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적으로 심각한 학교폭력의 후유증을 앓고 있는 지금, 학교폭력이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고 있다. 학폭위 심의건수가 지난 4년 새 전국에서 두 배 가까이 증가하고 있고, 학폭 피해 학생 위로금 명목으로 지급된 보험 건수만 지난 5년간 6백여 건, 액수로는 4억2천5백여만 원이며, 학폭위 이후 소송에 휘말릴 것을 우려한 교사들의 보험 가입도 대폭 증가해 한 법률비용보험 상품의 교사 가입자는 1년 새 10배로 폭등한 상태이다. 최근 스마트학생복이 10일부터 약 일주일간 초·중·고교생 총 1179명을 대상으로 벌인 청소년들의 학교폭력 상황 및 인식 변화 등을 파악하는 설문조사 결과에 의하면, 작년 대비 학교폭력이 감소했다고 느끼는지 묻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 중 약 53.6%가 감소하지 않았다고 대답했으며. 그중 절반이 넘는 학생이 ‘성인에 비해 솜방망이 처벌(51.7%)’을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2004년 학교폭력예방법과 함께 도입된 ‘학교폭력대책 자치위원회’ 이른바 학폭위는, 학교 폭력이 발생했을 때 당사자들을 직접 조사해, 그 결과에 따라 가해 학생에게는 처벌을, 피해 학생에게는 심리치료나…
휘파람새 /박미라 사랑을 훔쳐서 목숨으로 쓴다는 도둑이 있었다 도둑질할 품목의 무게와 특성쯤은 알아야 한다고 한여름 생선보다 쉽게 상할 수도 있고 보관방법도 천차만별이라고 더구나 그 무게를 아는 자 없더라고 달랠 만큼 달랬는데 전설 속 대도大盜라도 된다는 듯 휘파람소리만 강물처럼 흘려보내더니 마침내 나는 눈멀고 귀멀어 도둑의 행방 환하게 보이고 찢어진 목청을 다스릴 만한데 이제, 목숨을 훔쳐서 사랑으로 쓴다는 도둑의 소식에 나는 그저 겨울로 향하는 휘파람새 소리거니 귀를 닫는다 우리는 누군가의 사랑을 훔쳐야만 살아갈 수 있다. 엄마의 사랑이나 자식의 사랑, 혹은 친구나 연인, 나아가 나에 대한 ‘나’의 사랑을 훔쳐 파먹어야만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사랑이라는 것의 무게와 특성을 가늠할 수 없는 것이 문제다. 사랑의 정체는 변화무쌍 그 자체일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사랑한다는 것, 그것으로 목숨을 이어간다는 것은 얼마나 애가 타는 일인가. 그런데 ‘도둑’은 이제, 목숨을 훔쳐 사랑으로 쓴다고 한다. 사랑으로 목숨을 살리는 것도 버거운 일인데, 목숨으로 사랑을 살리겠다는 것이다. 그에게는 목숨이 아니라 사랑…
중·고교 여학생들이 급기야 거리로 뛰쳐나왔다. 전국 각지 여학생 모임 등 30여 개 단체는 학생독립운동 기념일인 3일 서울 도심에서 ‘스쿨미투’ 집회를 열었다. 학교 내 미투(Me too) 운동을 일컫는 스쿨미투가 200여일이 지나자 교문을 박차고 나온 것이다. 교육·사법 당국과 학교가 스쿨미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사건을 축소하거나 덮고 넘어가기에 급급했던 탓이다. ‘여학생을 위한 학교는 없다’는 명칭의 스쿨미투 집회는 학교 현장의 민낯을 보여줬다. 이들의 목소리는 학교에 만연된 구조적 성차별 문화와 성범죄가 얼마나 심각한지 일깨워준다. 학식과 덕행에서 모범을 보여야 할 교사가 학생을 성적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기성세대는 고개를 들지 못할 처지가 됐다. 스쿨미투는 지난 4월 서울 용화여고 학생들이 불을 붙였다. 이 학교 학생들이 ‘#ME TOO’(나도 겪었다), ‘#WITH YOU’(당신과 함께) 등을 적은 메모지를 창문에 붙이면서 스쿨미투는 전국으로 번져 나갔다. 용화여고에서는 교사 18명이 성폭력으로 파면·해임·정직·견책 등의 징계를 받았다. 광주의 모 고교에서는 전수조사 결과 학생 180여 명이 교사들에게 성적인 모욕이나 추행을 당한 것
