리나 성장 등 경제정책들이 구체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는 데 따른 불만 탓이 크다.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 논란에다 김경수 경남도지사의 드루킹 특검 출석 관련 보도 확산, 국민 기대감에 미치지 못한 정부의 한시적 전기요금 누진제 완화 등 세부 정책들의 섬세한 관리 실패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계층적으로는 경제·민생 문제는 중산층이나 서민층의 삶과 직결된 사안이기 때문에 문재인 정부에 기대를 걸었던 이들 계층이 당장 피부에 와 닿는 혜택이 보이지 않자 인내심을 잃고 지지대열에서 이탈하는 경향이 있다. 대표적으로 최저임금 인상으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 중소상공인이나 자영
올해 폭염은 기록적이다. 전국의 기상 관측소 가운데 절반 이상이 역대 최고기온을 경신했다. 섭씨 41℃를 넘은 지역이 여러 곳이다. 최악의 폭염이 한반도를 지배, 전국이 불덩이가 되어 펄펄 끓고 있다. 서민들은 전기요금 누진제를 우려, 에어컨도 제대로 켜지 못한 채 섭씨 40℃ 더위를 온몸으로 겪어내고 있다. 그런데 앞으로가 더 걱정스럽다. 세계기상기구가 ‘폭염이 2020년이면 현재의 두 배, 2040년에 네 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기상 전문가들은 폭염 시기는 당겨지고 폭염 일수는 늘어나며 폭염의 강도는 점차 세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번 여름 더위를 겪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폭염의 강도가 이보다 더하고 기간도 길어진다니 끔찍하다. 특히 우리나라 국민들은 중국에서 넘어오는 미세먼지와 황사, 국내 발생 미세먼지로 고통을 격고 있는데 앞으로 폭염까지 더 극심해진다니 걱정이다. 이는 재앙이다. 그런데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자연재난이 아니다. 명백한 인재(人災)다. 지금의 기온상승은 인간들이 배출한 온실가스로 인한 지구온난화가 원인이다. 인류가 위기감을 느끼지 못하고 현재처럼 온실가스 배출을 계속한다면 한반도는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없
한 여름에 들어서면서 연일 폭염이 기승을 부린다. 이렇게 무더운 날에도 농사짓는 사람들은 아침저녁으로 틈틈이 농작물을 가꾸어야 한다. 어머니는 수인선 전철이 들어서면서 오래도록 살았던 고향집이 없어져 아파트에 사시다가 전북 고창에 땅을 마련하시고 집을 지으셨다. 아무 연고도 없이 단지 공기 좋고 땅이 좋아 내려가신 것이다. 어머니는 내 땅에서 농사짓는 것을 낙으로 삼으셨기에 그 꿈을 이루신 것이다. 그리고는 그해에 농사 지신 것을 골고루 택배로 부쳐주셨다. 옥수수부터 풋고추, 블루베리, 고구마, 콩, 김장거리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정성의 증표를 보내주셨다. 전원생활을 누리기엔 너무 땅 덩어리가 커서 도리어 힘에 부치셨다. 또한 어머니를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 것도 문제였다. 기껏해야 우리가 고창에 가는 날이 일 년에 몇 번 안 되었다. 수원에서 고창까지 자동차로 아무리 빨리 달려도 3시간 반 이상이 걸렸다. 어느 날 전화를 드리니 “날마다 예쁜 새 울음소리가 얼마나 듣기 좋은지 몰라, 니가 들으면 참 좋을 텐데. 여긴 정말 시 쓸 거 많다. 어서 오너라!” 하셨다. 이름 모를 새들의 맑은 울음소리를 들으시면서 딸에게도 들려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면 시도…
침묵의 장기로도 불리는 ‘간’. 우리 몸에서 재생이 가장 잘되는 장기는 ‘간’이다. 우리 몸에서 해독작용을 하는 역할이다 보니 재생 능력이 뛰어날 수밖에 없는 건 당연지사일 것이다. 이런 간이 굳어져서 문제가 생기는 것을 ‘간경화’, 또는 ‘간경변’이라 말한다. 일반인들은 주로 ‘간경화’라 말하고, 의료진이 보통 ‘간경변’이란 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즉 간이 딱딱하게 굳어져 간 기능이 저하되는 간질환을 지칭하는 같은 말이다. 간경화는 간(Liver)과 딱딱해진다는 의미의 경화(Sclerosis)가 합쳐져 생긴 용어이고, 간경변은 1816년 세계 최초로 청진기를 발명한 프랑스의사 르네레낙(Rene Laennec)이 시체해부에서 간섬유화가 진행되면 간표면이 오렌지껍질처럼 딱딱하고 울퉁불퉁하게 변화는 것을 보고 오렌지(Kirrhos)라는 그리스 말과 비슷하게 간경변(Cirrhosis)이라고 처음 명명한 것이 그 시초다. 간경화라 부르든 간경변이라 부르든 간에 간이 굳게 되면 큰 일이 발생한 것이다. 정상 기능을 할 수 있는 간세포의 수…
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는 은행털이범을 주인공으로 한 할리우드의 고전 중 고전이다. 인상적인 장면이 많아 지금도 기억하는 올드팬이 적지 않다. 밑바닥 인생이지만 여유와 유머, 낭만 거기에 미래의 희망까지 잘 섞은 스토리 탓이다. 황금콤비 중 늙은 은행털이 역을 했던 폴 뉴먼은 떠났고, 팔순의 로버트 레드포드는 7일 은퇴를 선언했지만 주제곡 ‘머리 위로 빗방울은 하염없이 떨어지고(Rain Drops Keep Falling On My Head )’는 아직도 전파를 타는 인기곡이다. 하지만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은행 강도의 잔인함은 이와 전혀 다르다. 미국만 하더라도 서부 개척시대부터 맹위를 떨친 강도 대부분이 돈을 위해 무고한 생명을 수없이 죽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경제가 침체될수록 더욱 설쳤다. 대공황 때도 그랬다. 미 역사상 첫 은행털이 사건은 1798년 8월 말 필라델피아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1831년 스미스 에드워드가 뉴욕 월가의 시티은행에서 24만5천달러를 훔쳤다는 게 미국 최초의 은행 강도다. 그 후 미국은 은행털이의 전성시대(?)를 맞는다. 은행침입 강탈, 해킹등 수법도 다양해지며 진화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2005년 8월 초 발생한 브라질…
연 꽃 /배영옥 천년 동안 중천을 떠돌던 엄마가 속이 텅 빈 골다공증 엄마가 백랍(白蠟) 같은 엄마가 아무리 손을 뻗어도 잡히지 않던 엄마가 연꽃 속에서 소복단장을 벗고 있다 ‘엄마~’ 하고 낮은 소리로 불러보기만 해도 눈물부터 맺히게 하는 ‘엄마’는 대체 어떤 존재일까. 언제부터 엄마는 나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을까. 천년이 걸렸을까 아니면 만년이 걸렸을까. 어떻게 나는 엄마를 만나 속이 텅 비고 백랍처럼 하얗게 되도록 엄마를 빨아먹고 갉아먹었을까. 나는 왜 엄마에게 그래야만 하는 것일까. 나만의 엄마가 아니라 모든 엄마들, 우리의 엄마들을 넘어 짐승들이나 나무들의 엄마들, 돌멩이나 흙의 엄마들을 생각하면 더더욱 손에 잡히지 않는 엄마, 그러면서도 간절하게 보고 싶은 엄마, 손을 뻗어 안아보고 싶은 엄마. 엄마는 연꽃 속에서 꽃으로 다시 피어나려는 것일까. /김명철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