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하루에도 몇 번씩 안부를 묻는 전화를 받는다. 시국이 뒤숭숭하니 혹시 전쟁이라도 나지 않겠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고 한창 더운 여름철 지나고 날씨가 선들 해지면 조상님 산소 벌초 걱정에 일손을 부탁하는 사람들도 있다. 전례에 드문 무박 4일 회의 끝에 남북 합의문을 발표하기에 이르렀고 다행스럽게 우려하던 전쟁은 일어나지 않게 되었다.
해마다 이맘때면 집 밖으로 조금만 나가도 진한 풀냄새가 풍겨온다. 길섶이나 소공원에 여름내 웃자란 풀을 예초기로 다듬는 모습도 보인다. 그럴 때면 일부러 느릿느릿 지나간다. 꽃향기도 좋지만 들풀 향기도 오래 맡아도 싫지 않다. 잘려나가는 풀은 저마다 몸에 지니고 있는 체액을 목이 잘리는 순간에 향기로 쏟아낸다. 짙은 풀 향기는 언제나 순교자를 떠올리게 하며 그들의 거룩한 삶을 음미하게 한다.
뭉게구름 사이로 파란 하늘이 드러나기 시작하면 피서객 보다 벌초를 다니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들에게서 나타나는 특징은 피서객은 연령층이 대체로 낮은 편이고 가족단위 또는 친구로 보이는 또래 집단이 대부분인데 비해 조상님 산소를 찾는 사람들은 대체로 연령층이 주로 중 노년층이고 젊은 사람들을 보기 힘들다. 또 드물게는 여자들끼리 오는 가정도 있다. 그러면 낫질도 서툴고 벌이나 그 외에 해충의 위험도 있어 벌초 대행업체를 찾기도 하고 해마다 묘소 주변의 안면 있는 사람을 찾아 부탁을 하기도 한다. 우연치 않게 우리도 농사일 하는 분들과 연결을 해 주기도 하는데 결과가 좋아 정기적으로 연락을 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해마다 그 수가 현저하게 줄어 지금은 몇 집 안 되기는 해도 말끔하게 벌초를 한 묘소를 확인하고는 파란 잔디보다 싱그러운 목소리로 인사를 한다.
몇 해를 두고 형제분 어울려 벌초를 다니던 분들이 언젠가 부터 보이지 않고 있기에 궁금하기도 했지만 그 동안 힘에 겨워하시던 말씀으로 미루어 납골묘를 조성한 것으로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들리는 말은 함께 다니시던 형제분 중 한 분이 더 거동을 할 수 없을 만큼 건강이 악화 되어 하는 수 없이 파묘를 하기에 이르렀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그러면서 뒤 따르는 말이 요즘 젊은 사람들은 벌초를 하겠다고 하지도 않을 뿐더러 더러 집안 어른 성화에 따라 오기는 해도 남자라고 해서 낫질을 하거나 예초기 작업을 할 줄 아는 사람도 별로 없어 관리가 어려운 산소는 고총이 되느니 의논 끝에 정리를 하는 추세라고 한다.
세상이 변했으니 풍속도 변하기 마련이지만 예전에는 조상을 잘 받들어야 복을 받는다고 해서 제사도 정성껏 지내고 산소를 보살피는 일에도 소홀함이 없었다. 어느 집안이나 대동금초에는 타관에 나가 살던 사람들이 주렁주렁 자라나는 자식들을 거느리고 모여들었다. 그렇게 서툴면 서툰 대로 어른들의 심부름을 하면서 문중의 일원으로 성장하고 인정을 받으며 자긍심을 키우는 기회가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힘든 일은 피하고 싶어 하고 매장보다는 화장으로 기우는 사회 분위기를 쫓다 보니 묘소 관리는 점점 어려운 일이 되고 있다. 이래저래 점점 가족 납골묘를 만들고 있는데 나중에는 그 또한 관리가 이루어질지도 의문이다. 대역 죄인에게 내려지던 부관참시는 이미 예삿일이 된 지금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는 이치를 행하는 것마저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다. 살아서나 죽어서나 이제는 단독주택 보다는 공동주택을 선호하는 취향이라 그런지는 몰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