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맞춤법은 참 어렵다. 띄어쓰기만 보더라도 그렇다. 글쓰기가 직업인 사람들조차 골치 아프게 여길 정도다. 띄어 쓸 단어를 붙여 쓰거나 그렇지 않을 경우 엉뚱한 뜻이 되거나 정반대로 해석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띄어쓰기를 제대로 하면 글 읽기도 쉽고 호흡도 편하다. 글의 의미도 명확해진다. ‘문장의 각 단어는 띄어 씀을 원칙으로 하고, 조사는 그 앞말에 붙여 쓴다’는 한글맞춤법을 지켰을 경우다.
띄어쓰기를 변형시킨 문장으로 실소(失笑)를 자아내기도 한다.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신다’는 만인이 아는 고전이다. 요즘은, ‘후배 위하는 선배가 좋다’ 등의 야한이야기 할 때도 적용시킨다. 그런가 하면 띄어쓰기에 따라 새로운 글로 화려하게 변신하기도 한다. 마광수 교수의 에세이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가 외설에 휘말리자 한 출판사가 ‘나는야 한 여자가 좋다’로 바꾸어 출간, 독자의 호응을 받기도 했다.
띄어쓰기조차 어려운 한글이 요즘 IT 네트워크상 철자법마저 어렵게 변화하고 있다. 저녁 때 퇴근하고 한잔 ‘햇지’ ‘안대’ ‘머가?’ ‘갠춘한데’. 직장인 문자 메시지 내용이다. ‘햇지’는 ‘했지’, ‘안대’는 ‘안 돼’, ‘머가’는 ‘뭐가’, ‘갠춘한데’는 ‘괜찮은데’라고 써야 맞지만 스마트폰을 통해 당연한 듯 쓴다. ㅎㄷㄷ(후덜덜), ㅈㅅ(죄송), ㅅㄱ(수고) 등 과거 외계어처럼 10대 청소년층에서만 나타나던 ‘문자 단순화’ 현상도 세대로 확산하고 있다. 대학과 직장에서조차 기말고사 답안지와 보고서에도 모음을 생략하거나 철자법이 엉뚱한 단어를 쓰는 사람도 늘고 있다. 이런 현상이 곧 학위논문에까지 나타나리라 보는 사람도 있다. 초등학교 받아쓰기 답안지를 보면 벌써 심각한 수준을 넘었다고 한다. 이러다간 ‘한글 까막눈화’가 다시 도래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얼마 전 중국 교육부가 전국의 초·중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서법(書法) 교육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서법은 붓글씨(서예)를 포함한 글쓰기 방법을 말한다. 현재 각급학교에는 서법 과목이 정규 과정으로 지정돼 있지 않다. 이 조치는 최근 IT 기기의 발달로 한자 쓰는 법을 모르는 중국인들이 늘고 있어서다. 심각함으로 따지면 우리나라도 못지않다. 지금이라도 한글 까막눈화를 막기 위한 비책 마련에 나서야 할 때가 아닌지.
/정준성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