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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 인간에 대한 예의 1

 

“엄마, 나 좀 죽여줘.”

혀를 깨물어 붉은 빛을 띠는 A의 입에서 겨우 나온 말이었다. 엄마는 그런 딸을 잡고 오열했다. “같이 죽자. 같이 죽자.” 엄마의 말을 들은 A의 얼굴에 굵은 눈물이 흘렀다. 그러나 눈물을 닦을 수가 없었다. A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눈을 떠보니 병원 응급실이었고 목 이하로는 움직일 수 없는 전신마비자가 돼 있었다.

 

보고 들을 수 있었고 혀를 움직여 말할 수 있었지만 하지 못하는 것이 더 많았다. 손으로 밥을 떠서 먹을 수 없었다. 일어설 수 없었고 앉지도 걷지도 못했다. 배설도 자신의 힘으로 조절할 수 없었다. 머리를 돌리지도 못했고 몸을 뒤집지도 못했다. 자신의 부끄러운 부분을 가리지도 못했다. 하지만 냄새가 맡아졌다. 온몸에서 올라오는 역겨운 땀 냄새와 똥 냄새, 등에 생긴 욕창 썩는 냄새를 고스란히 맡아야 했다. 무엇보다 괴로운 것은 머리였다. 가려운 머리에서 푹푹 쉰 냄새가 났고 머리에 왕소금만한 비듬이 생겨 베개에 떨어졌고 이가 기어 다니며 머리를 깨무는 감각이 또렷했다.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A는 죽을 수 있는 방법도 없었다. 기껏 한다는 것이 혀를 깨무는 것이었지만 죽지는 못했다.

 

“시간은행이요?”

목욕을 시켜주고 머리를 감겨주는 할머니가 시간은행에 대해 말했다. “그려. 내가 이렇게 1시간 노동하고 다른 사람한테 떳떳하게 1시간 배우는 것이여.” 할머니는 나에게 1시간 봉사하고 그 시간을 은행에 적립했다가 다른 선생에게서 1시간 그림을 배운다고 하셨다. 할머니는 그런 자신을 자랑스러워했다. 봉사가 아니고 떳떳하게 노동하고 당당하게 서로 시간을 바꾼다고 했다.

‘봉사가 아니고 노동이라….’

 

이 말이 A의 가슴을 후볐다. A는 자신을 기생충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자신은 오직 누군가로부터 봉사를 받아야만 살아가는 인생이었다.

 

A는 시간은행에 가입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 노인들에게 하루에 한 시간씩 전화로 이야기하는 일이었다. A는 노인에게 하루 두 페이지씩 ‘레미제라블’을 읽어 드렸다. 그리고 노인의 살아온 이야기를 들어줬다. 수박서리 하던 이야기, 겨울에 무를 깎아 먹던 이야기, 영감이 바람피운 이야기, 망해서 먼 동네로 야반도주 하던 이야기…. 노인들은 A에게 자질구레한 인생사를 이야기했고 A는 그 이야기를 잘 기억했다가 다음 주에 다음 이야기를 물어보았다. 노인들은 A가 전화해오는 일주일의 하루를 기다렸다. A는 노인들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여 일주일을 기다리게 되었다.

 

“아 좀 잘 감겨요. 대충 하지 말고요.”

A가 봉사 나온 아줌마에게 샴푸 거품을 잘 헹구지 않는다고 역정을 냈다. 아줌마는 빙그레 웃기만 한다. 오늘 A는 시간은행에 적립돼 있는 자신의 시간 중 1시간을 봉사 나온 아줌마와 교환하는 중이다. 당당하다. A는 적선을 받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정당한 노동의 교환이다. ‘의사의 1시간과 알바생의 1시간은 동일한 가치를 갖는다.’ ‘세상의 모든 가치는 인간의 노동에서 나온다.’ A는 시간은행을 통하여 배웠다.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은 없다.’ 장애인 복지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인간에 대한 예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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