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9.25 (목)

  • 맑음동두천 25.8℃
  • 구름조금강릉 27.3℃
  • 맑음서울 26.6℃
  • 구름많음대전 25.0℃
  • 흐림대구 22.6℃
  • 흐림울산 23.8℃
  • 구름많음광주 24.8℃
  • 흐림부산 27.2℃
  • 구름조금고창 25.2℃
  • 제주 24.5℃
  • 맑음강화 25.7℃
  • 구름많음보은 24.4℃
  • 구름많음금산 25.9℃
  • 구름많음강진군 26.3℃
  • 흐림경주시 22.1℃
  • 구름많음거제 25.3℃
기상청 제공

[창룡문]법조계 불황의 그늘

조선시대 소송은 모두 문서를 통해서만 이루어졌다. 하지만 그 문서의 형식이 상당히 복잡했다. 특히 법률은 모두가 한자로 이루어져 일반 백성들은 소송을 하려해도 엄두를 내지 못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따라서 소수의 기득권을 제외한 대부분 사람들의 권리 보호도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사정이 이러하자 문서를 대신해 주고 소송을 유도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관사 주변에서 대리소송을 업으로 하는 직업이 등장한 것이다. 당시엔 이를 고용대송(雇傭代訟)이라 했다. 물론 비공식적인 제도였으며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그리고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많이 발생하자 성종 8년인 1478년 이 제도를 금지시켰다.

제도가 부활한 것은 1903년이다. 형법대전(刑法大全)에 의해 금지가 완화된 것이다. 그리고 소송과 소장(訴狀)을 대신 제기하고 작성해 주는 직업이 다시 등장했다. 1905년 11월 8일엔 법률로 이 같은 직업을 정식 인정했다. 우리의 변호사제도는 이렇게 해서 탄생했으며 다음해 홍재기(洪在祺)씨가 1호 인가증을 받아 등록함으로써 최초의 변호사가 됐다. 시험을 통해 변호사 개업을 하도록 한 것은 16년 후인 1922년부터다.

그 뒤 변호사는 모두가 부러워하는 최고의 직업 중 하나가 됐다. 한 번 합격만 하면 평생 부와 명예, 사회적 지위가 보장되는 한국의 사시제도 덕분이었다. 이런 변호사의 위상(?)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로스쿨제도가 시행된 2009년 무렵이다.

변호사를 양성하는 전문교육기관인 로스쿨 덕에 현재 우리나라 변호사 수는 2만 명에 육박하고 개인사무소는 5천여 개나 된다. 인원이 늘다보니 변호사간 실력 편차도 매우 커졌다. 뿐만 아니라 몸값마저 뚝 떨어져 일부는 사무실 유지도 어렵다고 아우성이다. 그래서 6급 공무원, 대기업 대리 모집에 변호사가 몰리는 것도 낯설지 않다. 최근엔 흥신소 취업 변호사에 구치소 전문 집사변호사까지 생겨났다고 한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범죄 연루 변호사들마저 늘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4년 전보다 74%나 늘었다고 하니 ‘법조계 불황의 그늘’ 천하의 그들도 피해가진 못하나 보다.

/정준성 주필






배너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