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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시론]맛있는 휴가

 

바야흐로 휴가철이다. 휴가를 맛있게 즐기기 위해 꼭 준비해야 할 것이 세 가지 있다. 가장 먼저 챙겨야 할 것은 휴가지의 맛집이다. 인터넷에 들어가 ‘○○○ 맛집’ 하고 휴가지 이름과 맛집을 합성한 키워드를 입력하면 휴가지의 맛있는 식당들 얘기가 즐비하게 올라온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라면, 그 지역에 사는 친구들 또는 그 지역에 최근 휴가를 갔다 온 사람들을 수소문해야 했다. 아니면, 휴가지에 관한 최신 특집 기사나 여행 잡지를 뒤져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굳이 그런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 작년 여름에는 변산 해수욕장에서 휴가를 보냈는데, 가는 길에 1945년 설립 이래 꿋꿋이 명성을 이어오고 있는 군산 ‘이성당 빵집’에 들러 단팥빵과 야채빵을 사먹었다. 근처의 오래된 해물탕 집도 인기 만점이었다. 무더위로 짜증나기 쉽고 입나오기 쉬운 가족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휴가지의 특산품과 맛집 서너 군데 정도는 미리 머릿속에 입력해 놓고 떠나야 한다.

휴가철에 하나 더 준비해야 할 것은 휴가지의 역사와 문화에 관한 지식이다. 휴가지의 멋진 풍광은 그 자체로서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그 지역의 유명한 사찰과 문화 유적, 그 고장을 대표하는 전통문화 축제와 역사적 인물 등이 추가되어야 그 지역을 제대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군산 이성당 빵집에 들렀을 적에 근처에 있던 군산항 부두와 일제 강점기의 군산세관, 당시 생활상을 보존해 놓은 역사문화관도 함께 둘러보았다. 금상첨화였다. 또 하나의 예를 들면, 남양주시에 소재한 콘도나 펜션에서 여름휴가를 보낸다고 할 때, 주변의 좋은 경치를 감상하고 가족들과 인근 맛집을 순례하면서 휴가를 즐길 수도 있다. 하지만, 남양주시 능내리에 위치한 정약용 생가를 둘러보고, 다산의 파란만장했던 삶과 그 당시의 안타까운 한국사, 목민심서 등 그가 남긴 훌륭한 책들에 대해 가족과 얘기하고 돌아올 수 있다면, 휴가의 맛과 격조가 한 단계 더 높아질 것이다. ‘이 무덤은 열수 정약용의 묘이다’라고 시작되는 묘비의 글을 읽다보면, ‘다산’(茶山)뿐만 아니라 ‘열수’(冽水)도 정약용의 호였음을 알 수 있다. 열수는 그 당시 한강을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이었으며, 18년의 강진 유배생활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와 여생을 보내면서 사용하기 시작한 호라고 한다. 이처럼 강가에서 태어나 한강을 사랑했던 정약용 선생은 1814년 강진 유배지에서 한강 이북의 강들을 소상히 설명하고, 그 주변의 인문지리에 관하여 집대성한 ‘대동수경’(大東水經)이라는 지리책을 쓰기도 했다. 이처럼 정약용 선생에 관한 새로운 지식을 얻어 가기 위해서는 휴가를 떠나오기 전에 휴가지에 관한 약간의 사전 지식이 있어야 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휴가지에서도 유효하다.

마지막으로, 휴가의 맛을 더하는 것은 책이다. 일상의 번거로움으로 인해 평소 읽기 어려웠던 책을 여행가방 맨 아래쪽에 집어넣을 때의 기분이란 말로 형용하기 어렵다. 휴가를 떠나는 이유는 지친 도시 생활 속에서 다 소진된 배터리를 재충전하기 위해서이다. 조용히 쉬면서 생각을 가다듬기에 휴가지만한 곳이 없다. 휴가지로 뚝 떨어져 나와 있을 때 낯선 지역의 낯선 풍경이 주는 생소함은 새로운 생각을 떠올리기에 안성맞춤이다. 그 호젓함 속에서 필요한 것이 바로 평소 읽고 싶었던 책이다. 그 책을 다 읽기에는 물론 휴가가 너무 짧을 것이다. 책도 잘 골라야 한다. 너무 어렵고 딱딱한 책은 곤란하다. 휴가 기간 틈틈이 읽기에 좋은 에세이와 소설책이 여름철에 많은 사랑을 받는 이유다. 여행 가방에 책을 집어넣고 떠나는 이유는 사실 그 책을 다 읽기 위해서가 아니다. 몇 페이지, 아니 몇 줄의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올해 여름휴가를 떠나기에 앞서 책장에 꽂혀 있던 김훈의 ‘자전거여행’을 꺼내들었다. 10년도 더 책장에 꽂혀 있던 책을 다시 들어 먼지를 털어내게 한 원동력은 그 만큼 나에게 여행이 간절했기 때문일 것이다. 김훈처럼 전국을 다 자전거로 돌아보고 싶은 건 속된 말로 희망 사항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책을 열어 조금이라도 읽기 시작하면, 마치 내가 김훈이라도 되어 그가 타고 다녔던 풍륜(風輪) 위에 올라탄 환상에 빠져들게 한다. 바로 그 기분이야말로 휴가의 절정이요, 클라이맥스다. 맛있는 휴가란 눈과 혀끝에서 끝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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