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서 이러한 구절이 나온다. 예수님이 헌금함 맞은쪽에 앉아서 무리가 어떻게 돈을 넣는지를 보고 계셨는데, 많은 돈을 넣는 부자가 있었고 또 동전 두 닢을 넣는 과부가 있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불러 놓고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그 어느 누구보다 많이 넣었다. 다들 넉넉한 가운데 얼마씩을 떼어 넣었지만, 이 과부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털어 넣었다.” 이 땅의 이치와는 다른 천국의 이치로써 가난한 이들을 위로하는 말씀이려니 했었는데, 놀랍게도 대학생 시절 한 경제학 수업에서 이와 비슷한 개념을 접할 수 있었다.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이란, 재화나 금전을 더 많이 얻으면 얻을수록 새로 얻는 것에 대한 가치가 점점 더 작아진다는 이야기이다. 즉 부자가 가진 만원과 가난한 자의 만원은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의미이다. 미술 이야기를 하는 지면에 난데없이 경제원리를 논하는 이유는 지금 한참 건축이 되고 있는 수원시립미술관을 두고 벌어지는 논란을 다루기 위해서이다.
수원에 시립미술관이 지어진다. 지역 예술인이 고대해오던 일이다. 많은 이들이 수원시립미술관 건축을 위해 애를 써왔고, 그 숙원은 2015년 10월 드디어 이루어진다. 미술관 건립에 이르기까지 여러 주체들의 공로가 있었는데, 이 중 지역 예술인과 건축비를 기부한 현대산업개발이 미술관 명칭을 두고 대립하고 있다. 300억원이라는 건축비를 기부했으니 미술관의 이름을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으로 지어야한다는 것이 기업의 입장인데, 공공 미술관 명칭에 기업의 상품 브랜드가 들어가는 것은 안 될 말이라고 지역예술인들이 반대하고 있다.
기업이 막대한 액수를 기부함으로써 실질적으로 미술관이 건축되는데 공로를 세웠다면, 지역 예술인은 행궁동에 미술관이 지어지기까지 일종의 분위기를 형성하는데 공로를 세웠다. 많은 지역 예술인들 중 대안공간 눈 이윤숙 대표와 김정집 관장은 행궁동 벽화사업과 지역 커뮤니티 활성화를 위해 10년 세월을 바쳤다. 수원화성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되고 성안 동네 전체가 개발 제한 지역으로 지정됨에 따라 동네 전체가 빠르게 슬럼화 되었고, 지역주민들은 국가로부터 보상을 받고 이곳을 떠나기만을 고대하고 있었다. 대안공간 눈 대표와 관장 부부는 아름다운 세계문화유산을 끼고 있는 이 동네가 지닌 가능성을 보았고, 이곳을 예술로 다시 일으키고자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집을 지역사회에 내어주었다. 이 집이 바로 오늘날의 대안공간 눈이다. 정작 본인들은 수원 밖에 위치한 작업실에서 생활해야했다.
이들 부부뿐만 아니라 수많은 지역 예술인이 행궁동의 예술을 위해 많은 일을 해왔다. 한 때 학생들의 폭력이 일삼아지고 말썽투성이었던 이곳은 이제 외지 사람들이 나들이 오고 젊은 부부들이 살고 싶어하는 동네로 거듭났다. 이곳에 시립미술관이 건축될 수 있었던 것은 동네의 변화된 분위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따라서 시립미술관의 건축은 세계문화유산과 더불어 진행될 일이기도 하지만 행궁동 히스토리와도 맥락을 함께 해야 할 일이다.
자금난으로 꽁꽁 얼어붙은 문화예술계에 이런 큰돈이 기부되어 미술관이 건립되는 것은 사실 보통 희소식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현대산업개발이 미술관의 정체성을 두고 무조건적인 발언권을 지녀서는 안 된다. 300억원이라는 액면가가 크다면 큰돈이지만 이상을 꿈꾸며 열심히 쌓아온 수많은 노력들보다도 더 크다고 누가 말할 수 있는가? 이상을 꿈꾸며 자신의 인생을 바치는 이들에게나 금전적으로 사회에 공헌하는 기업들에게나 기부라는 단어가 지닌 사전적 의미, 즉 그것에는 대가가 없어야 한다는 원칙은 공정하게 적용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