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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의 언제나, 영화처럼] 가해자와 피해자가 맞물리는 세상

㉒ 발신제한 - 김창주

 

2016년 한국에서 단 2000명의 관객이 들었던 스페인 영화 ‘레트리뷰션 : 응징의 날’이 한국영화 ‘발신제한’으로 리메이크 돼 흥행에서 비상(飛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서스펜스가 상당하고 주연인 조우진을 비롯해 그를 떠받치는 조연들, 곧 지창욱, 진경, 류승수, 김지호의 무게감이 남달라 총합이 좋은 작품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건 이 영화를 연출한 김창주 감독이 편집감독 출신이라는 점, 스태프, 배우들과 대체로 동류 의식이 강했을 것이라는 점 등등이 왜 이 영화에 중견, 중량급 인물들이 비교적 작은 역할에도 대거 참여했는 가를 짐작케 한다. 영화도 정치가 잘 돼야, 프로덕션이 잘 굴러가야 결과물이 좋은 법이다. ‘발신제한’은 그런 느낌을 준다.

 

 

‘발신제한’은 아닌 밤중에 홍두깨로, 테러 위협에 직면한 한 남자(조우진)의 하루를 다룬다. 남자는 중견 은행의 PB 센터장이고 다루는 액수만 수백억 원대인 인물이다. 자신이 보유한 현금도 좀 있고, 당연히 자기 집이 있는 데다 와이프와는 그럭저럭, 딸 아들과도 그런대로 살고 있으며, 막 새로 출시된 수천만 원짜리 SUV로 출퇴근을 하는, 꽤 성공한 은행 간부다.

 

그런데 오늘, 학교에 가는 아이 둘을 데리고 출근을 하는 그에게 전화가 걸려 온다. 그리고 자신의 운전석 시트 밑에 수제 폭탄이 설치돼 있다는 소리를 듣는다. 처음엔 보이스 피싱이나 장난 전화 쯤으로 생각했지만 자신의 부하 직원(전석호) 부부가 눈앞에서 폭사하는 걸 보고는 온 몸에 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급기야 협박범의 요구에 따라 현금 9억 원을 찾아 나오던 그의 아내(김지호)도 주변에서 폭탄이 터져 거의 죽다 살아난다. 협박범은 낄낄대며 ‘그거 참 아깝다’고 남자를 놀린다. 이제 남자는 자신이 사는 것은 둘째치고 같이 차를 타고 가는 아이 둘을 살려내야 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다.

 

 

이 사건을 맡게 된 경찰서장(류승수)은 아이들의 아빠가 뭔지 모를 이유로 자작극을 벌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폭탄 제거반의 여자 반장(진경)은 이 남자가 진범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채지만 그렇다고 뾰족한 방법을 찾아내지는 못한다. 범인에 의해 조종되는 남자와 그를 추적하는 경찰간의 쫓고 쫓기는 삼각 관계의 추격전이 부산의 시내를 질주한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남자, 자신에게 왜 이런 폭탄 테러가 가해지는 지 도저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는 말이냐’의 심정인 셈이다. 그게 이 영화의 전반부를 장식하는 의문이자 미스테리다.

 

영화 곳곳에 힌트가 숨겨져 있기는 하다. 예컨대 남자의 부인이 폭파 현장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것을 보고 범인이 그것 참 아깝다고 한 것도 다 이유가 있다. 사실 모든 실마리는 이 작품의 스페인 원전 영화 제목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런데 그 핵심의 느낌을 눈치채는 순간 영화는 재미가 없어질 수 있다. 그러니 그걸 모르는 척, 감독이 제공하는 롤러코스터의 추적 씬을 그냥 따라가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영화란 어떤 때는 그냥 즐기는 것이다. 감독이 다 알아서 답을 풀어줄 테니 말이다. 주인공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을 해피엔딩으로 인도할 것이기도 하다. 아, 이 영화의 원제를 다시 한 번 얘기하자면 레트리뷰션, 곧 보복 혹은 응징이라는 뜻이다. 영화의 전체 얼개가 그려지시는가?

 

영화 ‘발신제한’은 현대인들이 무의식적으로 자행하는, 적어도 그렇게까지는 아니라 해도, 조직의 논리상 어쩔 수 없었다고 자위(自爲)하면서 벌이는 행동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그것도 힘없는 무산자(無産者)들에게 어떤 비극을 가져 오게 하는 지를 얘기하는 작품이다.

 

현대인들 상당수는 조직원으로 산다. 부품 같은 존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욕망을 갖는다. 조각 부스러기로서의 부품 역할을 충실히 하는 과정에서 자신은 계급적으로 올라선다. 같은 노동자였다가 좀 더 나은 노동자, 혹은 귀족 노동자가 된다.

 

 

 

대개 화이트 컬러 노동자로서 아직 블루 컬러 노동자인 사람들을 생각하며, 그것 참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경쟁에서 뒤처진 것 뿐이라고, 자신이 이 혹독한 자본주의에서 살아 내려면, 그래서 아내와 아이들을 먹여 살리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그러다 결국 자신에게, 자신 뿐 아니라 사랑하는 가족에게 모든 업보의 화살이 돌아가게 만든다.

 

자본주의는 가해자와 피해자를 헷갈리게 한다. 두 사람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돼 있다. 일정 구간에서 보면 이 사람이 가해자이고 저 사람이 피해자인 것처럼 보이지만 다른 구간에서 보면 이 사람은 원래 피해자였고 저 사람이 원래 가해자였다. 그 경계의 모호함에서 인간과 인간은 서로 처절한 살육전을 벌이며 살아간다. 원래는 이렇게까지 되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영화 ‘발신제한’은 가해와 피해의 관계가 전도(轉倒)돼 있는 자본주의 사회의 일그러진 민낯을 그려낸다. 그래서인지 영화는 해피엔딩이긴 해도 깨달음의 슬픈 미소 같은 느낌을 준다.

 

추격 씬을 잘 찍었다. 이제 한국영화의 촬영 노하우가 이 정도 수준까지는 왔다. 할리우드가 1992년에 만든 피어스 브로스넌 주연의 ‘라이브 와이어’,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1994년작 ‘스피드’에 대한 레퍼런스도 느껴진다. 많이 따라 붙었다. 특히 헬기의 등장이 눈부시다. 부산에서 올 로케이션을 했는데 부산이라는 공간이 영화 촬영에 최적화 된 도시라는 점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한국의 상업영화가 기술적으로 깔끔한 수준, 웰 메이드(well-made)라는 것을 척척 보여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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