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을 앞둔 지난 11월 12일, 경기도 양주에 사는 한 학생이 자살을 했다. 해마다 반복되는 이런 불상사가 올해는 더 이상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던 많은 사람들의 기대는 또 무너져 내렸다.
“제 머리가 심장을 갉아먹어 이제 더 이상 못 버티겠어요.” 지난 해 한 고등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에 부모님에게 보낸 이 메시지는 우리를 아프게 한다. 그 아이는 학교에서 수재로 인정받을만큼 성적도 좋았고, 학교폭력을 당한 것도 아닌데 단지 성적에 대한 압박 때문에 ‘죽음’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고 말았다. 모두가 ‘성적만능사회’의 비극들이다. 우리 사회가 이토록 성적 또는 성취에 혈안이 되어 있는 까닭은 높은 성취가 성공을 보장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세계 모든 나라도 우리나라와 같을까? 화려한 스펙, 넘치는 성취, 만능 지식인... 모든 나라들이 이런 사람들을 글로벌 인재로 원할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꼽는 글로벌 인재의 기준은 좀 다르다. 도구를 상호적으로 사용하는 능력, 이질적인 집단과 상호작용하는 능력, 자율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자기주도능력 등이 국제사회가 필요로 하는 핵심역량이라고 제시했다. OECD가 제시한 핵심 역량은 지적 능력이 아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주어진 도구를 활용할 줄 알고, 이질적 집단과 소통할 수 있으며, 주저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성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세계적인 관점에서의 인재는 좋은 성품으로 위기와 갈등을 지혜롭게 풀어나가는 인재라는 말이다.
성품이란 생각, 감정, 행동의 총체적인 표현이므로 성품교육은 단순히 착한 아이로 기르는 교육이 아니라, 마음의 힘을 기르는 심성강화교육이며, 논리적 사고를 넓히는 사고력 신장교육이고, 내재돼 있던 감정들을 섬세하게 표현하는 감성교육이며, 상황과 장소에 맞는 행동을 좋은 매너로 표현할 줄 아는 글로벌 시민을 양성하는 예절교육이다.
생각, 감정, 행동을 균형 있게 성장시키는 것이 훌륭한 인재라는 사실은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도 언급했다. 그는 “상황에 맞게 적절한 방식으로 행동하기를 원하며 그렇게 행동할 수 있는 일정한 성향이 곧 인간의 탁월성이다”라고 말했다. 즉 적절한 상황에서 가장 좋은 생각, 감정, 행동을 선택할 수 있는 ‘중용’을 지닌 사람이 탁월한 인재라는 의미이다.
최근 인류학자 레비 스트로스가 제시해 미래의 인재상으로 주목받는 ‘브리꼴레르’를 통해서도 조화로운 성품을 지닌 사람이 탁월한 인재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손재주꾼’으로 번역되는 브리꼴레르는 보잘것없는 재료로 쓸 만한 집 한 채를 거뜬히 지어내는 사람으로, 여러 가지의 능력을 융합시킴으로써 기존에는 생각할 수 없던 좋은 생각, 좋은 감정, 좋은 행동을 떠올려 높은 경지의 문제를 해결하는 인재다. 결론적으로 국제사회가 원하고 미래를 대비하는 탁월한 인재는 좋은 성품을 지닌 인재임을 알 수 있다.
더 이상 성적을 비관하며 목숨을 끊는 아이들과 성취 위주의 교육에서 이탈되어 방황하는 이야기를 듣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제 우리 사회 전체가 ‘성취를 강요하는 사회’가 아닌 ‘좋은 성품을 권하는 사회’, ‘좋은 성품을 가르치는 가정’이 되어야 한다.
마중지봉(麻中之蓬)은 구부러져 자라게 마련인 쑥도 삼밭에서 자라면 꼿꼿하게 자란다는 뜻이다. 이 말을 적용하면 좋은 성품을 지닌 공동체의 구성원들과 부모 사이에서 자라난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좋은 성품을 가진 사람으로 성장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젠 더 이상 아무도 귀한 목숨을 내던지는 안타까운 일이 안 생기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 그러자면 마중지붕, 곧 좋은 부모, 좋은 선생님의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