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저는 숟가락과 젓가락 한 벌을 총칭하는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숟가락은 신석기 말∼청동기 초기 유적인 함북 나진 초도패총에서 출토된 골제품이다. 젓가락은 공주 무령왕릉에서 나온 것이 가장 오래됐다. 식사도구로 수저를 병용한 것은 삼국시대로 추정된다. 처음엔 주로 청동제품이었고 이어서 놋쇠ㆍ백동ㆍ은제품으로 변천 했는데 은수저는 상류층에서, 일반 서민들은 주로 놋수저를 썼다. 식사도구인 만큼 빗댄 말도 여럿 있다. 부자를 일컫는 “밥술이나 뜨는 사람”이나 죽음의 완곡한 표현인 “숟가락을 놓다”라는 말도 그 중 일부다.
서양도 은수저는 부의 상장으로 여겼다. 과거 중세 유럽인들은 나무 숟가락 사용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지주들은 달랐다. 나무보다 청결하고, 견고한 은 숟가락을 많이 사용하면서 자신들의 부를 과시했다. 특히 이들은 자신이 특권층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은수저를 늘 몸에 지니고 다니면서 신분증처럼 사용했다. 그래서 ‘은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이라는 귀족계층의 자식을 의미하는 속담도 생겨났다. 지금도 서양에서는 이 속담을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 난 자식을 가리 킬 때 사용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은수저’라는 말은 부유한 부모 덕분에 자기 자신의 노력없이 편하게 사는 젊은이를 지칭한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더 가치가 높다는 ‘금수저’란 말로 대체되더니 이와 반대인 즉, 부모로부터 물려받을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동수저’, ‘흙수저’라는 신조어도 생겨났다. 최근 인터넷에는 이 같은 수저들을 나열한 ‘계급론’과 자신이 흙수저 계층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는 기준표까지 나돌고 있다.
기준표는 대략 이렇다. 자산 20억원 가구 연 수입 2억원 이상 ‘금수저’, 자산 10억원 가구 연 수입 1억원 이상 ‘은수저’, 자산 5억원 또는 가구 연 수입 5500만원 이상일 경우 ‘동수저’ 등으로 나뉜다. ‘흙수저’는 이도저도 아닌 경우라는 것. 비록 수저에 빗대 ‘아무리 노력해도 바뀌는 게 없다’는 현실을 자조 섞인 농담으로 풀어낸 청년들의 이야기지만 ‘부의 편중’과 ‘대물림’이라는 현상이 뼈 아프게 반영되어 있어 슬프다./ 정준성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