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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사색]마지막 순간, 잡은 손

  • 이성원
  • 등록 2020.07.29 06:28:14
  • 인천 1면

 

새로 임명되는 이인영 통일부장관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특히 금번 추석에 이산가족상봉을 이루겠다는 그의 생각에 많이 공감한다. 과거 금강산상봉행사장에서 경험했던 이산가족의 한(限)을 필자들과 함께 나누면서 남북관계의 복원을 소망해 본다.

 

2002년 초가을, 금강산에 있는 대형 식당 온정각, 100개의 테이블에 500명 가까운 우리측 상봉단이 꿈에도 그리던 북측의 가족을 기다리고 있었다. 할머니 한분과 두 딸, 그리고 사위 두 명으로 이루어진 한 가족도 50년 전 자신들을 두고 북으로 떠난 남편이자 아버지인 노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원래 딸 셋을 두었지만 첫째 딸은 병환으로 이곳에 오지 못했다고 한다.

 

약속된 시각, 북측 이산가족을 태운 버스가 온정각 주차장 안으로 서서히 들어섰다. 버스에서 내리는 북측 할아버지들은 배급을 받은 듯 비숫하게 생긴 새 모자와 새 구두를 신고 있었고 할머니들은 깨끗한 한복을 입고 있었다. 아버지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 딸들은 입구로 들어서는 북측 할아버지들과 옆에 선 어머니의 얼굴만 번갈아 보고 있었다. 갑자기 할머니의 눈빛이 흔들리더니 손을 들어 올렸다. 바로 그이다! 할머니는 다가온 할아버지의 손을 잡으며 잠깐 알은체 하더니 이내 잡은 손을 뿌리쳤다. 그리고는 테이블 가장자리로 옮겨 앉아 창밖의 금강산만 바라보았다. 딸과 사위들은 해후의 눈물을 흘리는 것도 잠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테이블에 앉아 있는 부모만 바라보며 우두커니 서 있었다.

 

답답한 마음에 내가 끼어들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손 좀 잡아봐요! 사내대장부가 집 떠났다가 50년 만에 나타났으면 미안하단 말두 하구, 뭐라고 얘기 좀 해야지요!” 할아버지는 웃으시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할머니 손을 잡으려 했다. 그러나 할머니는 손을 뿌리치고 계속 먼 산만 바라보았다. “할머니! 얘기 좀 해 봐요. 할아버지가 새장가 들어 삐쳤어요?” “아니예요” 그리곤 아무 말이 없다.

 

할아버지가 테이블 위에 훈장들을 여러 개 펼쳐 놓았다. 북측 상봉대상자들은 자신이 잘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평생 받았던 훈장에 대해 자랑을 늘어놓고는 한다. 할아버지 역시 훈장에 대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관심이 없는 듯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그 허망하게 흐른 50년의 세월. 몇 개 남지 않은 이를 보이며 수줍게 웃는 할아버지의 모습에서 쓸쓸한 마음을 엿볼 수가 있다. 내 기분마저 씁쓸해졌다. 나는 테이블을 떠나며 할아버지에게 부탁했다. “할아버지, 내일모래 헤어지시기 전에 꼭 할머니를 안고 뽀뽀해 드리세요, 약속하죠?” 할아버지는 웃으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둘째 날 오후(삼일포). 전날의 그 할아버지 가족을 만났다. 이제는 어느 정도 서먹함이 가셨는지 할아버지가 두 딸 내외와 함께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할머니는 저쪽 나무 밑에서 혼자 턱을 괴고 앉아 일렁이는 삼일포의 잔물결을 바라보고 있었다.

 

셋째 날(작별 상봉장). 이산가족은 온정각 안팎의 테이블과 주차장 앞 벤치 등 여기저기 흩어져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주차장 앞 벤치에서 할아버지 가족을 만났다. 할아버지 옆에 않은 할머니는 여전히 말없이 먼 산만 바라보고 있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안아 드렸어요?” 내가 다가서며 인사를 건네자, 할아버지는 웃으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아니, 이제 10분만 지나면 헤어질 시간이예요.”

 

할아버지는 10분 후면 평생 다시는 가족들을 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 모양이었다. 마지막 용기를 내어 와락 할머니를 껴안으며 입술을 대려 했다. 그러나 그 무정한 조선의 여인은 팔을 내저으며 고개를 돌려 버렸다.

 

“북측 가족은 차에 승차해 주시기 바랍니다.” 안내방송이 나오자 여기저기서 울음소리가 터졌다. 울음소리는 곧 통곡으로 변했다. 할아버지도 일어서서 할머니를 애처로운 눈길로 내려다보았다. 할아버지는 딸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나서 할머니의 손을 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내밀던 손을 기어이 되돌리고 말았다. 가슴이 답답해 미칠 것만 같았다.

 

‘부릉 부릉’ 저 놈의 운전수는 왜 저리 서두르는지. 버스에 오른 할아버지가 차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이쪽을 쳐다보며 손을 흔들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내내 가만히 있던 할머니가 갑자기 버스 쪽으로 사람들을 밀치며 달려가는 게 아닌가. 할머니가 할아버지의 손을 꽉 잡은 순간, 무정하게도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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