‘조물주 위에 건물주가 있다’는 유쾌하지 않은 농담이 있다. 남의 건물을 임대해 살거나 장사를 하는 사람들의 푸념이다. 과도하게 월세를 인상한다든가 세입자들에게 갑질을 일삼는다는 부정적 인식이 많다. 반면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하다. 장래 희망이 건물주라는 어린이들도 많다. 그런데 어려운 세입자들의 입장을 이해해주는 천사 같은 건물주도 있다. 인천 부평구 부평 로데오거리에 위치한 한 상가 건물주가 그 주인공이다. 이 건물 1층에서 버무리 떡볶이 가게를 운영하는 백모 씨가 밝힌 내용은 이렇다. 얼마 전 건물주가 도장을 가지고 오라고 했다. 이런 경우 십중팔구는 임대료를 인상하겠다는 통보일 것이다. 당연히 긴장을 한 백씨에게 건물주는 ‘한시적 월 임대료 조정 합의서’라는 계약서를 내밀었다. 이 계약서에는 ‘경기 불황으로 인한 임차인의 어려움을 함께 나누고자 한시적으로 임대료를 인하 한다’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2018년 11월1일부터 2019년 12월 30일까지 임대료를 깎아 주겠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임대료는 월 600만원이었는데 100만원을 인하한 500만원만 받겠다는것이다. 그러니까 14개월간 1천400만원을 덜 받겠다고 통보한 것이다. 임대료 인하 혜택은…
갈라파고스 섬을 아는가. 갈라파고스는 남아메리카 에콰도르 해안에서 서쪽으로 926㎞ 떨어져 있는 섬으로, 발견 당시에는 무인도로 200㎏이 넘는 코끼리거북, 몸길이가 1.5m인 도마뱀, 15℃ 정도로 낮은 수온, 적도에 있으면서도 산호초가 없으며 야자수도 자라지 않는 등 척박한 환경이었다. ‘신비의 섬’으로 유명한 이 섬도 외래종과 질병의 침범, 식량자원의 축소, 먹이사슬의 축소, 해수면의 상승, 온도변화 등을 이유로 고유 동식물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외부환경의 변화로 갈라파고스의 고유함이 약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후 생물 생태계는 이처럼 특이한 진화 현상을 갈라파고스에 빗대곤 했다. 외부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할 수밖에 없다는 이런 현상을 ‘갈라파고스 증후군(Galapagos syndrome)’이라고 부른다. 갈라파고스의 사례는 놀라운 독특함도 외부환경에 따라 그 색을 잃을 수 있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한때 일본 제조업 특히 IT산업 등이 자국 시장에만 안주하며 국제 환경을 외면한 채 특정 기술에만 집착하다가 경쟁력이 약화되어 세계 시장에서 ‘1위 자리’를 내준 것도 같은 예다. 이러한 ‘갈라파고스 증후군’은 우리에게는 가슴 아픈 역사이지만 19
‘국제영화제’가 세계적으로 몇 개나 열리는지를 알기는 어렵다. 영화제마다 규모도 다르고 주최자들의 구성도 다양해서 정기적으로 행사를 여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한두 번 행사를 치르고는 흐지부지 사라지는 일도 많기 때문이다. 미디어가 다양해지면서 ‘영화’라는 형태로 보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각국에서 열리는 국제영화제를 다 합치면 적어도 수백 개에서 많게는 수천 개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국내에서 열리는 국제영화제만도 80여 개쯤에 이른다. 경기도에서만도 부천시에서 열리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와 파주 휴전선 일대에서 열리는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안산의 상록수다문화국제단편영화제가 ‘국제영화제’라는 간판을 달고 있다. 고양의 스마트영화제, 부천의 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동두천의 동두천카툰애니메이션페스티벌도 ‘국제적’이다. 통상 영화계에서는 3개국 이상에서 영화나 영화인이 참가하면 ‘국제영화제’의 최소한 면모를 갖추었다고 본다. 그래도 비중 있는 영화제라면 국제영화제작자연맹(FIAPF)이 공인하는 것을 기준으로 삼는다. FIAPF가 공인하는 국제영화제는 경쟁극영화 영화제(14), 경쟁특성화영화제(28), 비경쟁 극영화(4), 다큐멘터리·단편(5) 등 4
