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방화수류정서 울려 퍼진 ‘대한독립만세’, 수원의 독립운동가 김세환
“대한독립 만세, 대한독립 만세.” 우렁찬 함성이 쏟아졌던 1919년 3월 1일. 전국에서도 가장 격렬했던 수원의 만세운동은 수백 명이 모인 방화수류정에서 시작됐다. 수원의 대표적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인 김세환은 3·1 만세운동을 주도한 민족대표 48인 중 한 명이다. 제102주년 삼일절을 앞두고 민족주의 운동을 위해 일생을 바친 그의 삶을 돌아보고자 한다. 1888년 11월 18일 수원 남수동 242번지에서 태어난 김세환은 당시 보시동에 세워진 감리교회에서 자연스럽게 기독교를 접하고, 서양의 문물과 학문을 배웠다. 이곳은 현 북수동에 위치한 종로교회로 수원성내 최초의 개신교회이며, 천주교도들이 병인교난에 피 흘린 순교의 터, 북수동 368번지 종로사거리로는 1907년 이전했다. 서울에서 보성중학교와 관립 한성외국어학교를 졸업한 그는 이후 일본에서 유학하며 신학물을 배운 뒤 귀국해 고향인 수원에서 교직생활을 시작했다. 김세환이 처음 교편을 잡은 수원상업강습소는 지역의 조선인 상업인들 주도로 1908년 4월 15일 설립된 수원상업회의소 내 학교로, 상업에 관한 지식과 기능 강습을 통한 인재 양성을 목적으로 했다. 현 수원고등학교의 전신인 수원상업강습소는 1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