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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수의 관규추지(管窺錐指))] 아버지를 이겨라

 

 

1. 승어부(勝於父)란 말이 있다. 자식이 가문을 빛냈을 때 쓰는 말이다. 그 집 자식이 승어부했다는 말은 큰 칭찬이어서, 듣는 이마다 즐거워했다. 아버지는 무섭고 엄한 존재다. 아버지는 금지하고 벌주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자기 욕망을 억누르고 타인과 공존하는 덕성을 사회성이라 하면, 아버지는 바로 사회성을 길러주는 사람이다.

 

그러기 위해 아버지는 수시로 아이들에게 하지 말라고 말한다.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하고, 공중도덕을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어기면 제재를 가하는 사람도 아버지다. 아이에게 아버지란 압제자이며 훈육자이며 벌을 내리는 사람이다. 그것은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변하지 않는 인류의 전통이다. 무서운 아버지, 그를 이겨야만 하는 아들이 겪는 갈등과 고통은 대를 거듭해서 전해질 끝나지 않는 이야깃거리다.

 

2. 아버지 이기기가 가끔 엉뚱한 결론을 내기도 한다. 뛰어난 소설가였지만, 극우의 나팔수란 평가도 듣고 있는 이문열이 좋은 예이다. 그의 아버지 이원철은 서울대 농대 학장을 지낸 인텔리였지만 가족을 버리고 월북했다. 정보과 형사들이 노다지 찾아와 남편 행방을 대라며 이문열 어머니를 두들겨 패서 야반도주하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그런 고난을 겪던 이문열이 ‘사람의 아들’로 문명을 얻고, 소설가로 승승장구한다. 인세로만 백억 대를 벌었다니 대단한 성공이 아닐 수 없다. 뒤에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장을 맡았고, 악취 가득한 말로 진보를 모욕했다. 진보진영 시민들이 그의 책을 불사르기도 했다.

 

그가 보수의 나팔수가 된 것을 신참자 콤플렉스로 풀 수 있다. 신참자(novus homo)란 말은 시저가 집정관을 맡을 당시 새로 원로원 의원으로 임명된 사람을 가리킨다. 시저는 로마를 제정국가로 만들기 위해 원로원 의원을 세 배로 늘렸다. 그리고 그 인원을 자기가 점령했던 갈리아와 브리타니아 등의 속주 출신 부족장이나 귀족 자제들로 채웠다. 놀랍게도 이 신참자들은 일치단결해서 로마의 이익을 위해 헌신했다.

 

로마의 이익을 위해 헌신했던 신참자들처럼, 이문열은 자기에게 부와 명예를 보장한 보수의 영광을 위해 노력했다. 그 근저에는 자기를 버리고 달아난 아버지에 대한 미움과 원망이 자리하고 있었을 것이다. 나중에 황석영을 통해 이원철이 결국 숙청당하고 어렵게 목숨을 부지하다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는, 가족을 버리고 갔으면 잘이나 살 것이지 하면서 목 놓아 울었다니 가긍한 마음이 든다. 아버지를 이기는 게 그와 반대 방향으로 가야만 하는 것은 아닐 텐데, 시대가 그만 그에게 가혹한 선택을 강요한 게 아닌가.

 

3. 지금은 아파트나 연립주택 등 공동주택에 거주하는 비율은 77.2%에 달한다. 하지만 불과 30년 전인 1990년만 해도 단독주택과 아파트 비율은 3:1로 주택이 더 많았다. 불과 한 세대 만에 주거 형태가 획기적으로 바뀐 것인데, 단독주택에서 공동주택으로 주거형태가 바뀌면서 사라진 공간이 있다. 바로 아버지를 위한 사랑방 공간이 집에서 사라졌다.

 

아버지를 위한 공간이 사라진 까닭은 우리가 가부장제가 아닌 민주적인 가족제도에서 살아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무섭고 두려운 아버지란 본질까지 뒤바뀔 것 같지는 않지만, 보다 성숙한 가족관계를 통해 우아하고 아름다운 방식의 ‘아버지 이기기’가 승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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