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예보는 또 빗나가고 말았다. 오후부터 내리겠다고 했던 비는 전날 저녁부터 후두둑거리며 무거운 빗방울을 떨어뜨리더니 하룻밤을 참다 끝내 새벽에 울음보를 터뜨렸다. 하는 수 없이 작은 구멍이 뚫려 통기성도 좋고 굽도 낮아 편안한 구두를 두고 전에 자주 신고 다니던 구두를 신고 집을 나섰다. 연휴 내내 서서 일을 하느라 피곤했던지 잘 맞던 구두가 어딘가 불편하게 느껴졌다. 운동을 마치고 친한 사람들과 어울려 가벼운 수다를 곁들인 티타임을 끝내고 헤어졌다. 비는 그치고 바람은 산뜻했다. 그새 발이 더 자랄 리는 없는데 돌아오는 길은 갈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아프게 조여 왔다. 한 걸음 옮기는 일이 그야말로 저승 같았다. 그렇다고 집으로 전화를 해서 다른 신을 가지고 오라고 할 수도 없고 벗어들고 맨발로 걷자니 볼썽사납겠고 하는 수 없이 사람들의 통행이 드문 골목에서 꺾어 신고 걸었다. 처음에는 조금 편해진 듯 했으나 몇 걸음 만에 허사였다. 가까스로 집에 도착하자마자 죄 없는 구두를 당장 버리기라도 할 것처럼 휙휙 되는 대로 내동댕이쳤다.
아침을 먹고 잠시 신문을 보는 동안에도 발로 신경이 간다. 양말을 벗고 살펴보니 엄지발가락이 시작되는 부분이 빨갛게 되었고 발꿈치에는 물집도 잡혀있었다. 별로 높지 않은 굽이고 까만색이라 옷이나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자주 신었는데 요즘 들어 편안한 맛에 단화나 운동화를 신었더니 구두도 발도 서로를 심하게 거부하고 있다. 흔히 하는 말로 사람 입이 간사하다는 말을 하지만 생각해 보면 간사하기는 비단 입뿐이 아니었다. 평소 자주 뵙는 어른들 중에는 지금도 대부분 폴더폰을 이용하시는 분들이 많으신 편이다. 가끔 문자나 손주들 사진을 보고 싶으셔서 열어 달라고 하시면 스마트폰에 길들여진 손가락은 또 길을 잃는다. 손가락으로 화면을 터치하던 습관으로 폴더를 열고 아무리 터치를 해도 화면은 요지부동이다. 한참을 반복하다 나중에 아차하면서 손끝으로 눌러가며 원하시는 대로 해 드린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모처럼 쉬는 날 식구들에게 선언을 했다. 오늘은 아무것도 안 하고 푹 쉬겠다고 하고 티브이 리모콘을 들고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다 엑스레이도 찍다가 방콕으로 시간을 보내다 오후 늦게 외출을 하게 되었다. 버스에 올라 아무 생각 없이 뒷자리로 가서 앉아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본다. 얼마를 갔을까… 차 안이 더워 땀이 나기 시작했다. 계속 부채질을 해도 시원하지도 않고 이번에는 속이 울렁거리기까지 한다. 차 안이 덥기도 했지만 속이 편치 않아서 진땀이 나는 것도 모르고 부채질만 했으니 속은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밖에 나갈 일이 별로 없다보니 부득이 외출할 일이 생기면 카풀을 하는 편이라 그런 불편을 모르고 살았을 뿐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몸은 차를 타는 일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살면서 잊고 지낸 일들이 하나 둘이 아닐 것이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지인들에게 철따라 안부 인사도 하면서 계절의 변화나 세시풍속에 관련된 얘기도 자주 했는데 올해는 단오를 지나면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그런 말도 한 마디 못해주고 지나간다.
발이 아픈 까닭은 구두의 배신이 아닌 발의 변화를 눈치 채지 못한 나에게 있으니 까만 구두를 다시 신발장에 반듯하게 자리를 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