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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아직도 화끈거리는 사연

 

황당하고 기가 막혔다.

‘이럴 수는 없는 거야. 절 세 번 하는 동안에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기어이 찾아 내고 말거야.’

급한 마음에 좍 좍 - 내리는 빗속을 10분 이상씩이나 샅샅이 뒤져보았지만 범인을 잡을 수는 없었다. 화가 뒤엉킨 상태로 다시 돌아온 무량수전 앞엔 아무도 신고 가지 않은 신발 한 켤레가 그대로 기다리고 있었다.

“앞으로 절에 오실 때는 새 신발 신고 오지 마세요. 그냥 액운을 다 가져간 거라 생각하세요”라는 관리인의 말. 상가 집에 갈 때 새 구두 신고 가지 말라는 스쳐가는 말은 들어보았지만 절에 갈 때 새 신발 신고 가지 말란 말은 처음 들어본다.

며칠 전 아들이 첫 월급 타서 백내장 걸린 어머니를 위해 난생 처음 선물해 준 고급 선글라스를, 불상 앞에 삼배 올리느라 벗어놓은 사이 누군가 슬쩍 가져간 일이 있었다고 했다. 꼭 찾아달라는 노인의 눈물 글썽이며 한 그 당부를 아직도 해결해드리지 못해 가슴이 아프다는 관리인의 말에, 얼마나 더 세상이 각박해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착잡해졌다.

편치 않은 마음 달래고파 다시 들어선 무량수전엔 조소아미타여래좌상의 번쩍이는 금빛과 치켜뜬 눈매, 불타오르는 광배 조각이 대비되어 묘한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마치 신발 한 켤레의 보시 앞에서도 쉽게 분노하고 범인을 잡겠다고 날을 세운 내 모습과 물욕에 눈이 멀어 때와 장소를 가릴 줄 모르는 나를 비롯한 또 다른 그들을 책망이라도 하듯 문밖 빗소리 채찍비로 변했다. 뭔가 착각을 하고 가져갔을 수도 있을 텐데, 무턱대고 의심부터 하며 죄인 취급한 여유 없는 내 부끄러운 마음이 그 무거운 침묵 사이로 자꾸만 비춰보였다.

낯선 그 신발 신고 다시 돌아 내려오는 길. 빗물에 젖은 부석사는 한 폭의 동양화로 물안개와 더불어 우렁우렁 피어올랐다. 1300년 사연을 머금은 석축을 돌아 구품계 극락으로 이르는 길을 의미한다는 안양문 돌계단을 하나하나 다시 밟아 내려가는 길. 올라간 만큼 내려가야 하는, 오르고 내리는 그 삶의 길을 따라 사람들은 그렇게 각자의 길을 찾아가고 있는가 보다.

허공에 걸친 듯 군더더기 하나 없는 소박하고 단아한 안양루의 자태도, 무량수전의 당당하고 의젓한 멋스러움도 특별히 별스럽지 않은 그 하루와 더불어 덤덤하게 걸어가고 있는 중인 것이다.

잘 우려낸 연잎 차 한 잔 마주한 내 늦은 밤까지도 내가 만난 그 하루는 들려줄 이야기가 남아 있는지 그대로 차향에 떠다니고 있다. 어느 노파가 동냥한 돈으로 기름을 사 정성을 다해 무량수전 앞 국보 석등에 바쳤더니 비바람이 불어도 이 노파의 등만은 꺼지지 않았다고 했는데. 난 무슨 일에, 누구에게 그런 정성을 한 번이라도 제대로 바쳐 본 적이 있었을까. 무한한 지혜를 상징한다는 조소아미타여래좌상의 예리한 눈빛에 이미 들켜버린 내 허술한 지혜의 빈 방은 어쩔 수 없다손치고. 저벅저벅 걸어오는 소리 들리는 저 내일을 나는 또 어찌해야할지. 비바람 불어도 내 석등에 불이 꺼지지 않으려면 밤새 그 정성 마련해야할 텐데.

▲에세이 문예 등단 ▲한국 에세이 작가연대 회원 ▲평택문협 회원 ▲독서토론논술 문화원 원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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