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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은 7월, 장마가 끝난 후 이상고온 현상으로 무더위가 계속됐다. 광주 38.5℃, 전주 38.2℃를 기록하면서 55년 만에, 서울도 최고 38.4℃를 기록하면서 51년 만에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당시 기상청 관측결과 전국의 58.4%에서 일 최고기온이 경신되었을 정도로 폭염이 전국을 휩쓸었다. 이로인해 무려 3천384명이 사망했다. 2013년 여름도 폭염으로 비슷한 상황이 연출됐다. 산업피해도 많이 발생했다. 경기, 인천, 충남, 전북, 경북 등 705 농가에 가축 1천985천수(닭 1천664천수, 오리 242천수, 돼지 2천133두 등)가 폐사되었다. 낙동강 하천 구간에 녹조가 발생하면서 피해를 키웠고 아열대 지역에서 주로 서식하는 침입 외래종 ‘등검은말벌’ 등이 확산, 생태계도 교란 시켰다. 그런가 하면 1995년 7월 12일부터 16일까지 미국 시카고는 가마솥 무더위를 보였다. 최고 온도가 40.0℃에 달하는 폭염이었다. 7월 11일부터 27일 사이에 465명이 고온 때문에 사망했다. 그 중 반 이상이 75세 이상의 노약자였다. 1994년 여름, 일본은 75일간 연속 30℃를 넘는 고온을 기록했다. 최고 기온은 39.1℃에 달했다. 당시 고온으
저녁 아홉 시. 나는 늘 이맘때면 내가 일하는 출판사에서 집으로 돌아온다. 지친 몸으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면 기다리는 사람 하나 없다. 빈집이다. 아이들과 남편은 내가 들어온 뒤 한 시간 정도 더 기다려야 귀가를 한다. 나는 불 꺼진 빈집에 홀로 들어서기가 때로는 무섭다. 지친 몸으로 겨우 키보드를 누르고 현관문을 열고 들어간다. 오늘따라 나를 반기며 쫓아 나올 강아지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이상하다. 나는 얼른 거실의 불을 켠다. 푸드덕푸드덕 몸부림을 치던 형광등이 비로소 제 자리를 찾아 환하게 밝아온다. 거실 안에 누군가 서 있다. 주방 창문 가까이 돌아선 자세로…. 나는 공포에 몸이 굳어버린다. 뚫어지게 그를 바라본다. 그는 내가 들어왔는데도 움직이지 않는다. 머리카락이 오싹하니 곤두선다. 나는 기다린다. 그가 돌아서기를. 입조차 떼지 못하고…. 그는 돌아선 자세에서 집안을 한 바퀴 쭉 둘러보는 모양이다. 내 눈엔 아침에 미처 정리정돈을 하지 못하고 빠져나간 집안의 어지러운 모습이 어수선하다. 집안 꼴이 말이 아니다. 그러나 어쩔 것인가? 나는 못 박힌 듯 출입문 앞에 그대로 서 있다. 이윽고 그 검은…
돈은 그 사회의 가치 척도라고 할 정도로 현대사회의 빼놓을 수 없는 존재이고 에너지이다. 우리는 매일매일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고 어디에 사용할 지 고민하며 살아간다. 옛 속담에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 났나’라는 말이 있다. 돈이 귀중해도 사람보다 더 귀중할 수 없다는 뜻으로 돈밖에 모르는 사람을 비난하는 말이다. 어떤 이들은 ‘돈은 사회생활의 전부다’ 또는 ‘돈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을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돈이 신(神)의 자리를 대신할 정도로 무겁고 중요하다. 갖고 싶은 게 있으면 앞뒤 생각하지 않고 바로 사버리는 사람들이 믿는 가상의 ‘지름신’이 바로 그 신(神)이다. 돈을 신으로 표현할 정도로 돈의 마력은 엄청나다. 인생을 살다 보면 다른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기도 하고 때로는 빌리기도 하며 살아간다. 돈이 필요할 때 누구나 선뜻 시원스럽게 빌려주지 않는다. 돈을 빌려 줘도 좋은 사람인지? 돈을 빌려줘서는 안 되는 사람인지? 우리는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이에 몇 가지 인상학적 특징을 얼굴에서 살펴보면 이런 고민을 해소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돈을
