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울어지는 세계
/홍순영
나는 똑바로 서있다고 서 있었는데
몸이 한쪽으로 기울었다니
그게 또 조금 안심이 됩니다.
흔들리지 않으려고
난간까지 잡았는데
한발 내 딛다 기우뚱,
그게 꼭 내 탓만은 아니라니
지구가 태양 쪽으로 비스듬히 기울어 있다는데
제가 기울지 않을 재간 있나요
당신이 나를 삐딱하게 본대도
이젠 아무렇지 않을 것 같아요
- 중략 -
- 홍순영 시집 ‘오늘까지만 함께 걸어갈’ / 시인동네·2017
한 쪽 어깨가 기울은 사람을 종종 본다. 어깨가 기울은 사람을 보며 생면부지 뒷모습만 보이는 사람의 집안내력을 의심하거나 그의 운전 습관 같은 것을 짐작해 보곤 했다. 시인의 말 대로라면 내 어깨도 분명 기울었을 것이지만 난 내 어깨에 경사진 면이 있다는 걸 모른 채 살아왔다. 그야말로 모르는게 약인거다. ‘지구가 태양 쪽으로 기울어’ 우리 모두 비스듬하게 기울어진 채 살아가고 있다는 말에 실소를 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핑계거리가 있다는 건 다행스러운 일이다./최기순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