이천 옥야촌 청년들 마을공동체 이천시 율면 월포2리 ‘옥야촌마을’ 18가구 27명 거주… 대부분 70대 이상 변화 물꼬 튼 귀농 4년차 박준하 대표 작년 마을공동체 공간조성사업 통해 허름했던 마을회관 리모델링 주민들 모여 음악회·바비큐파티 즐겨 청년들 일자리 창출 위해 청년창업 도전 이천 특산품 활용 바비큐·수제맥주 개발 고령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면서 각 지역의 시골 마을들은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다. 이천시 율면 월포2리의 시골마을도 예외는 아니다. 18가구 27명이 살고 있는 이 마을 역시 길어야 10년 후면 없어질 위기다. 이천시 율면에 위치한 월포2리의 마을은 옥야촌마을이라고 불린다. 주민의 80%이상이 70대 이상 노인들로 구성된 인구과소화, 초고령화 마을이다. 이 마을에서는 공동체 활동 자체를 기대하기 어렵다. 공동체 활동이라고 해봐야 어쩌다 한번 명절에 다 같이 모여 식사를 하는 정도다. 그러나 한 청년의 귀농으로 월포2리의 마을은 변하기 시작했다. 바로 박준하 옥야촌 청년들 대표가 주인공이다. 박 대표가 현재 거주하고 있는 곳은 이천시 월포2리 옥야촌 마을로 귀농한 4년 차다. 서울에서 살던 그는 고조할아버지 때부터 고향인 옥야촌마을에 땅과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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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이 가기 전인 28일에 충남 예산군 덕산면에 있는 충의사(忠義祠)인 윤봉길의사기념관을 찾아보았다. 지난해 중국의 ‘홍구(만국)공원’을 찾았을 때 이름이 ‘노신공원’으로 바뀐 것을 보고 좀 서운했지만 그래도 윤봉길 의사의 넋이 살아있다는 생각에 위로를 받고 귀국길에 올랐다. 마음속으로 늘 윤봉길기념관을 찾아봐야지 하다가 거의 1년이 다 되어 찾았다. 낙엽이 지는 가을이어서 마음이 쓸쓸한 것보다는 독도문제나 위안부 문제 등 일본과의 풀리지 않는 문제들이 생각나서 더욱 쓸쓸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다시는 나라를 잃으면 안 된다는 생각 일본의 한국 통치는 잔학했다. 독립군의 목을 잘라서 그 목을 들고 웃으며 기념사진을 찍거나 작두로 목을 자르는 장면들을 보면 정말 소름이 끼친다. 다시는 나라를 잃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면서 과연 오늘 우리의 안보는 걱정을 않해도 되는지를 생각해 보았다. 1932년 4월 29일 오전 11시 40분에 일본 국가 기미가요가 울려 퍼지는 순간, 윤봉길 의사는 단상으로 접근해 물통폭탄을 투척하였다. 이 사건으로 총사령관 시라카와 요시노리와 상하이 일본거류민단장 가와바타 사다지가 죽었다. 중화
나치가 에스파냐의 게르니카에 가한 폭격을 다룬 피카소의 ‘게르니카’는 그 끔찍한 잔영이 대중 속에 깊이 파고들어 가서, 그 영향력은 오늘날에도 그칠 줄을 모른다. 현대사의 비극이 찾아올 때마다 사람들은 이 작품을 깃발 삼아 인간이 같은 인간에게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를 상기시켜 주곤 한다. 역사상 이만큼 정치적인 작품은 없었다. ‘게르니카’는 정치와 예술의 한 극단적인 관계를 예로 보여주고 있다. ‘게르니카’는 군대도, 언론도 하지 못한 것을 예술이 해낼 수도 있다는 것을 만천하에 알렸다. 게르니카에서는 1만5천명이 넘는 민간인이 학살되었고, 에스파냐는 나치와 협력한 프랑코 군에 의해 결국 함락되었지만 이후 ‘게르니카’는 유럽과 미국을 순회하며 프랑코 군의 만행을 전 세계에 알렸다. 우리 사회에서도 세월호를 추모하며, 5·18을 추모하며 이 작품을 꺼내 들곤 한다. 많은 사람들이, 예술은 바로 이런 것이어야 한다는 굳은 생각을 지니고 있다. 예술은 근본적으로 사람들의 내면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것이어야 하고, 이처럼 영원불멸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