허공 /이덕규 자라면서 기댈 곳이 허공밖에 없는 나무들은 믿는 구석이 오직 허공뿐인 나무들은 어느 한쪽으로 가만히 기운 나무들은 끝내 기운 쪽으로 쿵, 쓰러지고야 마는 나무들은 기억한다, 일생 기대 살던 당신의 그 든든한 어깨를 당신이 떠날까봐 조바심으로 오그라들던 그 뭉툭한 발가락을 - 이덕규 시집 ‘놈이었습니다’ 그렇다, 나무가 기댈 곳은 허공밖에 없다. 기댈 곳이 허공뿐이라서, 글자 그대로 텅 비어 있어서, 정말 아무 것도 없어서, 마침내 나무는 위로 자랄 수 있다. 그러니까 허공은 나무의 유일한 기댈 곳이다. 허공에 기대지 않고서는 나무는 자신을 지탱할 수가 없다. 사람에게도 허공 같은 존재들이 있다. 어느 한쪽으로 쿵, 쓰러지기 전에 기억해내야 할 허공 같은 사람들이 있다. 허공처럼 늘 있으나 없는 듯 나를 일으켜 세우는 사람들. 허공을 숨 쉬는 것처럼 늘 함께 하여서 바람 불고 눈비가 오는 날에나 그 든든한 어깨를 알게 하는 사람들. 이제는 내가 기댈 곳이 되어 주어야 하는 사람들./김명철 시인…
인천 서구청장으로 취임 1주년을 맞은 이재현 서구청장이 “역동적인 도시 서구에서, 구민들이 자긍심을 갖고 살아 갈 수 있는 도시, 대한민국의 중심도시 서구로 나아가기 위한 1년”이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 구청장에게 지난 1년은 ▲서구의 미래는 뭘까 ▲서구를 어떻게 가치 있는 도시로 만들어야 하나 등을 고민했던 시간이었다. 그는 “서구는 늘 변방, 뒤 따라가는 도시, 현안이 많은 아직도 개발단계에 있는 어수선한 도시라는 이미지 속에서 서구의 가치를 만들기 위해 ‘서구 미래 30년 비전’ 제시하고 실행계획을 만든 것”이 가장 큰 성과라고 자평했다. 현재 서구는 붉은 수돗물 사태를 비롯해 수도권매립지 종료, 검단신도시의 활성화, 쓰레기 소각장에 대한 지역민들의 갈등, 루원시티의 앵커시설인 행정복합타운, 경인고속도로 일반화 진행 등 굵직한 현안들이 아직 맞물려 있다.이 구청장은 앞으로 “현재의 매립 위주의 쓰레기 처리 정책에서 적극 재활용하는 쓰레기 정책에 대한 해결책 모색과 길게는 10년 넘게 끌어온 지역 현안마다 구체적으로 해결 기한을 제시하고, 마스터플랜을 만들어 꼼꼼하게 해결해 나…
“구민의 행복을 위해 지역 각계각층의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 숙의 과정을 통해 구정에 대한 적극적인 협조와 견제를 진행했던 1년이었습니다.” 인천 서구의회 전반기 의장으로 취임 1주년을 맞은 송춘규 의장의 소감이다. 송 의장은 제8대 서구의회 개원 이후 주요 성과로 17명의 구의원들의 열정적인 의정활동을 꼽았다. 그는 “구의회 개원 시에 초선의원 비율이 높아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지만, 구의원들 스스로 전문성을 향상시키며 구 집행부에 대한 견제와 감시 역할에 충실했다”고 말했다. 실제 서구의회는 지난 1년 동안 정례회 3회, 임시회 5회 등 총 8회에 걸쳐 조례안 128건(의원발의 77건, 집행부 발의 51건)과 예산안 5건, 기타 안건 77건을 처리했다. 또 18건의 구정질문과 4건의 의정자유발언, 행정사무감사 등을 통해 도출한 지적사항에 대해 집행부의 대안 마련과 시정을 강력히 요구하며, ‘생산적인 의회 상’을 적립했다는 평가다. 송 의장은 앞으로 “2년차에는 여·야 구분없이 서로 소통하고 대화를 나누면서 구민이 힘들고 어려운 부분에 대해 해결할 방법을 찾고, 서구의 미…
