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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수의 관규추지(管窺錐指))] 그들의 분노, 우리의 선택

 

 

 

1. 운동화 사주세요

오래전 일이다.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가난했던 옛날이야기가 나왔다. 우리 집은 여섯이나 되는 자식을 가르치느라 늘 긴축 모드였다. 그러니 언제나 검정 고무신이었다. 크게 불편한 줄 몰랐는데, 사학년에 올라가자 운동화를 신고 다니는 아이들이 나타났다. 고무신은 공을 찰 때 불편했다. 찰 때마다 신발이 벗겨졌다. 늦가을 어느 날, 운동화가 너무 갖고 싶었던 나는 면도칼로 뒤축을 동그랗게 오려내고, 오후 내내 바닥에 갈았다. 드디어 닳아서 구멍 난 것처럼 보이자, 의기양양하게 운동화 사주세요. 했는데, 어른 눈으로 그걸 모르겠는가. 집안 망해 먹을 놈으로 찍혀 저녁도 못 얻어먹고 종아리엔 불이 났다. 다음 날 주린 배를 안고 일어나자, 머리맡에 운동화가 있었다. 아까워서 신지도 못하고 며칠 동안 안고 다녔다.

 

말을 끝내자 후배 몇이 핀잔을 줬다. 에이~ 무슨 6.25 때 이야기를 하고 그래요. 말도 안 돼. 나는 그때 꽤 놀랐다. 불과 몇 년 상관인 후배들인데, 그 일이 믿을 수 없는 옛날이야기라니. 명색이 의료계열이라고 한의대 후배들 집이 꽤 유복했던 걸까. 아무튼 나에겐 실재했던 과거가 누구에겐 믿을 수 없는 구라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운동화가 생겨서 정말 기쁘고 행복했다. 하지만 내가 운동화를 신고 돌아다닐 때, 다른 친구들은 행복했을까. 친구들이 전부 고무신을 신었다면, 운동화가 필요하다고 뒤축을 잘라냈을까. 행복해지는 법은 잘 모르겠지만, 불행해지는 법은 분명히 안다. 불행은 늘 비교에서 싹튼다.

 

2. 분노는 어디로 가는가

1950년대 중반 영국 연극계를 중심으로 ‘성난 젊은이들’이란 움직임이 나타난다. 그들은 고상하나 고답적인 셰익스피어 극을 거부하고, 거칠고 험한 노동계급 언어로 청년들이 맞닥뜨린 가난과 차별을 고발했다. 그 운동은 결국 다음 세대까지 이어져 68혁명의 마중물이 되었다. 2차대전이란 비극을 겪었지만, 주류세력은 반성하지 않았다. 그들은 여전히 낡은 이념에 사로잡혀 있었고, 양성평등이나 사회적 약자란 개념도 알려들지 않았다. 제삼세계에 대한 제국주의 침략은 끝없이 이어졌다. 그런 20세기 서양의 앙시앙 레짐을 무너뜨린 것은 결국 젊은이들의 분노였다. 그들의 분노는 분명히 사회 진보를 이끌었다.

 

지난 보궐선거에서 확인한 대로, 우리 젊은이들도 분노하고 있다. 선배인 우리는 몹시 당혹스럽다. 그들이 왜 분노하는지, 어떻게 그들을 달랠 수 있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현실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586세대가 비록 군사독재정권과 맞서 싸우기는 했지만, 기성세대의 관습과 문법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운동화를 신고 있는데, 청년들은 신었던 운동화를 빼앗기고 고무신을 신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화가 나지 않을 리가 없다. 그들의 분노가 어떤 결과를 빚을지 나는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가 과거 독재정권에 분노했던 것과 똑같이 사회적 양극화와 불평등, 세대 갈등과 남녀 갈등에 분노하지 않으면, 청년의 분노는 테르미도르의 반동처럼 자신들과 이 공동체와 역사를 모두 불사르는 쪽으로 방향을 틀지도 모른다. 나는 그것이 가장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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