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내 웃자란 풀을 잘라내는 손길이 분주하다. 아파트 울타리 무성했던 풀이 한목에 낮아진다. 풀풀풀 쌉싸름한 냄새가 풀이 내지르는 비명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거처를 잃어버린 날것들 사방으로 튕겨지고 막 자리를 뜨려던 옹골찬 씨앗들 또한 힘없이 던져진다.
예취기에 잘린 풀에서 풀물 빠지는 냄새가 난다. 풀냄새에 지난 계절의 길들이 담겨있다. 들녘을 뜨겁게 달구던 태양과 지루하던 장마 그리고 절기를 다투며 그 안에서 피고 지던 들꽃들의 향기가 바람에 섞여 있다.
풀이 잘리기 전 이곳은 날것들의 천국이었다. 푸른 것들과 한통속이 된 달팽이는 집을 지고 옮겨 다니고 거미는 줄을 치고 먹잇감이 걸려들기를 기다렸다. 그 안에서 초례청을 차리고 혼사를 거들던 벌들 또한 풀이 잘리기 전까지는 평온했다.
예취기를 돌리던 남자가 벌집을 건드린 순간 벌은 무차별적으로 남자를 공격했다. 놀라고 당황한 남자는 예취기를 맨 채로 달아나다 넘어져 옆에서 작업하던 기계에 팔이 걸렸다.
예취기의 칼날은 남자의 팔에 박혔고 벌떼는 다친 남자를 뒤쫓아 사정없이 공격했다.
칼날에 베이고 벌에 마구 쏘인 남자는 정신을 잃었고 병원에서 응급조치 후 다행히 목숨을 건졌지만 한동안 병원 신세를 졌다. 정말이지 끔찍한 순간이었다.
여름내 무성하게 자란 풀을 정리하는 제초작업이 한창인 때다. 대부분의 제초작업을 기계로 하다 보니 예취기에 의한 안전사고가 잦다. 칼날에 튕겨진 돌에 의해 부상을 당하는가 하면 도로변에서 풀 깎기 작업을 하던 중 돌이 튀어 지나던 차량의 유리창이 깨지는 것을 목격하면서 기계화로 인해 편리해진 만큼 도처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음을 실감한다.
간혹 기계에 대한 기본지식이나 주의사항을 무시한 채 사용하다 보니 돌발적으로 발생하는 상황에 속수무책일 수 있고 적시에 응급조치를 못해 큰 사고로 이어지기도 한다.
위험한 것은 기계뿐만이 아니다. 풀이 무성한 곳이다 보니 벌이나 뱀, 진드기 등 많은 적수가 있다. 어릴 적 시골에서는 풀 깎기 전에 벌집 소탕작업을 했다.
땅벌을 잡기위해 밤에 짚불을 놓으면 놀란 벌들이 뛰쳐나오다 날개를 그을린 채 수북이 널브러져 있기도 했다. 벌이 달려들면 몸을 낮춰 벌의 공격을 피했고 가급적 화려하지 않은 옷을 입었으며 물것들이 덤비지 않게 향이 나는 것들을 몸 가까이 하지 않았고 백반을 준비해 뱀을 예방하기도 했다.
때로는 작은 부주의가 돌이킬 수 없는 큰 사고로 확대된다. 설마 나는 괜찮겠지 하는 안전불감증이 가장 무서운 적이 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어느덧 주변을 둘러보면 짙푸르기만 하던 초목에서 풀물이 빠지기 시작했다. 성장을 늦춘 풀은 저마다 열매를 익히기에 분주하다. 자연이 시계를 돌리는 동안 날것들은 진화를 거듭할 것이고 우리가 위험한 거처를 제거하기 위해 생각의 예취기를 들이대는 동안에도 가을은 빠르게 빠져나갈 것이다.
▲한국문인협회 회원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안견문학상 대상 ▲시집- 푸른 상처들의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