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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의 언제나, 영화처럼] 이녁 소랑햄시다, 사랑이 답이다

㉓ 빛나는 순간 - 소준문

 

제주도 말로 ‘당신을 사랑합니다’는 무엇일까. 제주 해녀의 이야기를 그린 소준문 감독의 ‘빛나는 순간’은 영화 내내 가르쳐 주지 않다가 맨 끝에 가서야 얘기해 준다.

 

그래서 ‘아하, 이 영화의 러브 스토리는 그리 해피 엔딩이지 않겠구나’하는 예감을 갖게 한다. 그런데 결국은 가르쳐 주긴 한다. 당신을 사랑합니다는 제주말로 ‘이녁 소랑햄시다’이다. 완전히 다른 말이다. 제주와 ‘육지것’들은 소통하기 힘든 언어를 지녔음을 보여 준다.

 

 

어쨌든 감독의 그런 장치, 곧 당신을 사랑합니다의 서울말과 제주말의 구현에 시간 차를 두는 것이야말로 이 영화의 주된 기조(基調)이다. 그 점을 알아채는 사람은 비교적 영화의 감이 좋은 사람들이다. 영화를 좀 봤구나 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은 이 영화가 너무 예측 가능한 방향으로 간다고 느낄 수 있겠다. 그래서 다소 고답적이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빛나는 순간’은 그렇게 기성의 질서에 머무는 작품이 아니다. 무엇보다 제주 해녀의 얘기로 시작해서 찬란한 러브 스토리를 이끌어 낸다. 그것도 아주아주, 좀 더 강조해서 ‘아주아주아주아주’ 파격적인 사랑 이야기를. 그래서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한다.

 

영화는 70살이 다 된 제주 해녀와 그녀의 휴먼다큐를 찍겠다며 제주에 온 프로덕션 PD의 연애담을 그린다. 그런데 이 남자 30대이다. 둘은 단순하게 마음을 주고받는 그런 사이가 아니다. 이 둘은 살짝살짝 육욕을 느낀다. 스치고 만지고, 안아서 숨을 나누는 그런 사이가 되고 싶어 한다. 그러니 결코 범례의 관계는 아니다. 이 연인의 사랑이 성공할 수 있을까. 앞서 얘기한 대로 이 영화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맨 나중에 가르쳐 준다. 그러니 결론은 이미 정해진 상태다. 근데 그런 것까지 얘기하면 스포일러가 될까?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하면 이 영화는 도대체, 사랑이 성공한다는 게 과연 무엇일까라는 생각과 의문, 성찰을 갖게 한다. 사랑은 서로가 항상 붙어 있고, 나 외에 다른 사람과는 손끝도 스치면 안되는 것이며 무엇보다 각자 바다 건너 떨어져 있으면 안되는 것인가. 현실에서는 멀어졌어도 마음속에, 각자의 가슴속에, ‘불길의 낙인(烙印)’이 남았다면 그 사랑은 그래도 성공한 것이 아닐까.

 

흥미로운 것은 영화 속 남녀의 나이 차이만큼 그 역할을 연기한 고두심과 지현우의 나이 차이도 엇비슷하다는 것이다. 고두심은 1951년생, 지현우는 1984년생이다. 33살 차이의 남녀 배우가 키스신을 벌인다. 아차, 이건 확실한 스포일러다. 하지만 마음의 준비를 해 두라는 의미에서 밝히는 것인 만큼 너무 노여워하지 마시기들 바란다.

 

‘빛나는 순간’을 보고 있으면 아네트 베닝과 제이미 벨이 나왔던 ‘필름 스타 인 리버풀’이 생각난다. 원제는 ‘필름 스타는 리버풀에서 죽지 않는다(Film Stars don’t die in Liverpool)’이다. 이 영화도 70살 전후의 여성과 20대 후반의 남자가 사랑에 빠진다. ‘빛나는 순간’보다 더 과감한데 둘은 영화에서 키스 신, 베드 신, 섹스 신을 마다하지 않는다. 아네트 베닝은 1958년생, 제이미 벨은 1986년생. 28살의 나이 차이다. 사랑을 하는 데 있어 세상의 이러저러한 장벽이 다 무너지긴 했다.

 

 

그럼에도 연상 여인의 나이가 거의 서른 살 차이가 나는 문제는 아직 극복되지 않았다. ‘빛나는 순간’에서도 주인공 경훈(지현우)에게 선배라는 사람(김중기)은 둘의 관계에 대해 듣자마자 안된다는 소리부터 한다. 왜 안되냐는 경훈의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한다. “역겨워!”

 

따라서, 영화 ‘빛나는 순간’은 단순한 파격의 멜로 드라마가 아닌, 이 사회의 금기를 넘어서려는 또 한 번의 영화적 노력이자 시도처럼 읽혀진다. 아직 이 사회가 역겨워 하는 것이 할머니 뻘 여자와 아들뻘 남자가 연애‘질’을 하는 것이라면, 그래서 만약 그 금도(琴道)를 넘어서게 되면 그 앞의 금지 품목들은 자연스럽게 풀리지 않을까 하는 의도가 이 영화 속에는 숨겨져 있다.

 

당신이 만약 이 영화를 보는 시선에 전혀 거부감 같은 것이 없다면 우리 사회의 수많은 편견들, 특히 동성애 문제에 대해서도 열린 시선을 갖춰 낼 가능성이 높다. 이 영화가 갖고 있는, ‘외곽을 때리는 노련한 수법’이다.

 

 

이런 거 저런 거 다 집어치우고 ‘빛나는 순간’은 고두심의, 고두심에 의한, 고두심을 위한 영화이다. 고두심은 제주 출신이다. 제주 방언이 그녀의 입에 딱딱 들어맞는 이유다. 극 중간에 그녀가 카메라 앞에 혼자 앉아 독백을 하는 신이 있는데, 롱 테이크로 찍혀진 이 장면에서 고두심은 끝없이 얘기하고 울고 또 얘기하고 그런다. 그 긴 대사를 어떻게 외웠으며 그 긴 감정의 호흡을 어떻게 이어갈까 감탄이 이어진다. 우리 시대, 가장 뛰어난 배우라는 평가가 옳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장면이다. 그런 고두심을 보는 것만으로도 ‘빛나는 순간’은 유용하고 유의미하다.

 

빛나는 순간을 빛나는 순간일 때 알아차리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생에서 빛나는 순간은 다 과거형이다. ‘다들 내게도 저럴 때가 있었어’, ‘내게도 그럴 때가 있었지’ 하는 식이다. 사랑을 할 때에는 빛나는 순간보다 어두운 순간이 더 많다. 괴롭고 힘들다. 상대에게 미안하고 죄스럽다가도 그런 마음을 안겨 준 상대가 미워지기도 한다. 그래도 사람을 바꾸고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것은 바로 사랑이다.

 

아무리 어려운 사랑이라도 하지 않는 것보다 과감하게 해 나가는 것, 그것이 실패하더라도 늘 시도하는 것이 더 낫다고들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사랑에는 다 이유가 있다. 다 계획이 있다. 사랑이 답이다. 다들 뜨겁게 사랑하고 살라는 것이 이 영화 ‘빛나는 순간’이 주는 궁극의 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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