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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학계 거장, 한신대 류성민 교수 새로운 출발

40년 대학 강의 중 27년 종교문화학과 몸 담아... 17일 정년 퇴임식
류 교수 “학생들과 약속 지키려 5년은 더 연구할 것”
“인생을 멀리 바라보면서 설계해보길” 제자들에 당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두 가지를 못했어요. 앞으로 5년 정도면 가능할 듯합니다.”

 

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한 지 어느덧 40여 년, 정년이 됐다. 이 가운데 27년을 꼬박 종교문화학과 연구와 강의만 했으니, 실은 평생을 종교학계에 몸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사람. 바로 한신대학교 류성민 교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야 비로소 완성하고 싶었던 걸 시작할 수 있고, 해보고 싶었던 것에 도전해보고자 한다는 류 교수에게 은퇴는 그야말로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일 뿐이다.

 

어쩌면 학생들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고, 학문에 열중하는 모습을 보였던 류 교수가 아직까지 하지 못한, 그토록 애타게 바라는 일은 무엇일까?

 

“하나는 ‘종교윤리’와 ‘종교의례’와의 관계를 분석하는 것입니다. 박사논문에서 시작된 건데, 학생들에게 강의한 내용과 나름 정리한 자료들을 모아 책으로 내는 일입니다.”

 

 

이미 학생들과 약속하고 계획도 다 했었는데, 벌써 정년이라며 특유의 살인미소를 지어 보이는 류 교수다. 자료들은 거의 수집했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하면 아마도 1년 반 정도 소요될 것이란 설명이다.

 

또 하나는 2008년 중국에서 1년을 거주할 당시부터 차곡차곡 모아온 자료들을 토대로, 중국정부 수립 이후 중국의 종교정책과 그 종교가 어떤 식의 변천을 가져왔는지 살펴보는 일이라고 한다.

 

류성민 교수는 “천주교와 개신교, 그리스도교를 중심으로 중국의 종교정책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정리해 보면 오늘날 중국의 역사와 중국현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수많은 분량의 자료를 정리해야 하고, 또 직접 현지답사도 다녀야 하는 등 만만치 않은 일임에 틀림없다. 분명 시간도 많이 걸리고 힘든 과정이 되겠지만, 이전에는 말도 잘 못하고 책도 잘 못 읽었는데 지금은 사정이 다르니 해볼 만하다는 류 교수다.

 

 

그는 이 기간을 5년 정도로 잡고 있다. 이미 학교와 가까운 곳에 연구실도 꾸몄고, 지금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게 살겠다는 마음을 굳혔다. 해서 강의도 한 3년은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다. 열혈 학자로서 류성민 교수에게 ‘종교’는 어떤 의미일까 새삼 궁금해졌다.

 

“글쎄요. 한 두 마디로 정의할 수 있으면 이 자리에 있지 않을 텐데요.(웃음) 어렵죠. 종교가 뭔지를 말하기 위해선 온갖 것을 이야기해야하기 때문에 한 마디로 뱉는 순간 오류를 범하게 될 수 있습니다. 종교에 대한 이해는 모든 사람이 다 다를 수밖에 없어요.” 

 

예컨대 ‘신을 믿는다’의 경우 ‘사람은 자신이 생각하는 신을 믿는다’는 말이 있는데, 종교를 연구하는 학자 역시 자기가 그 종교를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가지고 연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결국 종교가 무엇인가를 논하기 위해선 자신이 연구한 것, 관심 있는 모든 것을 꺼내놓아야만 설명이 가능하다는 얘기인 셈이다.

 

그러면서 류 교수는 개인뿐 아니라 사회나 국가에도 폭넓게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 종교이고, 본인은 그런 각도에서 종교를 연구한다고 부연했다. 또한 그 영향이 기능을 포함할 순 있겠지만, 종교를 인간의 필요에 부응하는 도구처럼 여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는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 것이 바람직할까’를 고민할 적에 찾게 되는 것이 종교일 수도 있고, 혹은 아주 큰 공경에 빠져 스스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을 때 해결책을 구하기 위해 떠올릴 수도 있다는 것. 또는 과거 자신의 삶을 돌아보더라도 도저히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없는 어떤 현상에 대해서도 신앙과 연관을 짓게 되지 않겠냐는 뜻이다.

 

류성민 교수가 강조한 또 다른 한 가지는 ‘인생을 멀리 내다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인생을 길게 내다보고 그때를 위해서라도 지금부터 차근차근 해나가야 한다. 빨리 결과를 얻으려는 것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가끔은 인생을 멀리 바라보면서 설계해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는 말을 제자들에게 남겼다.

 

아울러 류 교수는 아내에게 청혼할 당시의 일화를 들려주기도 했다. “석사과정을 다닐 때인데 대학교수가 되면 은퇴까지 45년간 ‘이렇게 저렇게 살고 싶다’며 계획을 쭉 얘기하고, ‘같이 살래?’ 했습니다.”(웃음) 얘기를 듣다보니, 사모를 앞에 두고 조근조근 설명하는 류 교수의 모습이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스쳐지나갔다.

 

 

마지막으로 은퇴 이후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일에 대해 물었다. 그래도 지금보다는 시간적여유가 있을 테니, 조금은 자신을 위한 즐거운 일도 했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서 말이다.

 

“두 가지를 생각해보긴 했어요. 시간이 된다면 평생대학원 같은 곳에서 목공을 배워보고 싶습니다. 연장을 만지고 가구 조립하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잡념이 없어지고 몰두할 수 있어서 좋거든요. 또 하나는 바둑이에요. 바둑의 세계는 참 멋지고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어 바둑공부를 더해볼까 하는데,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웃음)

 

바둑의 매력에 대해서는 순간적인 판단이나 빠른 수 읽기라고 답했다. 특히 저마다 끊임없이 세계관을 만드는 과정을 되풀이하기에, 다양한 사람들의 심리를 짧은 시간에 경험할 수 있는 점이 흥미롭고, 그래서 공부를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결국은 또 공부인가 하는 생각을 하니 웃음이 절로 났다.

 

앞으로 불가피하게, 죽음으로 헤어지기 전까진 학생들과 서로 연대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보람이라는 류성민 교수. 그는 지난 시간 자신에게 남은 소중한 것은 강의한 내용과 글들, 그리고 학생들과의 인연이라고 손꼽았다.

 

[ 경기신문 = 강경묵 기자/신연경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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