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함의 사전적 의미는 성명, 주소, 직업, 신분 따위를 적은 네모난 종이쪽. 흔히 처음 만난 사람에게 자신의 신상을 알리기 위해 건네준다고 되어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없이 많은 사람을 만나고 헤어진다. 길을 가면서 모임장소에서, 아니면 여행지에서 낯설거나 낯익은 사람을 만난다.
꼭 기억해야 할 사람을 기억하지 못해서 민망하기도 하고, 상대방은 반갑게 이름을 불러주는데 아무리 기억해내려 애써도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 친구를 멋쩍은 웃음으로 얼버무린 적도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뜻밖의 사람이 나의 이름을 기억해 줄 때 서먹했던 관계가 사라지고 왠지 모를 신뢰가 생기기도 하는 것을 보면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생각하게 된다.
얼마 전 문학 모임에 갔다. 몇 번 만났던 사람도 있었고 만난 적은 없지만 글로 익숙해져 초면이지만 구면인 듯 편안한 사람도 있었다. 서로 인사를 주고받으며 명함을 건넸다. 따로 본인 소개를 하지 않아도 명함을 통해서 그 사람의 직업과 직위 등 프로필을 대략을 알 수 있었고 주로 글로만 만나던 사람을 직접 만나는 즐거움 또한 컸다.
서로 명함을 주고받으며 근황을 묻고 문학에 대한 대화가 쉼 없이 이어졌다. 명함을 받을 때마다 나는 명함이 없어서 손이 부끄럽고 좀 모자란 사람인 듯한 기분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연락처를 묻는 문인에게 전화번호를 알려주고 주소를 적어주는 일이 성가시고 번거로웠다.
살면서 가끔은 명함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했었지만 뭐 그리 명함 내밀 자리가 있나 싶어 미루고 있었는데 명함을 만들지 않은 것을 처음으로 후회했다.
명함. 현대를 살아가는 기본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미용실에서, 주점에서, 방문객을 통해서 수많은 사람이 건네고 수많은 사람이 뒤돌아서서 버린다. 심지어는 받은 자리에서 탁자 밑으로 슬그머니 밀어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가방에 넣고 다니다 누군지 기억도 나지 않아 그냥 버리게 되는 명함도 많다.
가장 짜증나게 하는 것은 거리에 뿌려지는 명함들이다. 신용불량자도 주부도 학생도 누구나 가능하다며 당일 즉시 대출해준다는 명함을 비롯하여 요즘처럼 불경기에 언니 오빠의 힘이 되어주겠다며 활짝 웃는 여자가 실린 명함도 있다.
하루면 수십장씩 점포 앞에 뿌려진다. 오토바이를 탄 건장한 사내의 익숙한 손놀림으로 던져지는 명함은 매장 유리문에 튕겨지기도 하고 가게 안쪽 깊숙이 들어오기도 하는 불특정 다수를 향한 광고다.
한쪽에서는 열심히 명함을 뿌리고 미화원은 치우기에 힘겹다. 명함. 나를 버리고 나를 줍는 일이다. 나를 알리기 위함이지만 그만큼 나를 책임져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내가 구겨진 채 쓰레기통으로 들어가고 누군가에게 밟힌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센스 있는 나를 위해 꼭 필요한 자리에 꼭 알맞게 사용하는 지혜가 나를 존중하는 일임을 생각해 본다.
▲한국문인협회 회원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안견문학상 대상 ▲시집- 푸른 상처들의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