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25일 국정농단의 주역이었던 최순실은 수의를 입고 특검조사를 받으러 가던 중 취재진을 향해 “여기는 더 이상 민주주의의 특검이 아닙니다”고 소리쳤다. 취재진을 향해 ‘민주주의’를 외치던 그녀의 모습은 자못 장엄하게까지 보였다. 그러나 이를 생방송으로 지켜보던 국민들 중 많은 이는 당당하다 못해 뻔뻔하기까지한 그녀의 모습에 울화가 치밀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때 생방송 카메라를 통해 전국에 중계된 통쾌한 한 마디가 있었다. 특검이 위치한 건물의 청소부로 일하던 한 여성이 최순실을 향해 “염병하네”라고 소리친 것이다. 이는 국정농단 사건에 분노하고 답답해하던 많은 국민들에게 사이다와 같은 외침이었을 것이다.
그녀가 최순실을 향해 외쳤던 ‘염병(染病)’은 원래 장티푸스를 일컫는 단어였다. 장티푸스는 살모넬라균에 감염되어 발생하는 전염병으로 발열과 복통이 주요 증상이다. 현대 의학이 도입되기 전 사람들은 많은 이들이 고열과 복통에 시달리며 죽어가는 것을 전염병이라 생각하고는 했다. 때문에 ‘염병’은 물들 염(染)자와 질병 병(病)자의 조합에서 알 수 있듯 차츰 전염병 그 자체를 의미하는 고유명사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항생제가 개발되면서 치사율이 20~30%에 이르던 죽음의 질병이던 장티푸스는 치사율이 1% 미만인 인류가 극복한 질병이 되었다. 게다가 환자의 대·소변을 통해 전염되는 살모넬라균의 특성 상 공중위생이 강화되면서 장티푸스는 더 이상 찾아보기조차 어렵게 되었다.
이렇듯 장티푸스가 극복되자 이를 뜻했던 ‘염병’도 다른 의미로 사용되게 되었다. 바로 최순실을 향해 외쳐졌던 “염병하네”가 그것이다. 여기서 ‘염병’은 엉뚱하거나 못된 짓을 뜻하는 비속어다. 이는 아마도 과거 장티푸스에 걸려 고열과 복통에 시달리며 죽어가던 환자의 모습을 희화하는 과정에서 단어의 뜻이 변형된 결과일 것이다. 그리고 ‘염병’에서 전염병이라는 의미가 탈락한 것은 더 이상 그것을 지칭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즉, 더 이상 장티푸스를 일컫는 단어가 필요 없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전염병과의 싸움에서 인류의 우위가 한 방에 무너져 버린 사건이 발생했다. 지금 우리 모두가 겪거나 겪을까 걱정하고 있는 ‘코로나19’다. 국제보건기구는 일찍이 이를 코비드(COVID)19로 명명하고 세계적으로 전염병이 대유행하는 상태를 일컫는 팬더믹(pandemic)을 선포했다.
특히 코로나19가 무서웠던 이유는 그간 소위 의료 선진국이라 일컬어지던 미국과 유럽의 여러 국가들이 코로나19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져갔기 때문이다. 의료 선진국들이 이러했으니 보건의료체계가 미흡한 개도국들에서의 상황은 이루 말할 수도 없을 정도로 끔찍했다. 그러나 이러한 지구적 위기 속에서 빛을 발한 나라가 있었다. 바로 대한민국이다.
한국은 발생 초기부터 국가 주도의 철저한 방역과 국민들의 헌신적인 협조를 통해 코로나19의 확산을 효과적으로 통제해 왔다. 물론 신천지나 콜센터 사건과 같은 몇몇 위기도 있었지만 이 역시 대규모 확산으로 이어지기 전 통제에 성공했다. 우리나라의 코로나19 방역은 K-방역이라 불리며 전세계가 주목하는 성공사례로 자리잡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성공신화로 기록될 것 같았던 K-방역이 다시금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다. 코로나19 대유행 시기에 정부의 방역지침을 어기며 합숙 기도회를 했다는 사랑제일교회와 카페에서 서너 명이 모여 담소를 나누는 것도 자제해달라는 정부의 호소를 비웃듯 지난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광화문에 모여 마스크 착용 등 기본적인 방역수칙도 지키지 않고 목청껏 바이러스 매개체인 침을 튀기며 구호를 외친 8월 15일 사건 때문이었다.
두 사건 이후 한국은 다시 코로나19의 전국적 확산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렸다. 겨우 한 숨 돌릴 수 있었던 방역당국은 다시 비상체계에 돌입해야 했다. 국민들은 또다시 삶을 통제해야 한다. 다시금 대한민국은 원래의 의미로써 ‘염병’에 시달리게 되었다. 하지만 신천지 사태에서 이미 성공해 본 경험이 있는 방역당국과 국민들의 힘을 믿기에 이번 사태 역시 다시금 극복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그 때가 되면 ‘염병’은 ‘코로나19’가 아닌 정부의 방역지침을 어긴 그들을 지칭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