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앞에 당당하게 살기란 쉽지 않다. ‘당당’은 아니더라도 ‘부끄럽지 않게 사는 일’조차 녹록하지 않다. 기성세대가 될수록 이렇게 살기는 더욱 쉽지않다. 불의(不義)에 눈을 감아야하는 일도 많아지고 나와 가족의 안위를 위해 숨죽여야 하는 경우도 늘어나니 그렇겠다. 이렇게 나이와 함께 초라해지는 ‘기성’에게 조금 당당해져도 된다는 위로의 소식이 들려와 고맙다. 기성세대가 ‘각성’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한 것이라 생각된다. 그런데 조금 부끄럽다. 희망의 씨앗이, 위안의 진원지가 청소년들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는 ‘응답하라 1919,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 경기도 중학생 역사원정대’ 이야기다. 이 청소년들이 지난 3일, 3개월 동안의 독립운동 역사탐방 대장정(大長程)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시작은 이랬다. 경기도가 경기도교육청과 손잡고 도내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역사 인식을 심어주겠다는 기획으로 준비했다. 지난 8월 발대식을 가졌다. 33개 팀 1천59명이 ‘이어가기 방식’으로 중국과 러시아의 항일 독립운동 발자취를 따라가는 역사탐방을 펼쳤다. 준비도 철저히 했다. 탐방 전에는 ▲3·1독립선언서 필사본 작성 ▲탐방 유적지 사전 조사 ▲다큐멘터리
대학에 있다 보니 수강신청을 하는 기간이 되면 많은 상담요청이 온다. 그런데 어느 날 연구실로 나이 지긋한 어머니가 찾아왔다. 이야기인즉슨 딸이 직장생활을 하면서 학교를 다니는데 어떤 과목을 들어야하는지 고민하길래 답답해서 찾아왔노라고 했다. 대학생 딸의 수강신청을 어머니가 와서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었다. 딸에게 조언을 하는 정도면 그냥 넘길 수도 있다. 문제는 수강신청을 대신 해주겠다고 어머니가 자발적으로 왔다는 것이다. 필자는 그날 학생의 어머니가 오히려 상담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대학생 자식의 수강신청까지 관여해야 하는 어머니의 심리에 대해 생각해보기를 권했다. 심리학자 아들러는 타인의 과제에 침범하지 말 것을 주문한다. 설령 미움을 받더라도 말이다. 필자 역시 자녀교육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이 부모와 자녀의 과제분리, 심리적 의존에서 독립하기다. 자식이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가고 좋은 직장을 잡는 것은 부모의 과제가 아니라 자식의 과제이다. 발달심리차원에서 사춘기 아이들은 부모로부터 독립하기 위한 준비를 하느라고 부모에게 까칠하게 군다. 자신이 부모의 것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말을 안 듣는다. 자기일은 자기가 하겠다고 우기며 어깃장을 놓기
한국은 수사와 기소까지 검사가 형사절차 전반을 지배하고 있고, 이러한 기형적인 수사구조의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가고 있다. 왜 ‘기형적인 수사구조’라고 할까? 한국 검사는 수사권과 기소권 모두를 가지고 있고, 이러한 수사구조는 전 세계 어느 나라에도 찾아볼 수 없는 체제이다. 이렇듯 검사가 수사권과 기소건 모두를 장악한 구조에서 경찰수사를 지휘한다면 기소를 목표로 실체적 진실 규모에서 벗어날 우려가 상당히 클 것이다. 주요 선진국 검사는 기소와 공소유지에 집중하며 수사는 경찰이 전담하고 있다. 수사와 기소가 분리되면 무엇이 달라질까? 검찰은 정치적 이유와 기소 재량을 악용한 수사를 할 수 없게 된다. 또 경찰 수사에 사전 개입할 수 없게 되고 객관적 사후통제할 수 있다. 끝으로 성역 없는 법 집행을 할 수 있다. 검사의 권한집중으로 인한 특권이 없어지고 반대로 경찰수사에 문제가 있으면 보완수사요청권 등으로 견제할 수 있다. 기형적인 사법구조에서 개선돼야 할 또 하나가 바로 영장청구권이다. 헌법 제12조 3항에 검찰의 영장청구 독점조항이 있어 검사만 판사에 영장을 청구할 있다. 주요 선진국에서 경찰이 직접 판사에게 영장을 청구할 수 있도록…