우선 인천경제자유구역(IFEZ)이 경제자유구역(FEZ) 성과평가에서 최우수 S등급을 받은 것을 축하한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2003년 인천을 시작으로 광양만권(2004), 부산ㆍ진해(2003), 황해(2008), 대구ㆍ경북(2008), 충북(2013), 동해안권(2013) 등 총 7개의 경제자유구역이 조성·운영되고 있다. 2008년 개청됐던 새만금군산경제자유구역청은 2018년 지정해제 됐다. 인천경제자유구역이 전국의 7개 경제자유구역 가운데 가장 우수하다고 평가된 S등급을 받음으로써 우리나라의 경제자유구역(FEZ)의 선도적인 위치에 있음을 재확인한 것이다. 민간전문가로 구성된 평가위원회가 2개 부문(전략평가, 성과평가) 총 14개 지표에 대해 서류심사, 현장점검, 종합평가 등을 통해 실시한 평가 결과 인천경제청은 전 부문에서 우수했다. 전략평가와 성과평가 2개 부문에서 모두 S등급을 차지했다. 대표적인 우수성과로 인정받은 것은 ▲중점 유치업종 중심의 투자유치 전략과 실적 ▲바이오산업의 혁신성장을 위한 노력 ▲복합리조트와 복합쇼핑몰 분야의 차별화·집적화 등이었다. 특히 인천 지역경제에 영향력이 큰 국내기업 투자유치와 신규고용 일자리, 투자유치 파급효과, 외국인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했다.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는 뜻이다. 너무 나서지 말라는 말과 맥락을 같이한다. 요즘 구설수에 한창 오르고 있는 더불어 민주당의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에 적합한 말이다. 이 연구원은 지난 30일 ‘대외주의’라고 적힌 ‘한·일 갈등에 관한 여론 동향’ 보고서를 민주당 전체 의원에게 이메일로 보냈다. 보내면서도 무언가 께름칙했는지 ‘주의’해 줄 것을 요구했다. 결국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았고 그 내용은 만천하에 공개됐다. ‘일본의 수출 규제로 불거진 한·일 갈등이 내년 총선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내용이다. 얍삽하다. 아차 싶었나보다. 다음날 바로 고개를 숙였다. “적절치 못한 내용이 적절치 못하게 배포됐다”며 “관련자들에게 엄중한 주의와 경고 조치를 취했다”고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불은 이미 바람을 타고 이 곳 저 곳으로 번졌다. 여권의 ‘친일 프레임’에 걸려 혼수상태에 빠졌던 자유한국당과 다른 야당들은 일제히 비난의 포화를 쏘아댔다.…
고등학교 때 일이다. 한문 선생님이 어찌나 고리타분했던지 수업시간에 졸지 않았던 학생은 거의 없었다. 아니 딱 한 명 있었다. 바로 나다. 여기까지 읽으면 내가 뭐 대단한 모범생처럼 들린다. 하지만 나는 다른 이유로 졸지 않았다. 지루하기 짝이 없는데다가, 선생님은 유머도 눈곱만큼도 없었다. 고사성어에 얽힌 이야기라도 좀 해주셨으면 모두 다 반항하듯 잠을 자지는 않았을 거다. 그럼에도 무거운 눈꺼풀을 지탱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며 참았던 이유는 언제까지 선생님이 일관된 모습을 유지하는지 끝까지 볼 참이었기 때문이다. 사람인데 저렇게 기계처럼 한결같을까 하는 마음과 ‘혹시나’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이 선생님, 간혹 하는 말도 가관이었다. 여자애들은 가르쳐봤자 소용없다거나 졸업 후 찾아오는 법은 없다거나 여학교는 기부금이 없어 가난하다거나 심지어 여자는 예쁜 게 가장 큰 경쟁력이라 했다. 소심한 나는 속으로만 반항했다. ‘아니라구요!’ 대학을 다니면서도 직장을 다닐 때도 나는 선생님이 했던 말을 기억했다. 존경하는 선생님께 매년 찾아가 인사드린다든가, 의기양양하게 학교에 기부금을 내기도 했고, 장학금 모금에 동참도 했다. 훌륭한 일은 아니어도 선배로, 제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