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릿느릿
/손종수
옥상에서 문득, 내려다본 골목길
바삐 걷던 할아버지 걸음 멈추시고
뒤돌아본다 이런, 너무 빨랐나?
저만치서 종종걸음 숨 가쁘던 할머니,
곁으로 다가올 때까지 기다렸다
손잡고 나란히 느릿느릿 걷는다
지켜보던 눈도 입술도 저절로
느릿느릿 보드라운 곡선 그린다
- 시집 ‘엄마 반가사유상’ / 2019
시인은 옥상으로 올라간다. 밖으로 난 녹슨 철제 계단을 한발 한발 딛는데, 발밑에서 삐걱대는 소리가 선명하다. 그는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자신의 앞으로 자욱하게 펼쳐진 풍경을 바라본다. 문득 골목길을 내려다보는데, 한 할아버지가 바쁜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고 있다. 할아버지는 한참을 저만치서 종종걸음으로 걸어오는 할머니가 곁으로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이윽고 할머니가 다가오자 “손잡고 나란히 느릿느릿 걷”기 시작한다. 서로 기대어 사는 것이 삶이라고 웅변하는 저 풍경의 소슬함이 눈물겨운데, “지켜보던 눈도 입술도 저절로 / 느릿느릿 보드라운 곡선 그”리는 골목길이 갑자기 환해진다./박성현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