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사회화 과정의 산물이다. 우리가 기억하는 대부분의 것들은 사회적 관계를 통해서 형성되고 말과 글을 통해 이해된다. 그래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영유아기의 기억이 거의 없는 것이다. 단순히 뇌의 성장상태로만 볼 것이 아니라, 엄마와 아이라는 일직선적인 관계망에 그치기에 그 기억은 단선적일 수밖에 없어 기억에서 사라지기 쉬운 것이다. 이후 엄마 이외의 존재인 아빠를 비롯한 가족과의 소통, 좀 더 커서는 또래 친구들이나 이웃들과의 만남을 통해 조금씩 기억은 섬세해진다.
이러한 사회적 관계맺음을 통해 각인된 기억들은 단순히 개인의 기억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집단기억의 형태로 자리잡게 되기도 한다. 오로지 개인의 기억으로만 남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형태와 의미로 소속 집단에 유사한 방식으로 저장되는 것이다. 특히 특정 목적을 가지고 의무적으로 소속된 공동체에서의 기억은 평생을 잊지 않을 정도로 집단기억으로 남기도 한다. 유년시절 학교의 같은 반에서 벌어진 일들이나 청년시절 군대에서의 기억들은 직접 상황을 재현할 수 있을 정도로 또렷한 경우가 많다.
집단 기억은 특정한 장소를 통해서 구체적 발현하며 시간과의 결속을 통해 실재화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과거의 일을 기억하기 위해서 어느 장소였는지 그리고 어떤 시기였는지를 함께 기억했을 때 보다 선명하게 회상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집단기억은 지속성과 사회적 관계망의 확대를 통해 일종의 기억공동체로 발전하기도 한다. 우리의 머릿속에 존재하고 있는 ‘한국인’ 혹은 ‘대한민국’이라는 거대 국가와 민족에 대한 단상 역시 기억공동체라는 관계 속에서 보다 쉽게 안착된 것이다. 실제로 민족과 국가라는 거대한 틀은 어느 누구도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말 그대로 무형의 관계맺음과 이를 통해 만들어지는 소속감이다. 이는 근대시기에 권력의 효과적인 통제를 위하여 새롭게 ‘탄생한’ 것이기도 하다. 거대 집단의 독특성과 지속성의 확보를 위하여 의도적으로 만들어 놓은 사회통제 장치인 것이다.
이러한 집단 기억의 지속성을 위하여 가장 효율적인 것이 기록이다. 특히 전통시대에는 문자를 통해 기록하는 것이 지속성 확보를 위해 가장 중요한 행위였다. 만약 당대의 사실이나 현상을 정확하게 기록하지 않으면 지속성 확보가 어렵기에 쉼없이 기록하고 또 기록해야 했다. 조선시대 기록문화를 대표하는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나 각종 등록(謄錄) 등 관찬 사료 뿐만 아니라 개인일지라도 문집(文集)을 통해 지속성 확보를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해왔다. 비록 잘못된 일일지라도 나를 위해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후세를 위하여 명확하게 문제점을 짚고 상황을 설명하는 기록을 남긴 것이다.
현대의 무예단체나 수련자들에게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 기록이다. 스승이 나에게 가르쳐 준 기술에 대한 내용이나 의미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한다. 비록 개인이 쓴 것일지라도 그 변화하는 흐름을 기록하는 것은 언젠가 소중한 무예사의 한 장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요즘 전근대시기 무예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당시의 관련 사료 한줄이나 그림 한 장은 엄청난 의미를 갖는다. 바로 무예에 대한 기록이 그만큼 적기 때문이다. 당대 무예의 흐름이나 변화상 그리고 그 무예를 수련하는 사람들이 만든 기억공동체를 이해하고 설명하기가 너무나도 힘든 상황이다. 특히 거대한 무예단체를 운영하는 주체의 경우는 보다 구체적인 내용까지도 기록으로 남겨야만 보다 안정적으로 지속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은 쉼없이 변하고 무예단체들 간의 이합집산도 언제든 이뤄질 수 있다. 그 길을 뒤에 걷는 후학들에게 선배들이 어떤 노력과 고민을 했는지 기록에 남겨야 또 다른 실수를 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조작되거나 왜곡된 기록이 아닌 진실한 기록이 필요하기도 하다. 소위 지식정보화시대라는 미명하에 엄청나게 많은 기록들이 쌓여감에도 정착 제대로 된 정보는 갈수록 부족한 상황이다. 기록하지 않으면 기억할 수 없고, 기억할 수 없으면 결국 잊어버리게 된다. 단, 진실하게 기록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