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본 난(9월 7일 자)을 통해 '서사 부재 시대의 비극'을 쓴 바 있다. 그런데 재독 철학자 한병철 선생의 『서사의 위기』가 8일 뒤인 15일 번역 출간되었다. 이 책이 먼저 출간되었다면 읽은 뒤 보다 풍부하게 글을 전개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임이 인다. 필자는 자신과 아무런 관련도 없는 사람들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칼을 휘두르는 흉악 범죄가 유행이다시피 하는 현상을 서사의 부재에서 찾고자 했다. 한 선생이 책의 근저로 삼고 있는 발터 벤야민에 따르면 근대는 (대)가족 공동체의 붕괴를 통한 개인의 출현을 근간으로 한다. 근대 사회는 공동체와는 정반대 방향으로 움직인 것이다. 특히 근대 후기로 접어든 한국의 경우 학력계급사회가 되어 개인의 파편화·원자화를 더욱 부채질한다. 카페가 건물마다 하나씩 들어서 있는 것은 잃어버린 공동체에 대한 노스탤지어로 작용하는 것으로 필자는 보았다. 이는 서사 부재 시대라는 강력한 반증이 아닌가 하고 반문한 것이다. 하지만 필자가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통한 서사의 부재를 말했다면 한병철 선생은 SNS를 분석의 틀로 삼아 서사의 위기를 풀어나간다. 그의 분석을 압축하면 페이스북 등 SNS는 서사가 아닌 셀링 스토리(S
5호선 연장사업은 기여도의 차이가 크지만 인천시와 김포시 사이의 초극단적인 지역 이기주의에 의한 노선갈등으로 사업 추진상황은 2022년 11월 이후 제로 상태에 놓여 있고, 사업 추진 자체가 매우 심각한 위기 상황에 놓여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지금이라도 김포시와 인천시가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서로 백번 양보하여 경제성과 기여도 등 균형잡힌 노선안에 전격적으로 합의한다면 우리 사회에 신선한 충격과 시너지 효과가 발생하여 5호선 연장은 신속히 추진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김포와 인천시민들에게 더 많은 기쁨과 현재의 고통을 감내할 수 있는 용기를 북돋아 줄 것이다. 향후 인천지하철 2호선 예타대응 용역 등 상생하여 인구 350만 명의 서부권 통합도시로서의 역할도 기대할 수 있다. 너무나 아쉽게 5호선 김포·검단 연장사업은 4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에 반영되지 못했다가 2021년 7월 국토교통부고시 제2021-936호에 의거, 조건부 추가 검토사업으로 반영되었다. 전제조건은 "노선계획 및 차량기지 등 관련시설에 대한 지체간 합의시 타당성 분석을 거쳐 추진한다"는 내용이다. 몇마디 말에 국책사업의 정의가 명확히 내려져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키 워드는 '지
한동안 소강상태를 보이던 경기도 지역의 전세 사기 시한폭탄이 또다시 작동을 시작한 낌새다. 연초에 불거진 화성 동탄 사건에 이어 최근 수원에서도 피해 고소장이 잇따라 접수되는 등 대규모 전세 사기 사건이 폭발 직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정부가 피해자 대책에만 몰두할 뿐 제도적 안전장치 등 예방책 마련을 등한시한 처참한 결과물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더 이상의 피해를 막기 위한 실효적인 예방대책에 역량을 쏟아부을 때다. 최근 경기남부경찰청에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했다’는 전세 사기 관련 고소장이 잇따라 접수되고 있다. 현재까지 53명으로부터 고소장이 접수됐고, 피해 금액도 70여억 원에 이른다. 고소인들은 대부분 임대인에게 1억 원 대의 임대차 계약을 맺었으나 임대인이 잠적해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했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세 사기 의혹 사건의 임대인이 소유한 부동산 임대업 관련 법인은 총 16곳이어서 피해 규모가 더 커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앞서 드러난 화성 동탄 오피스텔 전세 사기 사건의 피해 규모는 214억 원, 피해자는 167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구속된 피의자들은 ‘무자본 갭투자’ 방식으로 수백 채의 화성 동탄 지역 오피스
1887년 평안도 선천에서 태어나 평양의 일신고보를 졸업했다. 1904년 하와이로 노동이민 갔다가 본토로 옮겨 도산 안창호의 공립협회에 가입하였다. 이 단체에서 도산의 지도를 받으며 활동하다가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토쿄를 거쳐 귀국했다. 국권회복이 목표였다. 1907년. 스무살이었다. 100년 전, 뜻있는 약관의 청년들은 대개 이와 같았다. 1909년 1월. 이토 히로부미가 순종황제와 함께 평양에 온다는 정보를 듣고 동료들과 평양역에서 대기하다가 도산 안창호의 '전략적 만류'를 받아들여 연해주로 떠났다. 그 해 10월 26일. 하얼빈에서 안중근이 그 '동양 제1적'을 쏘아죽였다는 소식을 듣고 귀국, 목표를 이완용으로 바꿨다. 백범일지 '민족에 내놓은 몸' 편에 보면, 이재명과의 인연이 상세히 나온다. 의사는 미국서 돌아와 오인성이라는 여교사와 결혼했다. 부인은 남편의 계획을 듣고 강하게 반대했다. 이견으로 다투다가 오발이 발생했는데, 집밖에서는 그 총성을 심각하게 여긴 것 같다. 동네 유지가 마침 그 마을에 와서 머물던 백범에게 청년을 데리고 왔다. 백범이 타일러서 총을 챙겼고, 함께 있던 노백린 장군이 "서울에서 돌려주겠다"고 약속했다. 두 거인은 얼마 후…
