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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룡문]아바이 마을

내 고향은 강원도 속초다.

어린 시절, 수복지구라는 말을 귀에 달고 살았으며 수복탑을 조상 묘보다 더 많이 보면서 자랐다. 의심의 여지없이 ‘반공은 제1의 국시(國是)’였고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고 믿으며 성장했다.

당시 다니던 국민학교(현 초등학교)에는 공설운동장이 있었다. 우리들의 놀이터였다. 규모가 다른 학교에 비해 어마어마하게 커서 학생들의 자부심 또한 대단했다. 그 때문인지 수시로 ‘~~궐기대회’가 자주 열렸다. ‘규탄’이 주 메뉴였고 당연히 그 대상은 ‘북괴(북한 괴뢰군)’였다. 그들은 ‘인간의 탈을 쓴 늑대’였고 괴뢰였으며 타도의 대상이자 무찔러야 하는, 말 그대로 주적(主敵)이었다.

규탄대회가 열리던 날, 하이라이트는 피로 장식됐다. 건장한 ‘엉아(?)’가 본부석 앞에 나와 수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단지(斷指)를 하거나 배에 칼을 그었다. 무엇이 저들을 저렇게 분노하게 하는지 알지도 못했고 알 수도 없는 나이였다. 가슴속에서, 북한이라는 악마가 있어 선량한 우리들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구나, 그들은 상종하지 못할 종자들이구나, 라는 분노가 부글부글 끓었다.

그러던 어느 날,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고야 말았다. 그 정의롭던 ‘엉아’가 행사가 끝난 뒤 본부석 뒤에서 양복 입은 아저씨에게 돈봉투를 받았던 것이다. 어린 마음에 그 장면은 배신의 아이콘이 됐다. 정의라고 믿었던 의기(義氣)도 거래되던 시절, 그때는 그랬다.

속초에는 ‘아바이 마을’이 있다.

6·25전쟁과 함께 남쪽으로 피란 내려와 고향 가까이 정착했던 함경도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피란 1세대 대부분이 생을 달리해 이제는 6월에만 잠깐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곳으로 전락했지만, ‘고향이 그리워도 못가는 신세’들의 서러움이 켜켜이 쌓인 ‘한(恨) 뭉치’ 마을이다.

남북이산가족 상봉이 무산됐다. ‘아바이 마을’ 사람들 생각에 억장(億丈)이 무너진다. 그들은 부모형제들을 60년 동안 꿈속에서만 만났다.

‘백두 혈통’이니 ‘태양 민족’이니 입으로만 자랑하지 말고 ‘인민의 마음’이나 제대로 헤아렸으면 좋겠다.

/최정용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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