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이했지만 세계는 전례 없는 위기에 맞닥뜨리고 있다. 기후변화로 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으며 각종 천재지변이 심상치 않게 발생하고 있다. 이상기후로 세계 곳곳에서 홍수와 가뭄이 빈번하게 발생하여 많은 사람들은 가족과 집을 잃고 때아닌 북극 한파에 목숨까지 잃는 비극이 발생하고 있다. 빈번히 발생하는 지진 또한 많은 사상자를 내고 있다. 이러한 재앙은 국가를 가리지 않고 발생하지만 특히 빈곤 계층과 취약 계층에게는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환경재앙이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데도 세계의 정치지도자들은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 과거 냉전의 주도국이던 러시아와 미국은 또다시 패권 경쟁을 위해 지구촌 곳곳에서 전쟁과 갈등을 주도하거나 부추기는 데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을 뿐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직접 전쟁을 벌이고 있고, 미국은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의 중재 역할은커녕 오히려 중동전쟁으로 비화할 수도 있는 국제정세를 억제하지 못하는 무능력함을 보인다. 여기에다가 일본이 핵 오염수 무단 방류로 생태계에 치명적인 해악을 끼치고 있음에도 서방 선진국들은 아무런 비난을 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세계 강대국들은 각종 함정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제정치에서
새해가 밝았다. 묵은해의 좋지 않던 기억과 아쉬움이 역사 저편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직면한 현안들은 여전하다. 안으로는 저성장, 양극화, 세대 단절, 정치 실종, 인구급감, 노인 빈곤, 지방소멸 등이며, 밖으로는 글로벌 공급망 위기, 미·중 관계, 북한 핵·미사일, 우크라이나전쟁, 역내 안정과 평화유지 등이다, 그렇다고 실망하기에는 이르다. 해법을 찾아야 한다. 한반도처럼 역동적인 곳이 또 있을까. 대륙과 해양이 마주치는 지정학적 환경 때문이기도 하다. 북방과 남방문화가 뒤섞이면서 형성된 혼종(hybrid) 기질도 한몫한다. 한국인의 DNA 속에는 형제들과 화목하게 지내고 이웃과 더불어 살기를 좋아하는 동료(同僚) 의식과 거친 환경과 험난한 숙명에 좌절하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아 더 좋은 세상을 개척한 홍익(弘益) 정신이 오랜 세월 축적되고 내면화되어 있다. 이런 기질적 개방성이 적극 발휘된다면 우리 정치·경제구조가 혁신되고 우리의 사회·문화 의식이 세계 일류가 될 것이다. 먼저 우리 공동체 구성원에 대한 관심과 시선이 따뜻해져야 한다. 어떤 이유와 목적으로 왔든 낯설고 물선 땅에서 부대끼다 합법 주민, 모범 시민, 자랑스러운 국민으로 뿌리내리고…
2024년 갑진년 새해가 밝으면서 ‘그어소’라는 제목을 달고 칼럼을 쓰게 되었다. ‘소통’을 주제로 이야기를 써보려 하는데, 제목이 왜 ‘그어소’인지 설명하자면 학생들이 아이디어를 제시해 줘서 선정하게 되었다. 세계적인 애니메이션 감독인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최신작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그대들은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로 지은 것이다. 자신의 인생을 회고하는 내용의 영화를 본 그대들은 과연 어떻게 살 것인지 묻는 거장의 물음을 차용하기는 좀 거창하지만, Z세대의 신선한 아이디어에 X세대로서 그간의 갇혀있던 껍질을 조금 탈피해보면서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한다. 여러분은 일하고 있는 기업, 학교, 기관 같은 조직 내에서의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 매 순간 느끼고 있을 것이다.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라는 피터드러커는 “경영상의 문제는 60%의 커뮤니케이션 오류에서 발생한다”고 하였다. 논점이 다른 대화, 실수가 적힌 서류 한 장에 조직의 운명이 바뀌기도 한다. 재미있는 이야기이지만, 절대 무너질 것 같지 않던 베를린 장벽도 이탈리아 기자의 오보에 무너졌으니 말이다. 그런 만큼 모든 조직은 국내외
