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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의 언제나, 영화처럼] 소유냐 삶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⑪ 노매드랜드 - 클로이 자오

 

부동산은 인간의 정신을 좀먹는다. 우연찮게도, 부동산 문제가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을 비뚤어지게 만들고 잘못된 선택을 하게 만들고 있는 ‘지금 이 시기’에, 영화 ‘노매드랜드’가 개봉을 앞두고 있어 눈길을 끈다. ‘노매드랜드’는 부동산 사태가 시발(始發)이 돼 삶의 모든 것이 뒤바뀐 사람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좁게는 주인공 여성 펀(프랜시스 맥도먼드)의 이야기다.

 

펀의 일상은, 이름과 달리, 매우 유쾌스럽지 못하다. 그녀는 2010년을 전후해 집과 마을을 잃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덮치면서 그녀가 살던 도시 엠파이어 타운 역시, 이름과 달리, 제국의 빛을 상실했다. 완전히 유령도시가 됐다. 우편번호 자체가 없어졌다. 그 와중에 남편도 죽었다. 그녀는 갈 곳이 없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을 정리하고 RV 한 대를 마련해 길을 떠난다. 길에서 먹고 자는 노매드의 삶을 선택한다. 펀은 슈퍼에서 물건을 사다가 만난 아이에게 말한다. 아이는 너무 힘들면(집이 없으면) 자신의 엄마 집에 와 있으라고 한다.

 

“집이 없는 것과 거주지가 없는 것은 다르단다 얘야.”(I’m just houseless, not homeless.)

직역하면 하우스는 없지만 홈은 있다는 것이어서 자막 번역이 쉽지가 않았을 대목이다. 특히 ‘집=주택’에 대한 소유의 의미를 드러내는 부분이어서 흥미롭고 의미심장하다. 펀에게 있어 홈은 하우스에 비해 보다 자유로운 개념이다. 이동하는 삶 속에서 잠시 거처하는 곳이면 모두 ‘집’일 수 있다. 하우스는 물화(物化)된 것이다. 그건 팔고 사는 용도의 개념이다.

 

 

어쨌든 펀의 이 말은 집을 가지려 애쓰는 것과 그 욕망을 갖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은 다르다는 의미로 들린다. 펀은 이제 자본주의가 조장한 극단적인 욕망에서 벗어나려 한다. 그녀가 선택한 것은 무소유의 삶이며 ‘의지와 신념을 가지고’ 떠도는 삶이다. 자유로우려면 소유를 없애야 한다. 꼭 에히리 프롬의 얘기가 아니더라도 ‘소유냐 삶이냐’의 기준을 가리는 것은 결국 인간의 의지인 것이다.

 

21세기가 되고 산업과 네트워크가 첨단화 하면서 미래학자들은 21세기형 노매드들의 출현을 예고했었다. 그러나 신종 노매드는 그렇게 한가한 개념의 사람들이 아니다. 펀처럼 ‘하우스’없이 들판과 길을 ‘홈’으로 삼아 여기저기를 떠돌아 다니는 사람들이다. 21세기 노매드족(族)은 자본주의 사회가 극단적으로 밀어낸 사람들이다.

 

그들은 아마존 물류회사 같은 데서 계절노동을 하기도 하고 공룡 테마파크의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기도 한다. 식당 일은 기본이다. 그들은 노동을 찾아, 최소한의 삶을 찾아 이곳저곳을 떠돈다. 이러한 삶이야말로 21세기 노매드이다. 온라인 네트워크를 자유롭게 오가며 금융권 비즈니스를 하는 잘 빼입은 현대인들을 의미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건 그냥 지배자들의 삶일 뿐이다.

 

 

펀이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대체로 그러한 생각들을 지닌다. 린다 메이와 샬린 스완키, 데이빗(데이빗 스트라탄) 등등은 되도록이면 적게 갖거나 아예 갖지 않으려는 삶을 택한다. 이들은 스스로들을 캠퍼 포스(Camper Force), 곧 야영객 부대라고 부른다. 포스의 리더 격인 남자는 펀에게 말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정들었던 마을을 떠나온다는 것은 슬픈 일이죠. 그러나 미안합니다. 당신에게 (인생과 세상에 대한) 답을 줄 수가 없군요. 내가 어떻게 그러겠어요. 다만 여기서 우리들과 이렇게 지내면서 답을 찾아 가시길 바랍니다. 저는 아들을 잃었죠. 저 역시 답을 찾고 있습니다.”

 

쉽게 답을 주려는 사람은 대체로 사기꾼들이다. 허경영이다. 좋은 사람은 상대로 하여금 상대 스스로가 인생의 답을 찾게 배려해주는 사람들이다. 기독교의 예수이며 이슬람의 알라이다. 불교의 부처이다. 기도하는 (것과 같은 유목의) 삶 속에서 사람들은 내면의 여행을 하게 되고,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된다. 소유에서 해방되(려고 노력하면, 부동산 문제에 매달리지 않으)면 인생의 답이 보인다. 영화 ‘노매드랜드’는 그런 얘기를 하고 있는 작품이다.

 

중국계 미국인 감독 클로이 자오는 이 영화를 보기 드물게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에 입각해서 찍었다. 영화의 이야기란, 구체적인 사회적 사건과 사실에 입각해서 구축되고 표현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배우의 연기도 극중 인물과 완전히 부합돼야 한다. 결국 메소드 연기의 결정판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하는데 이렇게 되려면 방법이 없다. 극 중 역할을 맡은 배우는 극 중의 환경과 똑같이 지내야 한다. 근데 배우 전부가 그러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이 영화는 전문 연기자를 딱 두 사람만 뽑았다. 펀 역의 프랜시스 맥도먼드, 그리고 그녀와 식당 일 등등 온갖 잡일을 하며 최저 생계비(RV 기름값 등등)를 버는 남사친 데이빗 역의 데이빗 스트라탄 뿐이다. 나머지 다른 사람들 곧, 린다 메이와 샬럿 스완키 등 모두는 실제 인물이다. 프랜시스 맥도먼드와 데이빗 스트라탄은 이 영화를 찍기 훨씬 전부터 이들 캠퍼 포스들과 생활을 같이 했다. 그들이 되려고 노력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들이 됐다.

 

이러기 위해서는 감독의 카메라는 대체로 ‘기다려야 한다.’ 모든 배우 아닌 배우들이 생활의 연기를 할 수 있도록 카메라가 별도의 지시로 움직이기 보다는 기다리고, 응시하고, 정지해 있어야 한다. 그 카메라 워킹의 예술이 이 영화를, 지독한 삶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아름답게 만들었다. 그 같은 ‘불균형의 균형’이 영화 ‘노매드랜드’의 최대 미덕 가운데 하나이다. 영화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야 하지만 종종 영화다워야 한다.

 

지금의 미국사회, 한국사회에 대한 정치경제학적 메시지가 강한 작품이다. 그래서 흥행이 잘 안될 것이다. 정치적으로 올바른 영화는 보수화된 20대 젊은 층들에게 ‘꼰대’ 소리를 듣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세상이 이상하게 간다. 한편으로 사회의 그 이상한 흐름을 알게 해 주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