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생각
기억이 가물가물 하지만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나의 고향에는 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흙먼지를 풀풀 날리며 수많은 덤프트럭이 거대한 굉음을 울리며 새로 길을 닦고 어릴 적 놀이터인 앞바다에 커다란 시멘트 덩이와 돌무더기, 흙을 쏟아 부으며 긴 방조제를 만들기 시작했다. 어느덧 물막이 공사가 끝나자 갇힌 바닷물을 빼고 인근 작은 산을 서너 개 허물더니 갯벌을 메워 넓은 매립지를 만들어 냈다. 고향 어르신들 일부는 이제 우리도 발전의 기회를 얻었다며 좋아하신 분들과 딱히 뭐라고 할 수는 없지만 뭔가 불안해하는 목소리를 내는 분들이 계셨다. 새로 만들어진 매립지에 농사 지을 땅이 생길 것이라고 모두가 예상했는데 그 넓은 땅에는 먼저 양옥집이 자리를 잡았고 일부는 조선소가, 일부는 물고기 양식을 위해 시멘트로 물고기 집을 만드는 곳으로 황량하게 변했다.
시골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객지에서 학업을 시작했을 때 우리 집은 겨울농사를 포기하고 말았다. 여름농사인 밭과 논농사보다 훨씬 더 소득을 보장해 주었던 겨울농사인 김 양식이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소한 맛과 향, 빛깔이 좋아 전량 수출되던 김이 언젠가부터 잘 자라지 않았고, 그나마 자라던 원초가 수확할 시기가 다가오면 일찍 썩거나 김 원초보다 품질을 떨어뜨리는 이물질들이 더 많아져 김 양식을 포기해야만 했다. 어른들은 모여서 술잔이 돌고 얼큰하게 취하면 바다를 막는 일을 막지 못해 생긴 일이라면서 한탄했다.
하지만 읍에서 나서서 하는 일이라 어쩔 수 없다며 애꿎은 술 주전자만 괴롭혔다. 뒤늦게 깨달은 것이지만 과도한 매립과 태풍피해를 막기 위해 물길을 가로지른 방파제가 해류의 흐름을 막아 수온이 올라가고 육지에서 내려온 영양염류를 과도하게 부여잡고 있어서 김 양식에 치명타를 주고 말았던 것이다. 부모님과 동네 어르신들은 먹고 살길을 찾기 위해 어느덧 부둣가의 임금노동자가 되었다.
몰염치를 넘어
휴일에 밀양을 다녀왔다. 송전탑 공사가 진행되는 제4공구 현장사무소가 있는 단장면 금곡헬기장에서 송전탑 공사를 온몸으로 저지하고 계시는 주민분들과 꼬박 하루를 보냈다. 아름답고 살기 좋은 동네가 지금 정부와 한전의 폭력 앞에서 난도질당하고 있다며 울분은 토하시는 그분들의 목소리에는 비장함이 배었다. 문화제 중간에 대중가수의 노래 속에서 흘러나오는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라는 대목의 가사를 따라 부르시며 눈물을 훔치시는 한 어머님의 모습을 보면서 몰염치를 넘어서는 정부와 한전의 행태에 분노가 치민다. 정부와 한전에서는 권력과 자금을 앞세워 근거도 없고 출처도 밝히지 못하는 자료를 들이밀며 송전탑 공사의 강행 불가피성을 핏대를 세우며 홍보한다. 그들의 무기는 오직 국민이 더 많은 전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필요한 전기를 만들어 내는 방법은 매우 다양하다. 수십년 전부터 지속가능한 에너지로의 전환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원전마피아와 결탁하여 묵살했다. 태양과 풍력, 지열과 바이오는 안중에도 없었다. 또한 이미 만들고 있는 전기도 정상적인 운용을 한다면 충분히 남아돌고 국가의 운영방식과 삶의 방식을 바꾸면 지금의 원전가동은 모두 다 불필요하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 우리 사회를 온통 거짓과 폭력이 난무한 세상으로 몰아가고 있다. 밀양 송전탑 건설현장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파렴치국의 모습은 우리의 미래를 더욱 암울하게 만들고 있다.
사람은 기댈 곳이 없어지면 삶 자체가 파괴되기 쉽다. 명절이 다가오면 짧은 연휴기간이지만 온갖 수고를 마다않고 민족의 대이동이라 불릴 만큼 고향으로 발길을 옮기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 마음의 위안과 행복을 주는 소중한 기억과 추억이 그만큼 우리 인간에게 소중한 무언가를 지속적으로 공급해주는 산소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우리 모두가 영원히 돌아갈 곳은 고향이다. 나는 밀양과 고향을 지키는 어르신들을 존경하고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