TV의 미디어 점유율이 추락했다. 2017년 대비 2023년 TV총시청율이 68%로 1/3이 줄었고 특히 지상파는 51%로 반토막났다. 가족이 같이 TV보는 집 이제 드물다. 미디어의 개인화 추세다. 모바일에 넷플릭스 등 OTT들이 같이 얹히다보니 익히 예견된 일이다. 그나마 CJE&M 등은 1/3 정도만 줄었다. 젊은 세대일수록 미디어 접촉행태가 탈TV, 탈지상파다. TV는 베이비부머 세대 이상의 노년층에 의해 지탱되고있다. 아마 내년도에 비교해보면 이 추세는 한걸음 더 진행돼 있을거다. 뉴스와 교양장르 프로그램은 베이비부머 시청량이 X세대 2배,M세대의 4배, Z세대의 11배 정도이며 그나마 드라마가 Z세대 대비 베이비부머 비율이 7배 정도다. 세대별 장르별 편식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MZ 세대가 좋아하는 드라마는 OTT에 많고 OTT는 모바일로 많이 보다보니 드라마에서도 TV시청률이 덜 나오는게 당연하다. Z세대는 TV도 덜보고 뉴스, 교양류의 콘텐츠는 본다하더라도 유튜브에서 본인 관심사항만 찾아서 본다. 여행 프로그램으로 KBS의 “걸어서세계속으로”는 거의 20년 장수 프로그램이고 4K 화질에 구성도 좋은 프로그램으로 유튜브로도 볼수있다. 구
이맘때면 중국 서북쪽 사막에서 재미난 경기가 벌어진다. 12팀의 말 탄 남자들이 사막의 하얀 모래먼지를 뒤집어쓰고 무언가를 빼앗기 위해 격렬히 싸운다. 마지막 승리의 손이 쟁취한 것을 농구골대처럼 생긴 골망에 던지면 경기 끝. 쟁취물의 정체를 알게 되면 웃음이 슬몃 올라온다. 양가죽 한 장. 위구르족이 사막에서 늑대 쫓던 일에서 만들어진 경기란다. AI가 인간을 대체하느니, 하는 금속성 뉴스가 천지인 요즘, 멀지 않은 곳에 ‘사막에서 말 달리며 양가죽 뺏기 경기’를 하는 땅이 아직 남아있다니, 거짓말 같다. 위구르족만의 전래 음악 ‘무카무’도 사막 냄새, 사람 냄새 가득하다. 이 땅이 중국이 아니었던, 먼 옛날 16세기 초, 야르칸트 왕국의 왕 ‘압둘 루시타’는 백성들의 삶을 알아보기 위해 잠행에 나섰다가, 거리에서 아름다운 소녀 아마니사한을 보고 한 눈에 반한다. 왕궁에 데려와 왕비를 삼고, 그녀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든 하게 해준다. 음악을 좋아했던 아마니사한은 거리를 떠돌던 서민들의 노래와 춤, ‘무카무’를 왕궁에 들여 ‘12 무카무’로 집대성한다. (세종대왕이 종묘제례악을 정비한 것을 떠올리면 되겠다) 고되고 외로운 사막살이의 한이 절절이 밴 목소리와
사람이 살면서 발걸음 놓기를 꺼려하는 몇 군데가 있다. 예를 들면 경찰서, 검찰청, 법원 등인데 병원도 그런 장소 중 하나일 것이다. 무병장수를 한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건강은 사람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리라. 필자도 얼마 전 수술을 받게 되었다. 건강검진에서 발견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수술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내키지 않지만 반드시 가야 하는 병원은 언제나 사람들로 붐빈다. 검사를 위한 대기 시간과 돈을 내기 위한 대기 시간도 만만치 않다. 특히나 종합병원에서 의사를 만나 소견을 듣기까지 기다리는 시간은 지루하기 짝이 없다. 2-3분을 만나기 위해 두 시간을 기다리는 일도 허다하다. 이토록 지난한 사전 절차를 거쳐야만 비로소 입원을 허락받고 필요한 치료를 받는다. 겪어보니, 수술과 회복과정이 힘들고 힘들다. 그런데 수술 결과와 회복 과정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나눌 시간도 많지 않다. 회진을 도는 담당 의사는 “잘 되었습니다. 아프면 진통제 달라고 하시구요” 이러고는 가버린다. 물론 의사마다 성향이 다르겠지만 조금 더 친절하게 설명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입원실에 누워 있으면서 내가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생각한다는 일이 사치처럼 느껴졌다.
