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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 내 삶의 디테일

 

올 늦가을부터 초겨울까지 문발작가협동조합 문화사업의 하나로 역사올레에 동참할 기회가 주어졌다. 나는 강의를 하는 주요강사가 아니라 보조강사로 참여했다. 주 강사들은 자신들이 맡은 2번의 기행에만 참석하지만 보조강사는 총 12번 모두 참석할 수 있는 권한 아닌 권한이 주어졌다. 그러다 보니 주강사들과 달리 나는 참가자들과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

 

8번째쯤 역사올레가 진행되자 흘려들은 아이들 이름도 알게 되었고 참가한 사람들 나름의 성향도 파악이 되었다.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는데 역사에 대해 알고자하는 열의가 대단했다는 점이었다. 신청받을 때부터 경쟁률이 높았던 편이라고 했다. 주말 나들이하는 셈치고 무료인데다 점심을 주고 역사까지 알게 되니 일석 삼조의 행사라지만 요즘 같은 세상에선 크게 재미난 일은 아닌 것이다. 더군다나 휴일이라면 집에서 쉬고 싶은 마음일 텐데 늘어지는 마음을 추스려 아침 일찍 버스를 타러 나오는 사람들을 보면서 새삼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다양하다는 걸 알았다.

 

1주일에 두 차례씩 6주에 걸쳐 매주 나가야 했지만 주강사와 달리 보조강사는 강의를 해야한다는 부담감이 없었다. 대신 여러 잡일들을 챙겨야 했다. 사진 찍을 때 쓸 플래카드 들고 다녀야 했고 도로를 건너야 할 순간에는 좌우를 살피는 일도 내 몫이었고 체온을 재거나 마스크를 잘 쓰도록 부탁하고 코로나 설문지를 받는 일도 내가 해야할 일이었다. 매 순간 인원을 체크하는 일은 물론 점심 식사 때면 모두의 눈 앞에 빠짐없이 밥그릇이 놓였는지 살펴야 했다. 도착지에서의 화장실도 내게 묻고 추가로 밥 한 그릇을 더 먹으려 해도 내게 물었다. 주강사들을 소개하고 그분들의 강의가 마무리되면 감사의 박수 부탁하는 일도 내 몫이었는데 번거로운 듯했지만 주 강사였다면 사람들과 부딪치며 생기는 자잘한 재미를 알지 못했을 터였다.

 

한번은 무리 지어 참석한 20대 초반의 여학생들이 있었는데 유유자적 하느라 매번 다른 일행을 기다리게 만들었고 칠중성이라는 곳을 찾았을 때는 학생들이 산에서 길을 잃어 산을 오르내리게 만들기도 했다. 또 한번은 초등학교 3학년 여자아이가 올레 막바지 무렵에 자신이 만든 올레답사 기록이라며 가져와 보여주었다. 아이의 정성이 담긴 기록이니 의무적으로라도 칭찬해줄 만한 일이었다. 그런데 기록집을 보다가 적잖이 놀랐다. 그 동안 다녀온 장소들의 정보에 대한 기록은 물론 사진까지 첨부했고 자신의 생각까지 꼼꼼하게 적어두었다. 처음엔 역사올레를 나왔으니 자신의 아이가 뭐든 배우기를 바란 어른의 욕심이 빚어낸 일일 것이라 여겼다. 그런데 어른의 욕심 때문에 만들었다고 여기기에는 그 정성이 어른의 바램을 훌쩍 넘어서는 수준이었다. 이렇게 각자의 우주를 가진 사람들을 만났고 수십의 캐릭터를 알게 되었다.

 

아이들에게 뭐라도 하나 더 알려주고 싶어 아이들을 재촉하는 부모, 어른이 뭐라 하든 말든 사방을 뛰어다니며 놀기에 바쁜 아이들, 쉴새없이 셀카를 찍는 셀카족들, 매번 음료수를 가져와 건네주는 아이 엄마, 궁금한 게 많아 끝없이 강사에게 질문을 하는 초등학생, 어딜 가나 늘 늦게 차에 오르는 청춘들, 깍듯하게 인사를 하는 노부부 내외……. 직업의 특성상 밖으로 잘 나돌지 않는 편인데 이 분들을 만난 6주의 기간 동안 내 삶의 디테일은 굉장히 풍부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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