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을 깨물다
/이원규
살다 보면 자근자근 달빛을 깨물고 싶은 날들이 있다
밤마다 어머니는 이빨 빠진 합죽이였다
양산골 도탄재 너머 지금은 문경석탄박물관
연개소문 촬영지가 된 은성광업소
육식 공룡의 화석 같은 폐석 더미에서
버린 탄을 훔치던 수절 삼오십 년의 어머니
(…… )
어느새 나 또한 죽은 아버지 나이를 넘기며
씹을 만큼 다 씹은 뒤에
아니, 차마 마저 씹지 못하고
할 만큼 다 말한 뒤에 아니, 차마 다 못하고
그예 들어설 나의 틀니에 대해 생각하다
문득 어머니 틀니의 행방이 궁금해졌다
장례식 날 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털신이며 속옷이며 함께 불에 타다 말았을까
지금도 무덤 속 앙다문 입속에 있을까
누구는 죽은 이의 옷을 입고 사흘을 울었다는데
동짓달 열여드렛날 밤의 지리산
고향의 무덤을 향해 한 사발 녹차를 올리는
열한 번째 제삿날 밤이 되어서야 보았다
기우는 달의 한쪽을 꽉 깨물고 있는, 어머니의 틀니
- 이원규 ‘달빛을 깨물다’ / 천년의시작·2019
시인이 11년 만에 내놓은 새시집의 표제시를 다시 읽는다. 자신의 틀니를 생각하다 어머니 틀니를 떠올린다. 시인의 눈에는 평생 기우는 달의 한 쪽에서 세상 고난을 덜그럭덜그럭 씹고 계셨던 어머니의 틀니가 마침내 그 달빛을 깨물고 있는 것을 생각한다. 홀몸으로 자식을 위해 결코 쓰러지지 않으셨던 강고(强固)한 어머니, 그 틀니가 아들의 달밤을 물고 계신다. 이제 어둠이 짙은 그믐달 볼 때마다 한 움큼 베어 문 어머니 틀니 생각이 나겠다./김윤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