경기도에 화장장 건립을 시도했다 중단한 경우는 참 많다. 연천·양주·포천·가평·양평·하남·부천·김포·안산·여주·이천·화성 등 하나같이 지역사회 반대에 가로막혀 포기하고 말았다. 그 결과 ‘반대하면 안 한다’라는 그릇된 학습효과만 남겼다. 고난의 길이 분명한데, 양주시에서 다시 화장장 건립에 나섰다. 기왕에 시작했다면 이번엔 정말 성공해야 한다. 과연 양주시가 받아볼 성적표는 화장장 건립 성공 또는 실패 사례 중 어떤 것이 될까? 화장장에 관해 나름의 견문과 경험을 쌓은 필자는 실패 사례와 쓴소리를 많이 챙겨 들어보라고 충고하고 싶다. 첫째, 기본이 되는 화장장과 화장로를 제대로 더 많이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화장장 건립에 나섰던 지역의 관계관이 화장장 한번 가보지 않은 걸 자랑하는 모습도 본 적이 있었다. 또 화장장 건립 자문위원으로 이름을 올린 인사 중에는 화장장 문외한도 있었다. 전장에 나가는 병사가 전혀 훈련이 안 된 모양새였다. 어떻든 참여한 모든 이들의 ‘수준 향상’을 위한 공부는 필수적이다. 그 대상 인원은 많을수록, 교육 내용은 풍부할수록 좋을 것이다. 요즘은 반대하는 주민들이 방향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공부를 많이 하기 때문에도 더욱…
한 고등학생은 이번 추석 명절에 받게 될 용돈을 기대하는 사연에 대해 털어 놨다. 이유는 ‘사설토토’라 불리는 불법 스포츠 도박에 쓸 돈을 구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시작되면서 아시안게임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e스포츠 경기에 불법 도박업체가 판돈을 걸게 하면서 불법 스포츠 도박시장과 청소년 도박문제가 급증하고 있다.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의 ‘2022년 청소년 도박문제 실태조사’에 따르면 도박을 처음 접한 평균 연령은 11.3세로 집계됐고, 초등학생 10명중 4명은 도박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 어리고, 더 많은 청소년들이 불법도박에 노출되고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의 사행사업은 최근 10년간 지속적으로 성장해왔으며, 인터넷과 결합돼 접근성이 높아져 중독증상을 보이는 이들이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쉽게 큰돈을 벌고자 하는 욕구, 잃은 돈을 만회하고 싶은 욕구, 짜릿한 쾌감을 맛보고 싶은 욕구, 우울한 감정이나 스트레스를 줄이고 싶은 욕구 등이 중독에 빠져들게 하는 요인이다. 처음에는 재미로 또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시작했을 것이다. 돈을 따거나 잃은 과정에서 한번만 더, 한번만 더 라는 생각을 가지며 중독에 빠지게 되고, 특히…
찰거머리처럼 질긴 여름이 가을에게 자리를 물려주면서 들녘에 벼가 고개를 숙이고, 농민들의 추수에 보답하거나 기다리고 있다. 남한 농민들에게는 연례행사로 벼수매 문제가 관심사항으로 떠오름과 동시에 북한의 작황에 대해서도 궁금해 한다. 2017년부터 감소세가 이어지고 있지만 2020년에 440만 톤을 기록하고, ’23년 상반기 북한의 대중 쌀 수입(10만 톤 이상)이 2019년 동기간 대비 약 5배 증대한 것을 들어 식량난을 부정하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금년 7월까지 아사자 240건 발생을 근거로 최악의 식량위기 발생을 추정(국정원)하는 등 엇갈린 전망이 나오고 있다. 여기서 생각해 볼 점은 북한 식량난을 분석하는 접근방법이다. 북한의 ‘기근’원인을 주로 공급(식량 가용량 감소)의 문제 또는 접근성(식량획득력 감소) 문제로 인식함으로서 북한주민이 왜 식량 접근성이 약화되었는지, 영양 부족현상에 대한 ‘과정적-미시적’ 설명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그것이다. 이 때문에 권위주의 체제가 제제 정당화와 사회 안정화를 위해 식량 공급 전 과정을 통제하는 전략을 의미하는 ‘양정(food politics)’의 관점에서 분석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권위주의 체제들은…
알고리즘이 추천해 주는 유튜브 영상 중에 ‘카푸어’ 관련 내용이 올라오는 채널이 있다. 영상에는 자신의 경제적 상황을 뛰어넘은 차를 산 사람들이 나와서 본인의 차를 자랑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한 달 수입의 대부분을 차에 올인한 사람들이 주로 나오는데, 드물게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서 슈퍼카를 구입한 사람들이 나오기도 한다. 최근에 본 영상에는 20대 초반 대학생 A가 독일 슈퍼카를 타고 나왔다. 차량 가격이 카푸어 마인드로도 감당이 되지 않을 만큼 큰 금액이었다. 유튜버가 A에게 부모님 찬스를 쓴 게 아니냐고 물었지만, 본인이 차 리스 비용을 지불한다고 했다. A가 다니고 있는 대학은 서울권 4년제가 아닌 잘 들어보지 못한 학교였다. A는 어떻게 돈을 벌고 있을까. A는 고등학교 때부터 컴퓨터 프로그램과 모바일 앱을 만들어서 파는 중이라고 했다. 프리랜서 개발자로서 몇 억대의 실 수령액을 받고 있었다. 일반 직장인은 평생 연봉으로 받기 어려운 금액이고, 사회에서 선망하는 전문직들이 오랜 수련 끝에 버는 돈을 어린 나이부터 벌고 있었다. 그는 이미 한 분야의 전문가로서의 삶을 살고 있었다. 문득 A가 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주위로부터 선망 받는 학생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