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맥주가 본격적으로 대중화된 것은 1980년대다. 1981년 오비맥주가 ‘OB베어’라는 생맥주 체인점을 시작하면서 급속히 ‘국민 술’로 자리 잡았다. 신선한 맛이 병맥주와는 다른 데다 가격도 상대적으로 저렴해져 간단한 안주와 함께 마시기에 큰 부담도 없어 특히 그랬다. 물론 생맥주는 그 이전에도 우리와 친숙했다. 1970년대부터 생맥주, 청바지, 통기타가 히피문화의 상징으로 여겨지면서 젊은이들 사이에 생음악을 들으며 생맥주 잔을 기울이는 낭만이 유행처럼 번졌었기 때문이다. 서울 명동 ‘오비스캐빈’은 그때를 기억하는 OB(올드보이)들에겐 지금도 생생한 추억의 장소로 남아있다. 이후 여러 형태의 생맥주집들이 폭발적으로 생기기 시작한 것은 88올림픽이 계기다. 자연히 경쟁이 치열해졌고 대형화, 고급화, 현대화되면서 소규모 동네 맥주집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갔다. 지금은 ‘호프집’으로 불리는 다양한 생맥주집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그렇다면 생맥주와 병맥주, 캔맥주의 차이는 무엇일까. 제조과정의 마지막 단계에서 열처리를 했느냐 안했느냐에 있다. 생맥주는 열처리를 하지 않아 계속 발효 중인 맥주다. 따라서 맛과 향이 그대로 살아 있다. 하지만 변질 가능성이 높아…
장미꽃 진자리 초록이 자리를 채운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잎을 넓혀간다. 헐렁하던 가지사이가 푸른 것들로 빼곡하다. 허공에도 지분이 있다면 여름에는 나무에게 평수를 많이 주어야겠다는 생각에 헛웃음 친다. 매일 매일이 다르게 자라는 푸른 잎들처럼 우리 집에도 꽃보다 아름다운 꽃이 자라고 있다. 새 생명이 태어난 지 2년이 되어간다. 아기의 성장과정을 지켜보는 일이 날로 새롭다. 탯줄을 자르고 엄마 젖을 빨고 그리고 배냇짓을 하고 울고 웃으며 자라는 모습을 보면 생명의 신비감이 느껴진다. 아이가 첫돌이 되면서 지인들 초대하고 이렇게 예쁜 아이 낳고 가정을 이루며 잘 살고 있다고 뽐내던 아들 내외가 대견하고 자랑스러워 보였다. 아기가 태어나던 순간부터 365일을 기록하고 그것을 편집한 영상을 볼 때는 철부지인 줄 알았는데 부모가 되어 저렇게 역할을 해내고 있구나 싶어 콧잔등이 시큰했다. 생후 10개월 정도부터 걸음마를 시작했고 잔병치레 없이 잘 자랐다. 낯가림도 별로 없고 그저 먹고 자고 놀고 하는 순둥이였는데 첫돌이 지나면서 고집도 생기고 내 것에 대한 욕심을 내기도 하면서 살아가는 법을 터득해가고 있는 것이 신기하다. 자아가 형성되고 좋고 싫음을 분명히 표현하…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취임한 지 얼마돼지 않았을 때다. 안양에서 응급 재난구조 종합훈련을 마치고 관련 기관단체장들이 상황실이 설치된 천막 안에 둘러앉았다. 이 지사 주재로 훈련 후 강평과 함께 관련 기관들이 차례로 긴급재난 시 역할을 이야기 했다. 그때 병원마크가 새겨진 헬멧을 쓰고 완벽한 복장을 갖추고 앉아있던 이국종 교수가 ‘닥터헬기 비상착륙 문제’를 제기했다. “오래 전부터 닥터헬기 이야기가 오갔지만 누구하나 속 시원한 답변이 없다”고 이야기 한 걸로 기억된다. 필자도 그 자리에 재난구호위원으로 참석해 이 교수의 단호한 어조(語調)로 도지사에게 건의하는 걸 들었다. 이국종 교수가 누구인가? 오만 아덴만 여명작전으로 소말리아 해적에 의해 피랍되어 심하게 부상당해 사경(死境)을 헤매는 삼호주얼리호 석해균 선장의 목숨을 살린 중증 외상 치료분야 권위자가 아닌가. 그때 중증외상 치료의 특수성과 중요성을 세상에 알린 장본인이다. 중증외상센터는 국내 외상외과의 마지막 보루다. 국제표준에 맞는 중증외상 의료시스템을 우리나라에 정착시키기 위해 노력한 결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국은 중증외상 의료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경기남부권역외상센터도 얼마나 버틸지 알
