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9.22 (월)

  • 맑음동두천 25.8℃
  • 구름조금강릉 27.3℃
  • 맑음서울 26.6℃
  • 구름많음대전 25.0℃
  • 흐림대구 22.6℃
  • 흐림울산 23.8℃
  • 구름많음광주 24.8℃
  • 흐림부산 27.2℃
  • 구름조금고창 25.2℃
  • 제주 24.5℃
  • 맑음강화 25.7℃
  • 구름많음보은 24.4℃
  • 구름많음금산 25.9℃
  • 구름많음강진군 26.3℃
  • 흐림경주시 22.1℃
  • 구름많음거제 25.3℃
기상청 제공

[이정구 칼럼]수리수리 공수리

 

‘수리수리 마수리’, 어릴 적에 친구들끼리 담장 밑에 모여서 참 많이 중얼거렸던 주문이다. 돌멩이를 앞에 놓고 떡이 되라고 빌면서 했던 그런 장난 주문이다. 본래 이 주문은 불교 경전 ‘천수경’에서 ‘입으로 지은 업을 깨끗하게 씻어내고 참된 말’로 시작하라는 것인데 그 말이 바로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이다. 기독교 성경에 빗대면 ‘내 더러운 입술을 숯불로 지져 주소서’와 유사한 뜻이라고 할 수 있다. 복을 빌고자 하면 비는 본인이 먼저 깨끗해야 그 효험이 있는 법이다. 그래서 새벽에 정수를 떠 놓고 빌 때는 먼저 목욕재계부터 했다.

그런데 친구들이 모이면 가끔 ‘수리수리 공수리’라는 말을 사용하고는 했다. 여기에서 공수리의 ‘공’은 ‘공짜’, ‘노력 없이’라는 의미이다. 무언가 해결해야 할 문제를 앞에 놓고 어떤 고민도, 어떤 물질적 보상도 해 주는 것 없이 무언가에 편승하거나 얼버무리며 은근 슬쩍 넘어가려고 할 때 ‘수리수리 공수리’라고 했다.

정치가든, 부모든, 국민과 자식들에게 무언가 공약을 해놓고 언제 그랬냐 하는 것은 다반사이다. 최근 중국에서 CEO의 자격을 말할 때 첫째, ‘약속을 지키지 말 것’이라는 조항이 있다고 한다. 이 말의 사실여부를 떠나서 이 말이 나오게 된 것은 책임자란 자신이 뱉은 말을 모두 지킬 수도 없거니와, 또 지켜서는 그 다음 일을 진척하기도 어렵고, 또 그 다음 약속을 선뜻 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선량이 되고 싶어 선거철마다 하는 후보자들의 공약들은 멋진 청사진이지만 선량이 된 이후에는 그야말로 수리수리 공수리였다. 이들은 중국에 가면 모두 대단한 CEO가 될 자격을 갖추고 있는 사람들이다. 지킬 수 없는 약속을 상대방이 요구하기 때문에 누구나 속내를 뻔히 알아차릴 수 있도록 씩 웃으면서 해주는 장난 같은 약속은 수리수리 공수리가 아니다.

주례자가 결혼식장에서 배우자를 평생 사랑하겠느냐고 물을 때 신랑 신부의 씩씩한 답이 지나치게 솔직해서 하객들은 웃는다. 오랜 기간 결혼생활을 해 오고 있는 부부들은 다 알고 있다. 지금 이 순간 신혼부부의 답은 진실하겠지만 점점 지켜지지 않을 답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결혼생활 10년이 넘은 부부가 배우자에게 사랑하느냐고 물으면 수리수리 공수리로 넘어가기 일수다. 묻는 측도 돌아올 답이 공수리일 것을 뻔히 알면서도 되새김 하듯이 묻는다. 그래도 이런 공수리들이 계속 쌓여 가면 언젠가 금슬이 더 좋아지게 될 것을 기대한다.

공수리가 코미디같이 가끔 삶을 즐겁게 해주지만 결코 공수리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 있다. 그것은 정치인들과 정부가 국민들에게 하는 공약들이다. 국가는 일개 회사와 다르며 한 가정을 꾸려가는 가장과도 다르다. 지키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에 약속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는 역설도 있지만 정부가 내놓은 시책은 지키지 못할 수도 있는 약속이 아니다. 천재지변 전쟁, 국제정세와 같이 어찌할 수 없는 상황때문에 국민의 행복을 저해할 수밖에 없는 것 빼고는 무조건 지켜야만 하는 공약이다. 정부가 차마 표현은 못하지만 내심 국민들을 향해 아프리카나 북한에서 태어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기며 살아가라는 생각을 한 치라도 갖고 있다면 국민들은 조국을 버리는 것이 적절하다.

‘박정희 시절에 경제가 얼마나 발전했는지 돌아봐라, 민주화가 되니까 노조가 극성부리고 재벌들이 사욕만 챙기니 경제가 발전할리 없다. 대한민국은 역시 독재정치를 해야 북한도 저지할 수 있고 경제가 발전한다’는 말을 필자도 노인들로부터 들어본 적 있으니, 이런 말을 들어 보고 또 이 말에 수긍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적어도 독재시절에는 공수리는 없었다는 뜻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로 인해 국민들의 인권은 유린되고 소수 권력자들과, 그에 붙어있던 기업가들의 형용할 수 없는 공수리로 부패와 축적이 하늘을 찔렀던 시절이기도 했다. 여전히 전관예우문제부터 시작해서 시민들의 눈에는 과거보다 나아진 것이 아니라 민주화로 인해 감춰진 것이 드러나는 것일 뿐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는 것은 비단 필자만의 생각일까 싶다.

 







배너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