온 나라가 어수선 한 가운데 아프리카 돼지열병도 한 몫을 더해 주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생소한 아프리카 돼지열병(ASF)에 경찰의 하루는 짧기만 하다. 국민들은 말한다. “경찰이 도둑은 안 잡고 왠 돼지 소독에 매달려?”하며 소독약에 차 망가진다고 투덜대기까지 한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전체를 공포에 떨게 한 아프리카 돼지열병 바이러스는 얼려도 1천일을 버티고 노출된 상태에서는 1년 가까이 살아남아 감염시 치사율이 100%에 이른다고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직 백신과 치료약이 없어 현재로서는 돼지열병이 발생한 지역 방역과 살처분을 통한 바이러스 확산 방지만이 최선책이다. 국민이 가장 사랑하는 음식 중 하나인 삼겹살, 막창, 순대까지 생활 속의 돼지고기는 국민 대표 먹거리 중 하나임에도 이번 돼지열병의 확산이 전국으로 번지면 믿을수 없겠지만 30년간은 돼지고기를 맛볼 수 없다는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방심과 무관심으로 바라보던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 유럽국가에서는 지난 35년간 이 돼지열병과 싸워야 했다. 또한 가깝게 북한은 돼지열병이 전역으로 확산돼 돼지 자체가 전멸된 상태로 절대 먼 나라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국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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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은 국가 경제발전의 뿌리다. 그런 이유로 중소기업이 살아야 나라와 국민이 행복하다. 뿐만아니라 중소기업은 일자리 창출을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앞장서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설득력 있다. 국가가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것은 당연하다. 중소기업이 대기업의 견제와 압력으로부터 자유롭게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나라가 좋은 나라이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경제 발전의 주축이 되고 있는 중소기업들이 한자리에 모인다니 반갑다. 국내 최대 규모라니 더욱 그렇다. 중소기업 전문 전시회인 ‘G-FAIR KOREA(지-페어 코리아) 2019’ 이야기다. 지난 31일 고양시 일산 킨텍스 제1전시장에서 개막했다. 오는 3일까지 850개 기업의 리빙·뷰티·다이닝·레저 제품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올해로 22회째다. 경기도와 전국경제진흥원협의회가 주최하고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경과원)과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가 주관한다. 창의적이고 우수한 중소기업 제품을 한자리에서 만나는 기회다. 돌이켜보면 ‘중소’라는 이유로 ‘대’기업으로부터 받았던 서러움이 어디 한 둘인가. 오랜 실패를 거쳐 간신히 개발한 아이템을 날로 빼앗기기도 하고 대표들은 자살도 했
얼마 전 우리나라 중증 외상 치료의 권위자인 이국종 아주대병원 경기남부권역 외상센터장이 항소심에서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은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위한 탄원서를 대법원에 보냈다. 그러자 일부에서 이 교수에게 날선 비난을 퍼부었다. ‘정치 편향적’이라는 것이다. 류여해 전 자유한국당 최고위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명박이 영웅 만들어 키워준 이 교수가 문재인 정권에서 정치한다”고 비난했다. 어떤 단체는 아주대병원 앞에서 시위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교수는 자신을 규탄하는 시위 현장에 나타났다. 그는 시위대를 향해 “징계를 요구하신다고 했는데 굉장히 좋은 아이디어”라며 “절 자르지 못해 안달인 사람이 많다. 가서 (징계 요구를) 하시면 그걸 근거로 저를 자를 것이다. 지긋지긋하다”고까지 말했다. 그는 왜 이런 자괴감을 시위대에게 토로한 것일까? 이재명 지사에 대한 호불호와 상관없이 이국종 교수는 국민들에게 ‘영웅’과 같은 존재다.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됐다가 구출됐지만 생명이 위급했던 석해균 선장을 치료해 살렸으며, 5발의 총상을 입은 귀순 북한 병사의 수술을 맡아 소생시킨 우리나라 중증 외상 치료의 최고 권위자다. 그런 그가 ‘지긋지긋하다’는 말을 한 것이다. 이