격렬鄙劣도 /정선 격렬비열도에 전염병이 돌고 있다 땡볕은 비닐봉지만도 못하게 뒹구는 시들을 모아 파묻고 있다 꽤액 꽤액 시들은 파묻히지 않으려고 악을 쓴다 겉보기엔 멀쩡한 저놈들이 소리 없는 살인병기다 내 안에서 몇 번이나 수장시킨! 격렬비열도, 서서히 그믐달 바깥으로 침몰한다 절벽 틈마다 야자를 심자는 최초의 발상은 한통속으로 싱싱하다 - 정선 시집 ‘안부를 묻는 밤이 있었다’ 어느 때 문득 ‘이건 본래의 내가 아니야’라고 느낄 때가 있다. 무엇보다도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 삶의 목표를 위한답시고 부지불식간에 ‘나’를 내동댕이쳤을 때, 그로 인해 나답지 못하게 鄙劣해져서 타인들로부터 또는 스스로에게 심한 모멸감을 느낄 때면 특히 그럴 수 있다. 시인들에게는 시가 살인병기가 될 수 있듯이, 정치가에게는 권력이, 경제인에게는 재력이, 사회인에게는 관계가 살인병기가 되어 그들을 침몰시킬 수 있다. ‘나’를 죽이는 나의 鄙劣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김명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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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색해진 짧은 머리를 보여주긴 싫었어, 손 흔드는 사람들 속에 그댈 남겨두긴 싫어~,그 곳의 생활들이 낯설고 힘들어~.”가수 김민우의 노래 ‘입영열차 안에서’ 가사 일부다. 가사는 군 입대를 앞둔 청년의 심정을 나타내고 있다.낮선 사람들, 낮선 환경에 가족·지인들과 떨어져지내야 하는 걱정스러움을 잘 표현했다.군 입대 초기 장병의 눈시울을 적시게 만드는 가사기도 하다.입대 장병 당사자 뿐 아니라 자녀를 군으로 떠나보내는부모도 걱정에 쌓이기는 매한가지다.요즘은 구타 등이 없어지고, 휴대전화 사용이 가능하다 해도자녀를 생면부지 타지로 보내는데 대한 걱정이 앞설수 밖에 없다.혹시 모를 사고도 부모가 안심할 수 없게 하는 부분중 하나다.하지만 경기도내에서 자녀를 군에 보낸 부모는이같은 걱정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는 길이 생겼다.바로 ‘군복무 경기청년 상해보험’ 덕이다.경기도는 자신을 희생해가며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도내 거주 청년들에 도움을 주기 위해지난해 말부터 상해지원 정책을 펴고 있다.별도 가입 절차 없이 군 복무 시작과 동시에 상해보험에 가입, 전역때까지 자동 연장돼 이용도 편리하다. 지난해 11월 도입한 청년대상 복지정책 경기도 거주자 군복무 중 불상사에 대비
민선 7기 출범 1주년 맞은 신 동 헌 광주시장 “취임 1년이 지난 지금 시장이라는 위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고 있다. 광주시를 책임진다기 보다 미래를 디자인하는 역할을 잘 해야 하는 위치라는 생각을 갖게 됐으며, 전 공직자들이 한 팀이 돼 함께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 방안을 강구해 시민들이 행복한 광주, 살기 좋은 광주를 만들어 나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지난 1년간 광주시정을 이끌어 온 신동헌 광주시장의 소회다. 신 시장이 취임한 지 어느덧 1년이다. 이에 신동헌 광주시장으로부터 지난 1년간의 시정성과와 앞으로의 시정방향을 들어봤다. 지난 1년 동안 주요 성과들이 있다면. 우선 지난해 시 예산의 10%를 절감해 1천억원을 조성, 교육·교통 문제 등 긴급사업 추진에 투입했다. 절감재원은 행사나 축제, 전시성 사업폐지 등 경상경비에서 600억원, 투자사업 부진사유 원점재검토 및 우선순위 변경 등으로 300억원, 누진세원 발굴 등 세입증대를 통해 100억원이다. 이처럼 절감한 재원은 고용상황 악화 해소를 위한 일자리사업 확대에 210억원, 긴급한 도로사업 추진 및 도로사업의 토지보상에 750억원, 기업하기 좋은 도시환경…
