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 하면 조선 정조 때의 실학자 안정복의 호유잡록(戶 雜錄) 중에 나오는 의미 있는 글이 생각난다. 용하다는 관상쟁이가 한 선비를 보고 말하기를, “그대의 관상은 귀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어 반드시 왕이 될 것이오”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선비는 그 뒤로부터 글공부는 물론 모든 일을 게을리 하며 빈둥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집도 절도 없이 생활하며 머지않아 왕의 자리에 오르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은 곤궁하여 굶어 죽게 된다, 죽음에 임하여 그 선비는 부인에게 이르기를, “짐이 장차 붕어(崩御)하게 되었으니 중전은 세자를 불러와서 유조(遺詔)를 듣도록 하시오” 했다. 웃음 뒤에 관상의 허구성과 풍자를 음미하기에 충분하다.
영화 ‘관상’이 관객수 700만을 넘기고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추석연휴 정점에 이른 열기도 식을 줄 모른다. 요즘 직장인들 대화의 간식거리로도 빠지지 않는 메뉴다. 이 영화의 인기는 탄탄한 시나리오의 구성보다는 배우들의 연기, 특히 관상학적으로 부여된 그들의 역할을 보는 재미다. 그러나 관객을 모으는 매력은 아마도 사람마다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관상이 정말 인생을 결정짓는 것인가’라는 궁금증이 더 클 듯싶다. 영화는 관객들에게 궁금증에 대한 답도 일부 전달한다. “그 사람의 관상만 보았지 시대를 보지 못했네, 파도만 보고 바람은 보지 못했지, 파도를 만드는 건 바람이건만….” 단순히 관상으로 사람의 모든 것을 평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 그것은 일부일 뿐임을 깨닫게 하는 마지막 대사가 그것이다.
영화가 흥행하자 관상에 대한 관심도 높다. 시중에는 관상성형이라는 신조어도 다시 등장했다. 과거 주로 50대 이후 말년 운을 개척하려는 중장년층에서 성행했지만 최근에는 취업을 준비하거나 이직, 승진을 계획하는 20~30대 사이에서도 성행하고 있다. 일부 성형외과에서는 이를 빌미로 수술을 노골적으로 권유하기도 한다.
관상에 의해서 운명이 결정된다는 생각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옛말에도 “관상(觀相)이 수상(手相)만 못하고 수상이 심상(心相)만 못하다”고 했다. 올바른 마음을 갖춘다면 얼굴 외형하고는 상관없이 운명은 결정되기 때문이다.
/정준성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