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 전반 지원 도 산하기관 25개 중 9곳 관장 예산 배정은 3%에도 못미쳐 자유로운 분위기 속 의견 개진 결속력 강화·업무능력 배가 작년 행감 우수위원회 선정 쾌거 김달수 위원장 “예산 확대 요구 합의·토론·공정이 최우선 가치” 우리 상임위는요…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경기도의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도민을 위한 문화·체육·관광의 전반을 지원하는 곳이다. 김달수(더불어민주당·고양10·사진) 위원장은 도가 추진하는 문화·체육·관광 정책을 적극 지원은 하되 개입은 하지 않는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상임위를 이끌고 있다. 체계적인 지원을 통한 자립력을 키워주는 것이 자생력이 약한 문화·체육·관광 산업에 가장 필요한 부문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문화·체육·관광은 각각 다른 색을 갖고 있지만 서로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김 위원장은 설명했다. 또 문체위가 도 산하기관 25개 중 9곳을 관장하고 있을만큼 도민의 삶에도 밀접한 연관이 있는 곳이라고 부연
영국의 시인 T. S. 엘리엇은 그의 시 ‘황무지’에서 “4월은 잔인한 달 / 죽은 땅에서 라일락꽃을 피우며 / 추억에 욕망을 뒤섞으며 / 봄비로 잠든 뿌리를 일깨운다”라고 읊으면서 “겨울은 오히려 / 우리를 따뜻하게 감싸 주었었다. / 망각의 눈이 대지를 덮고 / 마른 구근으로 가냘픈 생명을 키웠다”라고 봄을 이야기했다. 시인이 생명이 움트는 봄의 기운을 잔인함에 비유한 것은 아마도 엄동의 겨울을 지내온 인내의 고통을 표현하고자 한 의미였으리라. 봄만큼 인간의 감성을 풍성하게 하는 것도 없다. 그래서 예부터 많은 사람들이 한결같은 목소리와 각종 미사여구를 동원해 봄을 노래했다. 이런 봄의 화신(花信)이 20여일이나 일찍 왔다. 덕분에 시야가 머무는 산마다 들마다 울긋불긋 하다. 홀로 단아하게 봄을 맞이하던 목련은 벌써 하얀 옷깃을 여미듯 꽃잎을 떨구고 있다. 따라서 올 것 같지 않던 봄도 어느덧 여름을 향해 성큼 달아난 느낌이다. 예년 같지 않은 계절 탓에 울상인 곳도 생겨났다. 벚꽃 축제를 계획했던 지자체들이다. 이런 사정을 아랑곳하지 않고 일찍 꽃망울 터트린 벚나무의 자태는 아름답고 화사하기만 하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봄이 희망과 부활의 계절임을…
추위는 이제 끝나고 꽃소식이 밀려온다. 여름 지나면 선풍기 먼지 털어서 비닐 씌워 창고에 넣어 두듯이 추위 이야기는 이제 곱게 개어서 장롱 속에다 넣어 둬야 할 때가 됐다. 비교적 북쪽 지역인 우리 동네도 이제는 완연한 봄이다. 청평 호반에 얼음이 녹아 보트 놀이가 가능해졌는가 싶었는데 오늘은 보니 개동백은 노란 물감이 탈색되기 시작했고 양지바른 곳에는 벌써 진달래가 성급한 계집아이 새 옷 입혀주면 자랑하러 뛰어 나가듯 꽃망울을 터트리고는 뽐내기 시작을 했다. 4월은 나 개인적으로 보나 국가적으로 보나 난제가 수두룩한 달이다. 사방천지 꽃소식에 묻혀, 가는지 모르게 지나는 4월이기도 하지만 솔직히 4월이 오는 것이 개인적으로도 두렵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T. S. 엘리엇의 시 황무지에서 잔인한 4월이 시작되었는지 모르나 시대도 많이 변했건만 4월이 오면 잔인한 4월이라는 이야기가 여전히 많이 나오고 그래서 그런지 모르나 우리에게는 아직 아물지 않은 아픔이 있다. 기억하기조차 싫으나 차마 잊을 수 없는 끔찍한 일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어제 어느 라디오 프로에서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긴급 기자회견을 한 것을 가지고 대담이 있었다. 그런데 너…