어렸을 때부터 화가를 꿈꾸는 어린 소녀에게 나혜석은 절대로 본받으면 안되는 여자였다. 그러나 미술교과서에서는 최초의 서양여류화가로 불리우고 미술 시험 문제로 나오곤 했다. 나혜석(1896∼1948)이란 이름이 다시 인식 되기 시작한 것은 대학 졸업후 매향여자중학교 미술교사로 임명되면서 부터다. 나혜석은 수원에서 태어나 1910년 수원 삼일여학교를 졸업하고 진명여학교로 편입한다. 매향여자중학교 전신이 삼일여학교이다. 수원에 와서 경기미술대전에서 2년 연속 우수상을 받고 1회 개인전을 마쳤을 때 제일 먼저 들은 말이 나혜석처럼 되지 말고 끝까지 살아 남으라는 말이었다. 도대체 나혜석이 무엇을 했기에 어린시절부터 금기된 이름이었을까. 나혜석은 오빠 나경석의 권유로 도쿄에 있는 일본 최초 여자미술학교 ‘여자미술전문학교’ 서양화부에 입학한다. 한국을 대표하는 여류화가 박래현, 천경자가 후배이다. 졸업후 1921년에 열린 경성일보사 내청각 개인전은 한국 여성 최초의 미술 개인전으로 장안의 화제가 되었다. 개인전이 끝나고 남편 김우영(1886-1958)이 만주국 안동의 부영사가 되어 안동에서 살며 그림을 그리고 글을 발표 했다. 1927년에…
행정구역은 지방행정을 합리적이고 능률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기본골격을 형성하는 제도인 동시에 주민의 일상생활과 정치, 경제, 문화 등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이다. 따라서 보다 합리적이고 능률적으로 자치기능을 구현시켜 나가면서 국민 또는 주민 생활의 편익을 증진하기 위해 언제든 재설정될 수 있고 또 재설계돼야 한다. 분당에 신도시가 들어선지도 30년이 지났다. 신도시란 자연스럽게 성장한 도시가 아니라 처음부터 계획적, 인공적으로 만든 도시를 말한다. 30년 전 정부는 서울의 폭등하는 집값과 주택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기 신도시 계획을 발표했다. 분당, 일산, 평촌, 산본, 중동이 1기 신도시에 해당한다. 이 가운데 분당은 ‘천당 아래 분당’이란 별칭을 만들어낼 만큼 신도시 가운데 가장 성공했다는 평을 받아왔다. 그러나 30년이 지난 지금은 어떠한가? 분당은 현재 자족기능을 갖춘 신도시가 아닌 노후화돼 구도시화되고 있다. 따라서 이제는 한국 신도시의 대표적인 성공모델로의 재창조가 절실한 시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분당구는 분당 주민들의 해묵은 숙원사업인 분당시로 승격(독립)이 절실히 필요하다. 본래 분당신도시 계획 단계에서부터 분
가을이 깊다. 이 계절은 시를 읽기 참 좋은 때다. 산책을 하다가 낙엽 쌓인 벤치에 앉아서, 여행 중 창밖을 보다가, 근무 중 휴식시간에 짧은 시라도 한편 씩 읽는다면 이 가을은 더욱 풍요로울 것이다. 시의 시대가 끝났다는 사람들도 있다. 백원근 출판평론가는 시(시집)는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중반 직전까지 10년간에 걸쳐 우리 출판시장에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다고 한다. 실제로 이 시기에는 이해인 수녀의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 1983년)를 비롯해 접시꽃 당신(도종환, 1986년), 홀로서기(서정윤, 1987년), 보여줄 수 있는 사랑은 아주 작습니다(칼릴 지브란, 1988년),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류시화, 1996년) 등이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렸으며 수백만부씩 팔리기도 했다. 가히 ‘시의 시대’였다고 할 만 하다. 그러나 2000년대가 시작되면서 시집이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오르는 것을 보기 어려웠다. 그 대신 시인들의 수가 급증했다. 일부에서는 우스갯소리로 시 독자들이 모두 시인이 됐다고 할 정도다. 신인을 배출하는 전국의 문예지만 100종류가 넘는다고 한다. 정확한 숫자는 아니지만 우리나라의 시인은 2만 명이 훨씬 넘을 것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