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최동호
별 없는 캄캄한 밤
유성검처럼 광막한 어둠의 귀를 찢고 가는 부싯돌이다
- 최동호 시집 ‘얼음 얼굴’
언젠가 내 마음이 한없이 어둡고 광막했을 때, 별도 없고 달도 없었던 캄캄한 밤이었을 때가 있었다. 그때 나는 강원도 횡성 깊은 산골에 땡중이 되겠다며 홀로 살고 있는 친구에게 잠시 도망치게 되었다. 둘이서 막걸리를 한 잔하고 담배 한 대 피우러 밖으로 나왔는데 지척을 분간할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칠흑. 마루 밑에 있는 신발은커녕 코앞에 갖다 댄 내 손바닥조차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어두울 수가 있나. 지금의 내 마음이 그런가. 라이터를 켜보았으나 불은 켜지지 않았고 부싯돌의 빛 부스러기만 튀었다 사라졌다를 반복했다. 그런데 그 부싯돌 불빛이 빛으로서의 구실을 하는 것이었다. 가녀린 몇 톨의 빛 부스러기가 길을 찾아주는 것이었다. 그날 밤 나는 유성검 한 자루를 가슴에 품고 잠들 수 있었다. 시인이든 아니든 우리는 수시로 그 지독한 어둠 속을 헤맬 때가 있다. 그럴 때에는 불시에 모든 것에 대한 포기의 유혹이 다가오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 곁에는 늘 라이터 부싯돌 같은 불빛이 어디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살자. 그 불빛은 시일 수도, 어린 아이의 눈망울일 수도, 6월의 꽃잎일 수도, 아니 어쩌면 우리를 배신한 친구의 얼굴일 수도 있겠다. /김명철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