최근 배우자의 말이나 행동으로 인해 속상했거나 화가 났던 순간이 있었는가? 그 불편했던 상황을 떠올려보자. 만약 그때 배우자가 어떤 행동 또는 말을 했으면 내 기분이 상하지 않았을까? 그 당시 배우자에게 기대한 것은 무엇인가? 평소 1시간 정도 운전하면 충분히 도착 가능한 거리를 도로 사정 때문에 2시간 만에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그리고 3시간 정도 소요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출발했는데 운전 2시간 만에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어느 경우가 더 피곤할까? 운전한 시간은 같기 때문에 육체 피로도는 동일할지 모르겠지만, 예상(기대)보다 긴 시간 운전한 경우 심리적 피로가 높아진다. 매일 오가며 잘 알고 있는 출근길에도 내 기대와 다른 상황이 자주 발생하는데 하물며 부부 사이에는 얼마나 많은 일이 발생하겠는가. 부부 사이에도 기대가 존재한다. 하지만 배우자는 내 ‘기대’에 항상 부응하는 사람이 아니다. 배우자도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내 기대와 다른 반응을 보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이런 상황에서 부부 사이에 존재하는 기대가 합리적이지 않다면 부부 아포리아(난관)에 빠지게 된다. ‘명선수는 명지도자가 될…
자몽 /김명은 꺾인 나뭇가지에 유리 풍선이 얹혀 있다 이빨에 물어뜯긴 입술로 입을 맞출까 음소를 노랗게 물들이며 태양의 허밍을 청취하고 있다 첫 키스가 마지막까지 숨겼던 어절이 드러나는 시간 다물어버린 입속에서 성조(聲調)가 썩고 썩은 침묵이 쏟아진다 칼날은 시고 달고 쓰다 따뜻한 혀에 얼어붙은 알갱이 침묵을 이겨낸 혀가 출구 없는 악보를 읽는다 방랑하던 음이 혀끝을 처음 자리로 되돌려 놓는다 - 김명은 시집 ‘사이프러스의 긴팔’ 우리는 언제까지 ‘꺾인 나뭇가지에 얹혀 있는 유리 풍선’처럼 불안한 삶을 이어가야 하는 것일까. 행복을 가장한 불행에 언제까지 입을 맞추어야 하는 것일까. 태양의 허밍을 듣노라면, 칼날처럼 예리한 첫 키스의 추억은 달콤만 해야 마땅할 것이나, 실은 자몽처럼 시기도 쓰기도 하다는 것을 우리는 고백해야 한다. 그로부터 이어지는 다물어버린 입 속의 썩은 침묵들. 그러나 우리의 혀마저, 심장마저, 얼음 알갱이처럼 차가워진 것은 아니다. 비록 출구가 보이지 않는 삶일지라도 우리는 악보를 읽듯 우리의 삶을 허밍하여야 한다. 방랑하는 음이 방랑이 아니게 될 때까지./김명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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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장천에 울고 가는 저 기러기/제비를 후리러 나간다. 제비를 후리러 나간다./복희씨 맺힌 그물을 두루쳐 메고서 나간다./망탕산으로 나간다./우이여∼ 어허어 어이고 저 제비 네 어디로 달아나노.’ 우리가 잘 아는 판소리 ‘제비가’의 한 대목이다. 놀보가 흥보의 이야기를 듣고 박씨를 물어다 부자가 되게 해 줄 제비를 후리러 다니는 내용이다. 이처럼 제비는 가난한 사람을 돕고 은혜를 갚는 하늘의 심부름꾼을 뜻한다고 해서 예부터 매우 친숙하다. 특히 음력 9월 9일 중양절에 강남에 갔다가 3월 3일 삼짇날에 돌아오는데, 이와 같이 수가 겹치는 날에 갔다가 수가 겹치는 날에 돌아오는 새라고 해서 민간에서는 감각과 신경이 예민하고 총명한 영물로 인식하고 길조(吉鳥)로 여겨왔다. 따라서 집에 제비가 들어와 보금자리를 트는 것은 좋은 일이 생길 조짐으로, 제비가 새끼를 많이 치면 풍년이 든다고 믿었다. 독일에서도 제비는 특별대우를 받는다. 봄을 알리는 새이며, 동시에 행운을 가져오고, 집을 수호하는 새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최초의 제비가 도착하는 날에는 노래와 환성으로 맞이하는 풍습이 있다. 일부 지방에서는 가족 전원이 문에 나와서 맞이하고, 제비들에 엄숙하