■ 백남준아트센터 특별전 ‘생태감각’ “이번 전시는 미술관의 새로운 존재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일종의 문화예술 공유지로서 미술관이 가능할 것인지, 그 질문의 연장선에서 나온 주제입니다.”(이채영 백남준아트센터 학예팀장) 백남준아트센터는 공생을 위해 필요한 인간의 새로운 감각을 제안하는 특별전 ‘생태감각’을 오는 9월 22일까지 개최한다. ‘생태감각’ 전은 생태학에 대한 백남준의 비전으로, 인간 행동의 변화 가능성에 대한 낙관적인 믿음을 기반으로 한다. 전시는 그 믿음을 바탕으로 이른바 ‘인류세’라 불리는 시대를 우리가 함께 통과해 나갈 수 있을지, 서로가 서로에게 응답해주어야 할 때임을 일러주고 있다. 이번 전시는 지구 생태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인간의 권한에 의문을 제기하고, 후기 자연 혹은 인류세로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기후변화와 환경 위기의 심각함을 느끼면서도 인간 종의 지속성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땅 아래 묻어 버리는 지구 사용법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전시는 백남준 작가의 작품과…
선글라스는 누구나 하나쯤은 가지고 있는 생필품이다. 강렬한 햇빛으로부터 눈을 보호하는 것이 용도지만 패션 아이템, 또는 위·변장의 수단 등으로 활용 폭이 넓어 그렇다. 사용기원은 11세기 송나라 때부터라는 설이 있다. 중국의 판관들이 송사 때 피고에게 표정을 감추기 위해 사용한 연수정(煙水晶) 안경이 시초라고 알려져서다. 공정한 판결을 돕기 위한 도구였던 선글라스는 현대에 와서 기능이 변했다. 1937년 미 공군이 조종사들의 시력 보호를 위한 선글라스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선글라스는 그 후에도 진화를 거듭, 본모습을 감추는 데 더 많이 사용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정치인들의 ‘소품’으로도 많이 활용된다. 대표적인 것이 1950년 9월15일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한 함상의 더글러스 맥아더 유엔군 최고사령관이다. 또 1961년 5월18일 육사 생도들의 5·16 지지 시위를 지켜보는 박정희전 대통령, 특히 그해 11월 미국을 방문해 케네디 대통령과 만날 때도 선글라스를 써 그를 상징하는 아이콘이 됐다. 해서 시사만화 속에 단골로 등장하는 검정 선글라스는 독재와 기관원을 상징한다. 요인 경호원들과 판문점에 근무하는 헌병들도 상대에게 눈동자를 들키지 않기 위해 선글라스
유엔주재 북한대표부가 지난 3일 미국을 비난하는 성명을 공식 발표했다. 트럼프와 김정은의 판문점 회동이 있기 직전, 미국이 유엔 회원국들에게 대북제재 결의 규정 이행을 촉구하는 서한을 발송했기 때문이다. 판문점 회동에서의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불과 사흘 만에 바뀐 것이다. 이런 북한의 반응을 보면,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이 생각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일 국무회의에서 “(판문점 회동)을 통해 남북에 이어 북-미 간에도 문서상의 서명은 아니지만 사실상의 행동으로 적대관계의 종식과 새로운 평화시대의 본격적인 시작을 선언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정말로 지난 판문점 회동이 “일종의 종전 선언”이라고 생각했다면, 과연 그 근거가 무엇인지가 궁금하다. 또, 우리를 사정권에 두고 있는 단거리 미사일을 시험 발사한 바 있는 북한을 두고, “남북”간의 평화가 시작됐다고 평가할 수 있을 지도 의문이다. 종전 선언이나 평화를 말하기 위해서는 비핵화가 전제돼야 한다. 비핵화 없는 평화는 평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핵이 있는 상태에서는 평화라는 단어 대신 “균형”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