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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폭우(暴雨)

 

지붕에 세차게 꽂히는 빗소리와 천둥소리에 밤잠을 설쳤다. 장마자락이 채 걷히지도 않았는데 또 호우주의보가 내렸다. 텃밭에 심은 가을배추 모종이 무사할까 걱정되었다. 유난히 길었던 금년 장마는 상추, 쑥갓, 오이, 가지 등 봄채소들을 깡그리 망쳐 놓았다. 밤새 아우성치던 하늘이 아침이 되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 붉은 해가 구름 사이로 빠끔히 얼굴을 내민다.

금년 장마는 경기 북부지역인 이곳에 특별히 많은 비를 뿌렸다. 덕분에 각처의 지인들로부터 안부 전화를 받기도 하였다. 장마는 40여일 동안 이어져 기록을 갱신하였지만 중부지방에만 집중되어 중부에는 홍수피해, 남부에는 가뭄피해가 났다. 장마철이 끝났다 해도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8∼9월의 태풍이 몰고 온 폭우가 오히려 더 큰 피해를 입힌다. 나에게는 먼, 태풍 기억이 있다.

포프라 가로수를 넘어뜨리고 초가지붕을 하늘로 날리는 거센 바람과 굵은 빗줄기가 줄기차게 쏟아졌다. 큰물에 마을 뒤편 하천 둑이 무너져 이웃사람들과 언덕 위 중학교로 급히 대피하여 밤새 공포에 떨었다. 온천지가 물에 잠겼고 우리 집도 천장까지 물이 차 옷가지며 살림살이가 몽땅 흙탕물을 뒤집어썼다. 내가 13살 되던 해, 추석 준비로 한창일 때였다. 아직도 회자되고 있는 전설적인 태풍, 1959년의 ‘사라’였다. 당시 849명이 숨지고 2천533명이 실종, 37만3천459명의 이재민이 발생하였다.

우리나라는 지리적인 이유로 옛날부터 폭우가 잦았던 모양이다. 삼국사기와 고려사에는 홍수 기록이 수없이 많다. 조선시대에도 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일성록 등에 홍수피해 기록과 임진왜란 이후의 측우기 관측기록이 있다. 한양에도 홍수가 빈번하여 하루 300∼400mm의 폭우와 1천여명의 인명 피해, 3천채가 넘는 가옥파손 등이 여러 번 있었다.

물은 모자라도, 넘쳐도 재앙이 된다. 부족하면 가뭄피해를 입게 되고, 넘치는 물은 농토 건 가옥이건 닥치는 대로 휩쓸고 간다. 예부터 통치자들은 가뭄과 홍수에 대비하는 치수(治水)를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삼았다. 기원전 2000여년, 중국 하(夏)의 우임금은 홍수에 대비해서 운하를 파고 하도를 넓혔다 한다. 사천성 성도의 2200년 전 촉나라 때 만든 수리시설, 도강언(都江堰)은 현재까지도 홍수를 방지하고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삼한시대에 만들어진 고대 수리시설, 밀양 수산제, 제천 의림지, 상주 공검지, 김제 벽골제 등이 있다. 조선시대에도 측우기 관측과 청계천에 수표(水標) 설치, 하천 준설작업 등 치수에 힘썼다. 비가 오래 계속되면 비가 그치기를 기원하는 기청제(祈晴祭)를 지냈다. 삼국시대부터 시작된 기청제는 조선왕조실록에 148건의 기록이 나타난다.

근래에는 지구온난화로 기상이변이 빈번히 일어나며 피해도 매년 거듭되고 있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급속한 경제발전으로 대규모 개발 사업이 무분별하게 이루어져 재해도 대형화 됐다. 말썽 많은 4대강 사업도 홍수대책과 수자원 이용이 목적인 우리나라 최대의 치수사업이라 하겠다.

▲월간〔한국수필) 등단 ▲한국수필작가회 이사 ▲한국문인협회가평지부장 역임 ▲수필집: ‘남쪽포구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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