대부분의 사람들은 늘 말한다. 책을 많이 읽으라고. 세종대왕, 정약용을 비롯해 빌게이츠, 워런버핏까지 국내, 국외, 과거, 현재를 모두 포함해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의 특징은 독서량이 매우 많았다는 것이다. 고전에 ‘남아수독오거서(男兒須讀五車書)’라는 말이 있다. 이는 남자라면 모름지기 수레 5대 분량의 책을 읽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는 독서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는 것이며 독서의 생활화를 요구하는 것이다. 선진국 일수록 국민들의 독서량이 많다는 자료가 있다. 이는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란 말과 연관성이 있는 것이 아닐까? ‘온고(溫故)’란 지나온 것에 대한 반추이며 성찰인 동시에 기억하고 알아야만 되는 경험과 지식이다. 과거를 되돌아보고 세상의 이치를 깨달으면 미래를 내다볼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과거의 축적이 오늘날의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도태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독서량은 매우 적다. 한류의 열풍에 자부심을 가지는 문화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다양한 분야의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독서를 함으로써 즐거움과 보람, 자기성찰의 기회를 갖고 과거의 축
재작년 겨울부터 ‘뢴트겐의 양심과 오늘’이라는 제목의 글로 시작해 격주로 칼럼을 써왔다. 오늘로 17개월간 눌문(訥文)의 행진을 마감하게 됐다. 마지막 기고를 앞두고 그동안 썼던 글들을 순서대로 읽어 보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약간의 용기도 필요했다. 필자가 쓴 글들 중에서 제목조차도 떠올리기 싫은 다수의 졸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타고난 게으름 병으로 글쓰기를 미루다가 결국 원고마감에 쫓겨서 황급히 송고하는 경우가 있던 탓이다. 한편으로는 눌변(訥辯)과 장고(長考)의 장애를 가진 필자에게 원고마감이라는 제약이 없었다면 글 한편도 제대로 공개 못했을 법도 했다. 하지만 초기 기고문부터 당시의 진지했던 염원과 열망이 되살아나기도 했다. 지난 2017년 연말에 쓴 ‘1944년 겨울행 타임머신’에서는 2018년 새해를 1945년 광복의 해로 여기며 광복 직전 시간으로 되돌아가 ‘다함께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타임머신에 탑승하자는 억설(臆說)로 새해를 염원했다. 북한의 6차 핵실험으로 평창동계올림픽 개최 우려와 위기감 속에서 ‘평창동계올림픽 궁즉변 변즉통하라!’는 30년 만에 개
해 /이영광 해가 동에서 떠 서로 가는 길 오래 바라보았다 환해서 안 보이는 그것을 힘껏 바라보았다 걸어가다 고개 들면 가까이 더 명백해지고 있었다 다 벗고 지나가는 비밀을 모조리 까발려진 어둠을 종일 뜬 눈으로, 울며 보았다 찬란한 너여, ‘종일 뜬 눈으로,/울며’ 나는 ‘너’의 이동을 주시하고 있다. 과도한 빛에 노출된 해바라기 꽃처럼 나는 너를 따라 얼굴을 돌리는 것이다. ‘동에서 떠 서로 가는 길.’ 이 길은 희망의 탄생에서 희망의 죽음으로 진화하는 길. 강렬한 ‘빛’이 스며들어와 나를 정화시키거나, 행복한 변화를 작동시키지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나의 자유를 속박 당하고 서 있다. 하늘아래 홀로, 슬픔의 사로잡힘은 절망에 기원을 두고 자라나고 있으니. 세상은 ‘환해서 안 보이는 그것’, ‘다 벗고 지나가는 비밀’, 그것들 ‘모조리 까발린 어둠 뿐’일까. 내가 느끼는 아득한 슬픔들. 문득 ‘해’를 직면할 때, 불쑥 새로운 투쟁은 시작된 걸까. 결산할 수 없는 운명과의 대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