벌써 20년 전이다. 내과수련의로 근무하던 때 지도교수님의 진료실은 화병환자가 많이 내원했다. 진료실과 입원실이 붐볐다. 그런데 화병을 치료해야지 하고 오지는 않았다. 대부분 가슴이 두근거리고 답답하고 아프거나 혹은 잠을 못자서였다. 손발이 저리고 얼굴로 열이 오르고 머리가 아프고 어지럽기도 했다. 이런 증상들과 함께 많은 경우 고혈압. 심장질환, 당뇨를 진단받아 양약 복용 중에 중풍증상을 나타내어 입원하는 경우도 많았다. 교수님은 그들에게서 화병을 진단해 내셨다. 화병환자들은 거의 대부분 기혼 50-70대 여성이었다. 화병의 제일 큰 원인인 남편, 시댁과의 관계에서의 상처. 경제적 곤란을 콕 찝어 질문하면 대부분 맞았다. 다음에 올 때 반드시 남편을 같이 오라고 하셨다. 부부상담을 하며 호통과 넉살을 섞은 상담에 환자들이 한바탕 울음을 쏟고 나서 미소를 띈 얼굴이 환해져서 진찰실을 나가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렇게 교수님의 진료실에서 많은 환자들을 경험하였다. 자연스레 화병에 대한 연구를 하게 되었고 논문을 여러편 썼다. 시간이 흘러 필자는 중견의 한의사가 되었다. 여전히 꼭 화병을 치료하려고 오지는 않는 20년전보다 더 다채로운 양상의 화병환자를 만나고 진
우리 주변을 조그만 돌아보면 우리는 혼돈과 무질서의 어딘가에서 허우적대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바로 알 수 있다. 우리는 거대한 질서 속에서 웅장한 생명의 협주곡을 함께 연주하는 중이다. 우리의 몸을 이루는 분자는 이전에 누구의 몸 혹은 자연의 일부였고, 또 앞으로도 누군가의 몸 혹은 자연의 일부가 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의 몸을 결코 소멸하지 않고, 지구 상의 생명이 계속되는 한 끊임없이 다시 어딘가에서 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내 몸의 분자 단위만이 아니라, 내 몸을 꾸려가는 기본 원리도 살아 있는 세상의 모든 나머지와 함께 같은 원리로 돌아가며 함께 호흡한다. 우리는 진정 우주에 속한 존재이며, 이 귀속감을 깨닫는 일은 우리 삶에 진정한 의미를 일깨우고 그 깊이를 더해준다. (프리초프 카프라) 예수가 당면했던 사회 분위기와 부처가 출현하신 시대, 혹은 당면했던 사회 분위기는 유사한 점이 있습니다. 형식에 치우친 종교적 관행이라든가, 지식층인 성직자 계급이 일반 백성들의 종교적 욕구를 악용하고 왜곡시키는 작태는 엇비슷했지요. 부처님과 마찬가지로 예수님도 그 모든 걸 ‘파괴하려는 것이 아니라 완성시키러’ 오셨고, 광명과 해방의 길이 모든 인간에게…
지난해 국민의힘 김기현 전 대표에 의해 촉발됐던 김포–서울편입 이슈가 잦아든 모양새다. 서울 인근 도시에 사는 지인들에게 물어봤다. “사는 곳이 서울로 편입되면 좋은지?” 필자의 우문이었다. 인간은 사익의 동물임을 간과해서다. 사유재산에 관심이 높은 건 당연한데 말이다. 질문 받은 대개는 서울 편입을 적극·강력 찬성했다. 서울로 편입되면 보유 부동산의 가격 상승 등 기타 편익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균형발전? 개인 입장에서 보면, 완전 남 얘기다. 문제는 집권세력에 있다. 강서구청장 보궐 선거에서 여당이 패배하자, 수도권 민심 전환을 위해 김포-서울편입 공약(公約)을 띄웠던 것. 유권자의 욕망을 자극해 선거에서 이기기만 하면 된다는 정치집단의 삐뚤어진 이기심 자체였다. 욕구는 인간의 본질이라는 점에서, 화폐에 대한 욕구가 발동되면 선거에서 이길 수 있음을 꿰뚫은 전술이다. 하지만 계산이 잘못됐다. 김포 민심을 잡으려다 김포가 아닌 수도권 다른 도시 민심을 놓칠 수 있다. 수도권을 잡으려다 부울경(부산·울산·경남) 등을 잃을 수 있다. 그렇다고 서울 민심을 잡는 것도 아니다. 김포-서울편입이 서울시민 개인의 이익에 직접적으로 플러스 되는 건 없어 보인
실종(失踪)이라고 하지요.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데. 틀림없이 있기는 할 것 같은데. 안타깝게도 생사조차 확인되지 않는 사람 말입니다. 찬찬이 들여다보면 실종된 사람 참 많습니다. 절대로 없어져선 안 될 사람이 사라졌을 때는 눈앞이 깜깜합니다. 이를테면 훌륭한 인품을 지녔다거나, 생각만 해도 존경심이 솟구치는 그런 사람 말입니다. 물론 잘 알고 있습니다. 동네든 직장이든 그 어디든, 그런 사람 하나쯤 있다는 것을요. 어쩌면 우리사회가 실종되지 않는 까닭도 그런 사람이 있어줘서일 겁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동네에도 있고 직장에도 있는 그런 사람이 왜 거기에는 없는 걸까요. 그 무리와 그 집단에서는 찾아보기 힘들까요. 혹여, 노안(老眼)으로 돋보기안경을 쓰게 된 뒤부터 내 눈에 보이지 않는 걸까요. 주소도 이름도 필요 없었습니다. 편지 겉봉에 ‘런던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에게.’라고만 쓰면 배달이 되었습니다. 바로 윈스턴 처칠입니다. 그는 BBC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가장 위대한 영국인’으로 뽑히기도 하였습니다. 부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내가 느끼는 부러움은 처칠이 아니라 그를 대하는 사람들에게로 향합니다. 세상을 떠난 지 60여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존경할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