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로 숨진 19세 청년의 가방에서 나온 컵라면은 우리 사회의 복합적인 불황을 보여준다. 그는 더 잘 살기위해 컵라면을 먹어야 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는 시간은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행복호르몬 도파민을 듬뿍 선물한다. 저녁에 좋은 회식이 예약되었다면 점심을 굶어도 행복하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외식을 즐기기 위해 직업을 갖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청년은 행복의 도파민을 분비할 시간이 없었다. 가방 속의 컵라면은 우리 사회가 경제도, 인권도, 행복도, 영혼도 불황임을 보여준다. 좁은 취업 관문과 높은 실업률은 모든 구직자들을 잉여인간으로 대하면서 이미 자리를 잡은 사람들의 두뇌에 ‘힘들면 나가라’는 배짱을 부리게 만든다. 일자리는 기업의 이윤이 아니라 인권과 복지의 차원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필자는 최근 고등학생들에게 공유경제에 대해 강의를 한다. 인공지능 시대 이후의 공유경제에 대한 책도 쓰고 있다. 그러면서 학생과 독자들에게 외친다. ‘스티브 잡스의 창의성은 결핍과 신념의 화학작용에서 나왔다’라고. 그런데 최근의 불황은 결핍만을 주면서 각자 아름다운 삶이 가능하다는 신념과 희망은 주지 못하고 있다. 하버드대학교 경제학과 뮬라이나탄 교수 연구팀은 결핍 상황이 기본적으로 사람들의 인지적 능력에 악영향을 준다고 발표했다. 구의역에서 외로이 스크린도어를 고치던 그 청년은 왜 다가오는 위험을 인지하지 못했을까? 그는 10분 만에 수리를 마치고 다른 곳으로 가야 했다. 동료도 없었으니 시간과 관계의 결핍으로 인지능력이 떨어져 있었다. 희망이 없는 결핍은 이성적 인지능력과 창의력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연구팀의 실험에서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에게 ‘고장난 차를 수리할 거냐’는 질문을 던지는데, 수리비를 적게 부르면 두 그룹 모두 IQ의 변화가 없지만 수리비를 높게 책정하여 질문하면 그 질문만으로 저소득층의 IQ가 질문 전에 비해 14나 떨어졌다. 질문이 자동차 수리비였어도 이런 인지적 감퇴가 생겼다. 그런데 만일 전세금과 월세 보증금을 올리거나 부모님의 병원비라거나 자기 몸이 아픈데 비싼 병원비를 두려워할 때 또는 취직을 하려면 목돈이 필요하거나 고위직 지인이 있어야 한다면 국민들의 인지능력과 IQ는 얼마나 더 떨어질 것인가! 인지능력과 창의력의 결핍은 인명피해와 국가적 손실로 이어질 것이다.
연구팀은 인도의 사탕수수 농부들을 대상으로 실물 경제의 어려움도 마찬가지로 IQ를 떨어뜨린다는 결론을 얻었다. 농부들은 수확 전후로 IQ 테스트를 실시했는데 각자의 결핍 상황은 그만큼 생각하는 능력을 제한했다. 결핍은 생각을 제한하여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한다. 조선소에서 떠날 거제도와 울산의 노동자들은 지금 결핍과 공포에 문제해결을 위한 두뇌회전이 잘 되지 않을 것이다. 결핍을 맞이한 사람들에게 희망 마저 앗아가면 그 사회는 오래된 아이디어로 잘 사는 부자들과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지 못하는 빈민층으로 양극화된다. 그래서 결핍을 맞이한 이들에게 희망을 키울 텃밭을 제공하는 것이 필요한데, 그런 경제가 바로 공정한 경제 또는 공유경제이다.
결핍계층이 희망을 품으면 그들은 모두 결핍과 신념을 가진 ‘스티브 잡스’가 된다. 공정한 경제는 아이디어를 가진 이들을 잘 키우게 된다. 즉 진짜 창조경제는 공정한 경제와 공유경제로 이루어진 빙산 위에 떠서 수면 위로 드러난 빙산의 일각과 같다. 공정경제와 공유경제와 창조경제가 모두 갖추어지면 드디어 양극화 경제가 해소되면서 ‘공생경제’가 된다. 한 인간의 욕구발달도 결핍을 벗어나야 자아실현의 단계로 가듯, 세상 모든 이들의 삶과 생태계가 잘 순환하는 공생의 경제도 발달하는 순서가 정해져 있다. 좌절과 실패에 대한 안전장치가 있는 사회의 시민들은 생각하는 능력이 퇴화되지 않아서 결핍 속에서 더 좋은 아이디어를 찾는다. 핀란드의 대기업 ‘노키아’가 망했을 때 거기서 나온 직원들은 수많은 벤처기업을 새로 만들었다. 우리나라에서 현대자동차와 삼성이 문을 닫은 이후에도 핀란드의 사례를 따를까? 한국에 공정경제와 공유경제가 더 널리 퍼져 있어야 그럴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